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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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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May 10. 2017

시련 학습법




뻔뻔한 일자무식의 최후

독일에서 온라인으로 자그마한 가게를 열었다. 주된 품목은 티였다. 내가 한국에서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 분야이기도 하고 이 곳에서 다양한 종류와 <블랜딩(Blending)>으로 꽤나 매력적인 맛과 향을 자아내는 티에 매료되어 내 나름의 방식으로 공부해나갔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해서 독일 뿐만이 아닌 한국에서까지도 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만한 브랜드부터 독일 브랜드는 아니지만 적당한 가격으로 손쉽게 구매가 가능한 프랑스의 티 제품들까지 접해보면서 판매를 시작했다. 온라인으로 판매를 하기 위해 사업자 등록증과 통신판매업 영업신고를 끝내고 나니 하나 둘씩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 할 것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티 뿐만이 아닌 티와 함께 할 수 있는 티백이나 티 받침 따위의 액세서리 등을 함께 판매했고 쉽사리 느껴지지 않아도 반응이 조금씩 오기 시작했다.


독일에서 한국으로 직접 배송을 보내다 보니 커다란 문제가 생겼다. 독일에서 보낸다는 것을 기재하고 이커머스 마켓에서 판매를 시작하였지만 주문한지 이삼 일이 된 고객이 배송이 너무 늦어 주문을 취소하거나 배송 조회가 되지 않는다는 독촉이 늘어났다. 유럽 전역의 연합 휴일이라고 할 수있을 정도의 크리스마스부터 한 해가 넘어가는 연 초까지 많은 유럽의 상점과 유통업체, 또 배송 업체들까지 일제히 휴일에 들어가는 마당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늘어지는 배송기간에 불쾌감을 드러내는 고객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정도가 최선이었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한국에 있는 엄마에게 홍보용으로 보내 두었던 제품을 판매용으로 고객들에게 배송해 주도록 요청을 했다. 이 주 정도면, 늦어도 삼 주 안에 유럽의 물류가 정상궤도로 돌아오면 나는 다시 독일에서 배송을 시작하면 되겠다고 생각을 했다. 이 자그마한 생각의 불씨가커다란 화재로 이어질 줄은 미쳐 예상하지 못했다.



열흘 남짓이 흘렀을까, 다급하게 엄마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큰일났다고, 전화 한 통 달라고 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집안에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생겼나 싶었다. 엄마와 연락이 닿고 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시청 위생과 직원들이 집을 찾았다고, 그리고 그 대상은 나였음을 전해들었다. 어두운 표정의 낯선 사람들이 집에 들어 닥쳐 집을 뒤졌고 몇 개 없는 티 들은 지적하며 내가 대한민국 법에 위반되는 행위를 한 것이라 법적 처벌 대상이 될 것임을 알려 왔다며 엄마는 말했다. 한 번도 엄마에게 들어본 적 없던 꽤나 겁에 질린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올 때의 나는 애써 침착한 척 했다. 이럴때 그나마 다행인 건 영상 통화가 아닌 음성 통화를 시도했다는 거다.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져나올 것을 참고내가 처리하겠노라고 하고 통화를 마쳤다. 가만히 허공을 쳐다보다 눈물을 쏟아내기를 한 시간은 반복했나보다.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고 편도의 항공권을 끊어 독일에 간지 몇 달이 되지 않아 나는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프랑크푸르트 공항 파업으로 하루가 지연되어 친구 경윤이의 결혼식에맞추어 수십 만원을 더 주고 구매한 항공권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었다. 인천국제공항에 비행기가 다다랐을때 왠지 모를 무거움이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먼저 내리려 짐을 들고 좌석에서 일어나며 분주한 모습이 이어지는데 여자 승무원 한 분이 나에게 다가와 이름을 물었다. 그리고 나를 찾으시는 분들이 있어 내가 먼저 나가야 한다며 나를 다른 승객들을 차치하고 가장 먼저 내보내는 배려를 보였다. 어리둥절하게 승무원을 따라나가는 순간 두 명의 중년 남성이 오른 손에 하얀 종이를 쥔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도주의 우려가 있어 스스로 경찰에 출두하여 범죄에 대한 진술을 하겠노라고 확인을 하고 서명을 하도록 기다리는 의무적으로 수행하는 업무라며 겁을잔뜩 먹은 나를 안심시키는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안심은 커녕 내가 범죄를 저질렀음을 새삼 느끼게 하는 순간이었다.




몰랐던 무언가를 알게 되면서 나는 내 기준에 꽤나 큰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닷 새 정도를 머무르면서 경찰서에 가서 두 번의 진술을 했으며 위생과 담당자를 찾아가 위법이 아닌 적법한 절차로 내가 원하는 일을 이어갈 수 있는 지침을 받았다. 일종의 해외 구매대행이라는 영역에 있어 한국은 제품별 가이드가 명확하게 자리 잡혀있지 않기에 내가 원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받을 수는 없었다. 다만, 식품과 관련하여서는 온라인에서 판매를 하기 위해 통신 판매업뿐만이 아닌 수입식품영업신고를 별도로 하여야 함이었고, 그를 위해서는 대한민국 내에 일반 가정집이 아닌 별도의 사무실이 등록이 되어 있어야 하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독일에서 무언가를 한국으로 보내는 일은 직접 수입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 부분에 있어서도 내가 제도적인 부분을 너무나도 쉽게 간추려 생각한 것이 화근을 부른 것이라는 걸 인지하고 나니 거울을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순간이다. 모르는 게 분명 죄다. 한달 뒤쯤 과태료로 백만 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 고지서에 찍힌 채 부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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