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일기
요즘 낮 시간 지하철은 웬만하면 앉아서 갈 수 있다. 코로나19가 사람들의 외출도 줄였을 것이다. 대중교통 이용할 때 마스크를 써야한다는, 쓰지 않으면 승차를 거부할 수있다는 정부 지침이 나오고 난 후 이제 마스크를 안 쓴 사람은 보기 힘들다. 세 번째인가 정거장에서 문이 열리고 사람이 내리고 문이 닫히기 직전에 청년 한 사람이 뛰어들어왔다. 내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 임산부를 위한 자리여서 대체로 비어 있기 십상인 자리다. 거기 앉았다.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던 그는 덥다 소리를 연발하면서 마스크를 벗더니 마스크로 부채질을 하기 시작했다. 불편했다. 부채가 있었다면 건네주었을 것이다. 그래도 마스크를 쓰라는 말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봤자 걔 지방충이야!"라는 말을 지하철을 내리면서 들었다.
며칠 전엔 커피숍에서 있었던 일이다. 주문을 하고 기다리다가 주문 받는 직원이 마스크를 쓰지 않은 것을 보았다. 흠칫 물러섰다. 그렇게 행동하는 내가 불편했다. 커피를 받아 바로 나오면서 마스크를 쓰고 일하라고 말하면 지적질한다고 속으로 욕할 걸, 지레 판단하고 불편한 속내를 감추었다. 호랑이나 귀신을 무서워하던 시절, 어른들로부터 '귀신 같은 거 없다, 사람이 더 무섭지' 라는 말을 듣고는 했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것은 나이를 먹으면서 다양한 상황에서 그럴 수있다는 것을 자연스레 이해하게 되었지만 요즘 그 여러가지 상황에 한 가지가 추가되었다.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아닐까 하는. 모르는 사이 감염되어 다른 사람에게 전염 시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코로나 이후 추가된 불신이 만든 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다.
두려움은 정보를 찾아다니게 한다. 내로라하는 석학들의 말과 글이 온갖 미디어에 범람한다. 정보과잉을 사람들은 인포데믹이라고 한다. Infomation+Pandemic의 합성어다.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대 전제 아래 코로나가 삶에 미치는 전방위적 분야에서 이렇게 저렇게 달라진다고 전문가마다 해법이라고 제시한다. 뉴노멀이니 뭐니 해서 관련 책도 홍수다. 갑갑하니 나도 이책 저책 기웃거리고 사보게 된다. 도서관이 닫혀 있어 사 볼 수밖에 없는데, 보고나서도 가시지않는 것들이 많다. 그것이 얼마나 합리적인 내용인지 판단이 어렵다. 이해는 고사하고 상상이 안되기 때문이다.
신천지에서 요양병원, 콜센터로, 이태원 클럽에서 물류센터로 교회 소모임으로. 확산 계획이 준비된듯 꼬리를 문 코로나 감염자 발생은 언제나 사람들의 상상력 바깥에서 벌어졌다. 다음은 또 어딜까. 코로나19에 대해 아는 만큼, 자신이 잘 아는 분야만큼 상상력은 비례할 것이다. 전문가의 말을 듣거나 글을 읽는 것, 정부의 발표와 경험자의 이야기 등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결국은 두려움을 덜기 위해서다.
유럽 여러 나라, 미국, 일본 등 소위 선진국이라는 나라가 록다운을 해제했거나 할 거라고 한다. 불탔던 파리의 노틀담 성당도 문을 열고 방문객을 맞을 준비를 마쳤다고 한다. 록다운은 해지했으나 방문 허용은 EU 회원국 국민들에게만 해당될 거라는 추측이다. 유럽이나 미국, 일본 등의 과감한 방역 포기(?) 가 모두 경제 때문에 무리하게 문을 열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의견이다. 이에 대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15~64세의 생산 가능인구에게 미치는 피해가 크지 않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에 저렇게 하는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일본, 검사도 많이 하지 않고 한다 해도 이미 심각한 상태가 되었을 때나 한다는 보도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러면 노령인구 정리? 세계 최고의 노령사회 일본도? 이상한 상상을 하게 되는데, 말 그대로 으스스하다.
모르는 게 많을수록 불안도 많아진다. 불안에 빠지면 이성적 사고가 불가능해진다. 이상한 상상을 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