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싶은 글 읽고 싶은 글
쓸데없이 진지한 일기
독자에게 읽히는 글과 자신이 쓰고 싶은 글 사이의 조화는 어디까지일까요?
글을 첨삭하면서 종종 하는 고민입니다. 감상적, 주관적, 개인적인 글로 신변잡기적인 글쓰기에 그칠까봐 글감을 제한하라고 권하기도 합니다. 글쓰기가 처음인 사람들이 쓰고 싶은 글을 썼을 때 과연 읽힐 만한 글이 될지 생각이 많았어요. 그러다 내린 결론은 자유롭게 쓰게 하자였지요. 글을 쓰는 것만도 어려운데 쓰고 싶은 게 아니면 무엇을 쓸 수 있을까 생각되어서였어요.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경험을 생각나는 대로 쓰는 수필 쓰기에서 보통의 사람들의 경험이란 것이 대단한 것이기 어렵습니다. 대단한 것이 아니라 해서 가치 없는 보잘 것없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지요. 크든 작든 그 경험이 그 사람이며, 그는 그 경험에 기초해 세상을 보고 판단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소한 경험이나 욕망에서 시작되었지만 읽는 이에게 도움이 되는 글이 되도록 쓰면 되지 않을까요.
첨삭하기 위해 글을 읽다보면 읽는 내가 존중받는 느낌이 드는 글이 있어요. 개인적 경험을 주관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고 쓴 글이지만 독자를 배려해 읽을 만한 글이 되도록 여러 번 고쳐 쓴 흔적이 느껴지는 글이 대체로 그러하다. 결국, 쓰고 싶은 글을 독자가 읽을 만한 글이 되도록 깊이 사유하고 여러번 다듬고 고쳐 쓴 결과물이 읽을 만한 글이 된다.
쓰고 싶은 글이 독자가 읽고 싶은 글이 되게 발전시키려면 경험에서 공적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깊은 사유가 일어난다. 예를 들면 ‘내가 몸이 아픈데 가족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그래서 서럽다.' 그걸 글로 쓴다면 서럽다고 막연하게 설명하지 말고 주변 가족들의 말과 행동 중에서 유난히 서러운 마음이 들게 한 상황을 되짚어가면서 쓰면 된다. 그럴 때 설움을 고발하듯이, 감정에 북받쳐 쓰는 것에서 글이 끝난다면 서러운 감정을 배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적인 경험이지만 감정 배출에서 끝내지 말고 공적인 의미를 발견하거나 만들어 내야 한다. 사적인 글감에서 공적 의미 발견하기가 글쓰기의 핵심이다.
개인의 경험에서 공사를 구분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모두 어떤 식으로든 공적인 장에 놓인 개인으로 살아간다. 사적 경험에 공적 메시지를 담기 위해서는 사유의 확장이 필요하다. 우선 가족 각각의 입장과 처지 등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때 최대한 객관적으로 살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객관화 과정에서 얻는 깨달음이나 생각이 글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 즉 단지 내가 아프다는 것,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 가족이 서운하다는 것만으로는 넋두리나 신세한탄에 그치고 만다. 나의 사적 경험이지만 다른 사람과 나눌만한, 즉 내가 쓰고 싶은 글이면서 읽히는 글이 될 수 있다. 글을 쓰면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연습이 된다. 한편 자기 생각만으로 남을 평가하는 일은 자칫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이 쓴 일기를 남편이 보는 바람에 일이 생겼다고 걱정하던 후배가 있었다. 일기의 내용이 문제가 되었다는 거다. 후배는 일기를 자주 쓰는 편은 아니어서 속상한 날, 하고 싶은 말이 많았으나 다 할 수 없는 일 등을 일기에 썼는데, 그걸 우연히 남편이 보면 이후, 몹시 불편한 날이 여러 날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내가 밉고 우리 엄마가 미운데 어떻게 참고 살았나? 그동안 보여준 웃는 얼굴은 무엇이었나?어머니의 유산 때문이냐? 그렇게 이중적인 사람인 줄 몰랐다. 무섭다.' 하면서 남편이 아내의 어떤 해명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일기에 남편과 시어머니에 대한 원망이나 섭섭함 등을 쓴 게 사실이니까, 오해라고 할 수도 없다고 했다. 한편 많은 날들, 일기에 적힌 날보다 남편이나 어머니와 잘 지냈던 더 많은 날들도 일기로 해서 무색해졌다며 씁쓸해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남편이 어떤 날 아내가 일기를 썼는지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람이 일 년 삼백예순 날 한결같이 좋기만 할 수도 없는데, 남편이 말한대로 속상할 때마다 일기가 아니라 남편이나 어머니에게 그 감정을 바로 말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어디에도 발설하지 말고 참고 지냈어야 할까. 그렇게 해서 화목한 가정이 될 수 있을까. 오히려 아내가 일기에 불편한 감정을 써서 걸러지고 부드러워져 참을 만한 일이 된 것은 아닐까.
후배 부부의 갈등과 화해는 사적인 일이지만 어느 집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또 그만큼 중요한 일이다. 이것을 글감으로 쓸 때 공적인 글이 되게 하려면 부부간의 갈등의 원인과 해결 과정을 객관화시켜 짚어보면서 자기 관점에서만 보지 않고 상대방의 관점도 생각해보면서 쓰면 된다. 그러나 만일 그동안의 수고나 참아온 것들을 이해해주지 않아 억울하거나, 이해받지 못하는 섭섭함, 아무리 부부라고 해도 남의 일기를 함부로 본 것에 대해 분노하는 것에서 그친다면 자기연민에 빠진 감상적인 신세한탄에 지나지 않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쓰고 싶은 글이 읽고 싶은 글도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