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종말"
"배낭여행을 한 마지막 세대".
그런 말이 나올 만해요.
'코로나 대유행'이라는 WHO의 발표가 나기 전부터 나라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국경 닫아걸기였거든요.
중국에서 시작한 코로나 19, 중국 우한에서 발생했다 해서 처음엔 '우한 바이러스'라고 불렸지요.
그래서 우리나라는 우한발 비행기부터 끊었다가 점차 지역을 넓혀나갔지만
많은 다른 나라들은 아예 한 나라를 통째로 입국 금지 국가로 지정하더군요.
한국도 많은 나라로부터 입국 금지당한 나라입니다.
한국인 입국을 금지한 나라가 늘기 시작해서 현재까지 180여 개 국가에서 한국발 비행기가 들어오지 못하게 국경을 폐쇄했다지요.
그러니 여행은 자동 금지된 셈이에요.
88 서울 올림픽을 전후로 여행 자유화가 되었어도
해외여행은 휴가철 일부 사람들의 전유물 같았지요.
이제 계절, 사람 따로 없이, 어쩌면 국내여행만큼이나 빈번하게 다녀오는 게 되었지만요.
그래 여름휴가 어디로 가느냐는 질문은 당연히 해외 어디로 휴가를 갈 거냐는 것으로 이해되었구요.
지금은 같은 질문을 한다면 국내 어디로 다녀올 거냐는 거로 바로 바꿔 듣는다 하더라구요.
내 주변에 다른 공부는 안 해도 영어는 공부한다는 사람이 있어요. 해외여행을 하기 위해서라면서.
이런 식으로 국경 폐쇄가 계속된다면 단지 여행을 위한 영어공부는 필요하지 않게 되었어요.
할지 말지는 그의 선택이지만요.
코로나가 바꿔놓은 우리 일상,
이렇게 구석구석까지 달라질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또 무엇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어요.
인생의 변곡점이니 인생의 전환점 이런 말들 하잖아요?
코로나가 인생의 변곡점이 나 전환점을 가져다준 사람이 많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코로나가 가져온' 이렇게 말하면 모두 같아 보이지만 각각의 사람에게 닥친 변곡점은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하고 개별적이고 상황적일 거예요.
특히 고통에 대해서는 자기 문제가 아니면 안다고 말할 수 없어요. 공감을 한다 해도 제한적이고요.
앞에서 말한 '여행의 종말'이니 '배낭여행을 한 마지막 세대'니 하면서 여행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을 안타까워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와중에 다행 중 다행인 사람이지요. 여행하는 사람들로 해서 먹고살았던 사람들, 장사를 하던 사람들은 이 사태로 삶이 나락으로 떨어진 듯할 거예요.
금요일엔 일이 있어 광화문에 갔다가 간 김에 북촌 구경을 했어요. 달라졌어요. 이전에 내가 가 본 북촌이 아니더라구요.
많은 상점들이 문을 닫았더라구요.
그 많던 양말가게, 한복대여점, 모자가게, 기념품 가게, 길거리 간식집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더라구요.
건물을 통째로 임대한다는 커다란 글씨가 빈 집 유리창 안에서 펄럭이고
사람이 없는 골목길은 을씨년스러웠어요.
딴소리이긴 한데 '을씨년스럽다'는 말이 어디서 왔는지 아세요?
1905년 을사년에서 나온 말이래요. 대한제국이 일본에 외교권을 빼앗긴 을사조약을 맺은 해가 을사년이었어요.
온 나라가 침통했겠지요. 사람들은 불안하고 거리는 어수선하고 쓸쓸했겠지요. 이후로 매우 쓸쓸하고 바람이 불어 어수선하면 그 분위기가 마치 을사년스럽다 해서 생겨난 말이 변해서 을씨년스럽다고 한대요.
정말 그렇더라구요. '% 할인'이라 적힌, 찢겨나가서 몇 퍼센트인지 알 수 종잇조가리가 길바닥에 뒹굴고.
정독도서관 옆을 지날 때였어요. 도서관도 당연히 문이 닫혔지요.
언제나 여행객이 북적이던 정독도서관 사거리가 조용한 게 몹시 낯설었어요. 지구 멸망 이후 어떤 황폐한 미래를 그린 SF영화 속 한 장면인 듯하여 불안하기까지 하더라구요.
일찍 서두르느라 아침을 먹지 않고 나와 배가 많이 고팠어요.
집에서 나올 때만 해도 일 보고 분위기 좋은 집에 가서 브런치를 먹을 양이었는데
문을 연 곳이 눈에 쉽게 안 띄더라구요. 사람이 없으니 문을 열지 못했을 텐데 예상하지 못했던 거예요.
하는 수없이 점심 장사를 위해 문을 열 테니 그때까지 이곳저곳을 구경하기로 했지요.
고즈넉한 한옥의 정취를 즐기려 찾는 북촌에 관광객이 넘치면서 소음과 불법주차, 매연 등으로 불편을 겪던 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는데 이번 사태로 북촌 사람들은 북촌다움의 주거환경을 찾게 될까요.
다른 방식의 여행은 또 생겨나겠지요. 코로나로 촉발된 비대면 일상에 걸맞은 여행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