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계국과 행복의 충격

쓸데없이 진지한 일기

by 김패티


6월 한강변에는 금계국과 능소화가 만발했다.


금계국이라는 꽃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건 김화영 교수의 책 <행복의 충격>에서였다.


김화영은 1세대 불문학자다. 자랄 때 내가 읽은 까뮈, 지드, 모디아니, 그르니에, 생텍쥐베리 등은 적지 않게 그에 의해 번역된 것이었다. <행복의 충격>은 산문집보다는 번역서가 더 많다는 김화영의 20여권 산문집 가운데 하나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김화영교수가 남프랑스 액상 프로방스에서 유학을 한 것은 1960년대. 그 당시의 경험이 담긴 <행복의 충격>에서 그가 말한 남프랑스는 낯섦, 환함, 밝음, 여유, 행복이다. 그 중에서도 그는 남프랑스 사람들의 행복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들에게 행복은 추상이 아니라 살아가는 일이어서였다. 그리하여 "오직 행복한 자, 아무것도 소유한 것이 없이도 이 땅 위에 태어난 것이 못 견디게 기뻐지는 자들만이 올 곳이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느라 고단했던 가난한 나라에서 온 청년 김화영에게는 언덕 너머로 펼쳐진 들판에 만개한 금계국도 행복의 화신으로 보였다. 까뮈의 무덤에 가는 길에 만난 소년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수선을 한 아름 안고 있는 소년이 신화속 나르시스처럼 툭 튀어나온다. 까뮈의 무덤에 놓고 싶어 그 꽃을 어디서 구했느냐 물으니 들판에서 따왔다며 한아름 꽃을 그대로 이방인 방문객에게 주었다지! 들판에 흔사게 피는 수선화라니.

금계국은 지금 한강변에 지천으로 피는 꽃이 되었지만 그때는 아직 이 땅에는 흔하지 않은 꽃이었다. 금계국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걸 보면 아주 없던 꽃은 아닌 것 같은데 외래종으로 분류한다. 금계국을 우리도 볼 수 있는 흔한 꽃이 된 건 정원가들이 외국에서 들여와 도로변에 씨를 뿌리면서부터다. 지금은 더이상 씨를 뿌리지 않아도 피고 진다. 마치 이 땅에 원래 부터 있던 꽃처럼 자연스럽게. 비슷한 시기에 개양귀비도 함께 도로변 화단에 씨를 뿌렸지만 금계국만큼 우리 산야에 퍼지지는 않은 것 같다.


양귀비꽃이 만개한 들판 그림도 내게는 인상적이었다.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가 그린 '양귀비 핀 들판(1873)'이다. 마약성분이 들어 있다 해서 재배해서는 안 되는 금기의 꽃이 들판이 지천이라니, 어찌 놀랍지 않은가. '인상파'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도 이 그림과 '해뜨는 인상'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림 속 양귀비는 우리가 개양귀비로 알고 있는 꽃, 그러니까 마약 성분이 있는 꽃은 아니다 .


들판에 흐드러지게 핀 금계국이며 수선화, 그리고 양귀비꽃은 김화영만에게만 인상적인 게 아니었다. 심고 가꾸어야 볼 수 있다고 생각한 꽃들이 들판에 아무렇게나 자란다는 게 내게도 충격이었다. 꽃이 주는 첫인상 '행복', 그것들이 들판에 지천으로 핀다는 것이 내게도 충격이었다. 지도에서 배운 일 년 내내 기후 좋은 땅, 지중해 연안에 대한 선망이 생기고, 언젠가 외롭더라도 거기서 살아도 좋겠다는 막연한 꿈도 꾼 적이 있었다.


아래 미루나무가 있는 사진 속 꽃은 금계국은 아닌 듯하다.


지금은 끝물로 피던 것마저 지고 몇 송이 희미하게 핀 보라색 꽃은 수레국이다. 그 옆에 빨간점으로 핀 꽃이 개양귀비.



이제 정원가들은 본격 여름이 시작되면 이것들을 베어내고 가을맞이 꽃씨를 뿌릴 것이다. 작년까지는 금송화꽃을 심었다. 금송화는 서리가 내릴 때까지 열 가지도 넘을 만큼 다양한 색깔 꽃이 겨울이 올 때까지 피고지기를 반복한다. 아직 꽃 보는 즐거움을 더 누릴 수 있는 아쉬움이 남았을 때 정원가들은 금송화마저 뽑아버리고 다시 안개꽃, 수레국, 양귀비 꽃씨를 뿌린다. 이듬해 싹을 낼 때까지 화단은 고요하게 겨울을 보낸다.


밑동까지 잘라낸 금계국, 새순을 올린 줄기에 꽃도 노랗게 새로 피었다.


금계국은 다년초 풀꽃이다. 꽃이 진 줄기를 밑동까지 잘라내면 다시 새순을 내어 꽃을 피운다. 한강변 정원가들은 꽃을 보기 위해 줄기를 잘라내지는 않는다. 잡초를 베어낼 때 같이 잘려나간 자리에 새순을 올인 금계국이 꽃을 피우는 것이다. 개인 화단에서라면 손질만 잘 한다면 가을이 올 때까지 계속 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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