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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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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May 10. 2017

홈파티의 정석




홈파티의정석

이번 주말은 체력적으로 버겁게 끌려 다녔다.

한국에 다녀 온지 얼마지나지 않아 꽤나 무거운 마음을 제대로 정화시키지 못해 입가에 미소가 희미해진 나의 일상에 즐거움을 마련해주겠다는 친구의 배려에 독일에서 오랜만에 한국인이 아닌 사람들과의 소셜라이징을 할 수 있었다 .연말에 처음 만난 나의 일본어 회화 친구 '가리'의 친구들이 놀러 와 파티를 한다며 그 자리에 나를초대했다.


가리는 스페인의 '바스크'라는 지역의출신이다.

그 곳 사람들은 본인들은 스페인이 아닌, 바스크 컨트리 사람이라고 얘기한다며 본인이 스페인 사람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밝혔지만 나는 지금도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이 친구를 스페인 사람이라고 소개하곤 한다. 친구의집 주소가 적혀진 종이 한 장을 들고 가방에는 한국에서 가져온 귀한 소주 한 병과 라면 한 봉지를 선물 삼아 파티 장소라고 알려준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초인종을 눌러 들어간 가리의 집에서 나를 반겨준 건 정말 파티가 일어날 거 같지 않은 방 안에 세 명의 바스크 남성들과 커다란 술 한 병이 전부였다. 어릴 적부터 몰려다니던 동네 친구들이라는 이들의 생김새는 같은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였다. 친구들 중 한 명은 가리와 마찬가지로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스페인 사람의 느낌이 물씬 풍겨왔지만 왠지 모르게 달랐고, 나머지 한 친구는 정의할 수 없지만 괜한 영국인의 인상을 내게 주었다. 영국인처럼 보이는 친구의 이름은 토마스. 현재 뮌헨에서 일을 하며 살아가고 또 한 친구 존 콜도는 영화감독이 꿈이지만 스페인에도 불어 닥친 커다란 실업난으로 커다란 <하몽(Jamon)>가게에서 하몽을 팔고 있다고 했다. 


꿈과 직업에 대해서 넷이 영어로 또 일본어로 또 바스크어로 쉼 없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 새가리의 또 다른 초대 손님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독일인 커플과 일본인, 그리고 일본인 여성의 애인인 슬로바키아 남성까지모이고 나니 나와 슬로바키아 남성의 모국어를 제외한 모든 언어가 이 자그마한 공간을 넘어 동네의 적막을 깨우고 있었다. 이날 우리의 파티에 먹을 거라곤 감자칩 한 봉지가 전부였다. 으레 파티라는단어를 떠올리면 먹고 마실 것이 가득한 테이블과 깔끔하게 차려 입은 모습의 사람들이 떠오를 텐데 나의 머리 속과 겹쳐지는 잔상은 어딘 가에도 없었다.


“이게 파티야?” 

“응 이게 파티야. 왜?”


파티를 즐기면서 이게 파티가 맞냐고 물어보는 내가 오히려 신기했는지 가리가 되물었다.먹을 것도 없고 우리는 단지 네 방에서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파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하자 나의 의문에 대한 가리의 대답은 명료했다.



“셋 이상이 모이면 파티야.”


술 한잔에 취해, 음악에 취해, 또 사는 이야기에 취해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행복의 날숨을 뱉어낼 때에 주인공인 가리가 가라오케에 가자며 이 엉뚱한 조합의 그룹을 두 번째 공간으로 이끌었다.

우리는 어김 없이 젊은 <프랑크푸르터(Frankfurter)>들이 밤을 불태우는 작센하우젠으로 향했고, 노래방의 나라에서 온 나에게는 정말이지 낯선, 가라오케의 나라에서 온 일본 여성 <치즈요(Tizuyo)>에게도 낯선 독일에서의 가라오케를 만났다. 한 쪽 벽면에 커다란 스크린이 있고 모든 테이블이 스크린을 향한다. 그리고 노래를 예약한 사람이 노래를 부르노라면 모든 테이블의사람이 따라 부르고 일어나 춤을 추기도 한다. 세 평 남짓한 어두운 방에서 원하는 대로 간주를 건너뛰고 박자와 음정을 무시하고 소리를 내지르며 스트레스를 푸는 곳이 노래방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이 곳은 미지의 세계이자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 스트레스를 얻어 오는 공간이다. 음악에 조예가 깊지 않고 관심조차 없는 내가 이상한 것인지 이 곳의 사람들은 어찌 그리 나오는 팝송마다 눈을 감고도 가사를 쏟아내는지 그저 신기한 경험이다.


밤을 지새우며 부어라 마셔라 젊음을 불태운 건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나에게 고집 센 스페인 날라리들은 이 순간만큼은 악마였다. 내가 피곤해 죽을 거 같다고 해도 밤이라 위험하다, 지금은 차가 없으니 택시비가 많이 나오고 야밤의 택시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는 등의 이야기로 집에 가려는 나를 붙잡았다. 이미 방전된 체력으로 어딘가를 잡거나 기대지 않으면 몸뚱이 하나를 세울 기력도 없는 나를 날이 새도록 집에 못가도록 붙잡는 그대들은 악마다.

가라오케에서 나와 술 집을 서너 군데는 더 다닌 것 같은데 어디에 체력을 숨겨 놓았는지 어렴풋이 들려오는 살사 음악에 취한 듯 작은 골목 구석에 있는 살사바로 향했다. 때마침 스페인 노래가 나오자 나를 보기 좋게 끌고 가더니 이 구역의 춤신은 본인들이라는 듯이 춤을 추고 놀았다. 끈덕지면서 절도가 있는 음악에 취한 남부 유러피언들의 춤솜씨는 경쾌하면서 에너지가 느껴졌고 기본적으로 리듬을 아는 모습이 수동적인 로보트 댄스를 구사하는 독일인들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라 보였다. 새벽 5시 반에 터키음식점에서 커다란 되너 케밥을 인당 하나씩 해치우고 첫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기절 하고 다섯 시간은 지났을까? 정말 좀 쉬고 싶은 일요일에 뮌헨으로 돌아가기로 한 가리짱 친구 존콜도가 갑자기 프랑크푸르트에 하루 더 있겠다고, 같이 또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순박한 스페인 청년과의 하루

젊은 것들이 체력도 좋다. 거절 못하는 나의 치명적인 성격 탓에 네 발로 기어가다시피 약속 장소인 뢰머광장으로 나갔다. 나는 가리와 그의 하몽을 파는 친구까지 셋이서 데이트를 했다. 독일에 처음 온 가리의 친구 존콜도에게 독일보다 신기한 건 다름 아닌 바로 나였다. 스페인에서 TV로 한국 여성을 한 번 본 게 다라고 했고 내가 그에게 두 번째 한국 여성, 그리고실물을 처음 접한 한국 여성이었으니 유럽에서 신물 나도록 많은 독일인과 그 유럽이 그 유럽일 정도로 비슷한 도시들 속에서 내가 얼마나 신선한 구경거리였을까.


아무래도 연상으로 보이지만 스물 다섯의 청년 존콜도 @ 프랑크푸르트, 독일

존 콜도는 영화감독의 꿈을 어린 시절부터 간직하고 있지만 지금 당장은 돈을 벌어야 하기에 현실과 타협하여 스페인의 하몽 가게에서 일하고 있다고했다. 하몽을 써는 일에는 전문가라며 너스레를 떠는데 웃음이 꽤나 슬프게 느껴졌다. 한국이나 유럽이나 본인이 하고자 하는 꿈을 이뤄가는 방식도 다양하고 가는 길이 꽤나 먼 여정이라는 공통 분모가 있기에 한편으로는 꿈에 대한 갈망이 눈에 선했다. 그는 한참을 자신의 이야기로 이어가다가 별안간 내게 궁금한 것이 있다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바라보았다.



‘뭐지 이 설렘은’

진하게 생긴 남부 유럽의 뭇 남성의 반짝이는 눈 빛을 마주하는 평범한 동양 여성 중에 설레지 않을 이 몇이나 될까. 뭐든 물어보라며 생전 가리에게는 내비치지 않은 나긋한 목소리로 그의 물음에 화답하자 되돌아 온 한 마디는 짧게나마 감성의 불을 밝힌 내게 빠르게 현실로 복귀하도록재촉했다.


“사팔팔오가 뭐야?”
"사팔팔오.....”


영화 추격자를 봤고 그 속에서 인상에 남는 단어가 사팔팔오인데 번역이 어색해서 꽤나 의문으로 남았다는 게 이어지는 존콜도의 입장이었다. 엉뚱하지만 참으로 순박하고 호기심 많은 모습이 가리와 똑 닮은 모습이라 피곤함도 잊은 채 그의 여정을 동참했다. 처음가는 까페, 이 도시에 있었는지도 몰랐던 처음 가본 바스크 술집, 그리고 처음 먹어본 티벳 음식까지 나에게도 모두 첫 경험이었기에 오늘의 동행이 나쁘지 않았다.


예전에는 유럽사람들에게 한국이라는 나라가 존재도 미약하고 관심조차가 아예 없는…… 그런 곳이었는데 지금은 사뭇 바뀐 거 같아 새삼스러울 따름이다. 우리가 런던, 뉴욕, 파리 등의 대도시를 상상하듯 이들에게는 도쿄와 서울, 홍콩이라는 도시가 무언가 동경의 도시라고 했다. 가리와 존콜도는 몇 명의 친구들과 함께 어릴 적에 같이 밴드를 했다고 했고 본인들이 작사와 작곡을 해서 연주했던 노래 이름중에 하나가 바로 <서울>이었다고 했다. 단지 서울이라는 도시의 이름 하나만으로 본인들에게는 멋지게 들여왔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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