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이 진지한 일기
페이스북에 ‘페이스 앱’이라는 프로그램을 써서 얼굴을 성 변환한 자기 사진을 올린 사람들이 있다. 한 분야의 전문가로 중량감 꽤 있는 분이 자신의 얼굴을 여성의 모습으로 변환한 것을 올려 그에 대한 나의 엄근 인상을 깨게도 했다. 그 사진에 댓글을 다는 많은 사람들이 앱이 생성한 사진을 보면서 후생엔 여성으로 태어나라, 멋지다, 지금보다 잘 어울린다, 지금과 다른 성으로 살면 더 인기가 많았겠다 식의 평을 하며 웃음을 주고받았다.
잘 아는 사람이 낯선 사람이 되었지만 가볍게 웃으며 재미로 넘길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견고한 믿음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절대로 여성이 남성으로, 남성이 여성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확신. 놀이가 원래 그렇다. 마술 같은 놀이에 빠질 수 있는 건 마법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러나 만일 여성과 남성이라는 범주 안에 안착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를 것이다. 장난으로라도 이 놀이를 선뜻 즐기지 못할 것이라 짐작한다.
무심코 즐기는 놀이에서 하마터면 크게 상처 받는 아이가 생길 수도 있는 일을 다룬 동화가 있다 <빨간 봉투의 요정>(오경임). 인기투표가 열리는 날이었다. 아이들은 인기투표 따윈 관심 없지만 인기투표에서 이름이 불리는 아이들은 신경이 무척 쓰이는 눈치다. 책 속의 화자 '나'는 어차피 뽑힐 사람이 뽑힐 것, 장난이나 해보자며 엉뚱한 아이 이름을 적어낸다. 김건.
건이는 부끄럼을 많이 타는 아이다. 아이들과 적극 어울리지 못하고 외곽을 도는 아이. 엄마가 나서서 건이와 친하게 지내라고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등을 사주시기도 하지만 먹을 때뿐, 아이들에게서 건이는 금세 잊힌다. 이윽고 개표가 되고 예상대로 인기투표에서 늘 1,2등 하는 아이 이름이 번갈아 불린다. 그러다 갑자기 건이 이름이 불린다. '김-거언-! 건이 도령을 사랑하는 낭자는 누구인고!' 교실 안은 웃음바다가 된다. 건이는 갑자기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에 머리가 책상에 닿을 듯 붉어진 얼굴로 어쩔 줄을 몰라하는데 아이들은 그걸 즐긴다. 건이 이름을 적어낸 '나'는 이 장난을 즐기기 위해 한 발 더 나아간다. 빨간 봉투와 편지지를 준비해서 여자 글씨체를 흉내 내가며 건이에게 편지를 보낸다. '한 표밖에 안 나와서 아쉬웠어.'
시간이 흐르고 그 사에 몇 차례 더 편지를 보내고 여름방학을 앞두었을 때, '나'는 건이에게 편지를 전하려다 이번엔 건이가 쓴 편지를 발견한다. '빨간 봉투의 요정에게'로 시작하는 건이가 '나'에게 쓴 편지. 그러고 보니 모르는 사이 더 이상 여자 글씨체를 흉내 내지도 않은 편지에 진짜 '나'가 하고 싶은 말을 쓰고 있었다. 기대한 것처럼 동화는 행복한 결말을 보여준다.
(조금 딴 소리를 하자면, 나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몇 가지 생각이 있다. 영화 스포일러를 탓하지 않는다. 때로는 일부러 결말을 찾아기도 한다. 알고 있는 결말에 맞추기 위해 나는 작가와 사건 전개 대결을 하며 영화를 보기 위해서. 마침내 맞아떨어졌을 때는 내가 이긴 거고, 상상을 빗나간 전개를 보이면 그가 이건 거다. 그런 점에서 일일극이나 동화는 복잡한 상상을 하지 않으면서 보거나 읽어도 되기 때문에 가볍게 즐기며 본다. 심지어 일일 드라마는 며칠 건너뛰고 보아도 스토리가 이어진다. 나쁘지 않다. 그래서 일일 드라마를 보는 거니까. 동화는 더 안심하고 봐도 되지 않을까. 세상사가 녹록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아이들을 위한 동화에서까지 해결 안 나게 끝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아이를 천사처럼 키우자는 말이 아니다.)
인기투표하던 날 건이가 울음을 터뜨리거나 사건이 더 확산되지 않아서 다행이지. 장난이었지만 정말 건이가 그 장난에 걸려 넘어졌으면 어떡할 뻔했을까. 동화니까, 동화는 목적이 있으니까, 하며 안심했지만 장난이 장난이 아닌 걸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학교폭력의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가 장난이었다고 말하는 것을 기사에서 읽고, 장난이라고 하면 되는 거야? 분개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악의적으로 그런 일을 벌이는 아이도 있겠지만 '나'처럼 장난으로 시작한 아이도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장담하기 어려운 것이 있는데, 건이 일이 자신의 일이어도 흥분하지 않을 수 있을까이다. 이야기라는 안전거리를 확보한 사건이기에 흥분하지 않을 수 있었다. (2020.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