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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패티 Mar 25. 2021

떨리고 울렸으나 공명까진 못했다

화요일 밤에 랜선으로 모여 책읽기

저자는 과학을 철사처럼 구부리고, 찰흙처럼 주물러서 지식을 빚고 있었다.  

그러나 그 과학은 나를 통과하지 못했고, 내 앞에서 반사되거나 튕겨져 나가버렸다.

심지어는 앞서 읽은 것들이 뒤에 읽는 것들에 뒤섞여 혼돈 그 자체였다.

 


원자, 우리를 이루는 것, 세상을 이루는 것


 모든 사람은 죽는다. 죽으면 육체는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어린 시절 죽음이 가장 두려운 상상이었던 이유다. 하지만 원자론의 입장에서 죽음은 단지 원자들이 흩어지는 일이다. 원자는 불멸하니까. 인간이 탄생과 죽음은 단지 원자들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너무 슬플 때는 우리 존재가 원자로 구성되었음을 떠올려보라. 그의 몸은 원자로 산산이 나뉘어 또 다른 무엇인가의 일부분이 될 테니까. 모든 것이 원자의 일이라는 말에 허무한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허무함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그 순간에도 이 모든 일은 사실 원자들의 분주한 움직임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것은 원자로 되어 있으니 원자를 알면 모든 것을 알 수 있다.(49)   

  

 세상 무엇이든 그 존재의 작동방식을 알력 하면 결국 답을 구하는 여정에서 원자를 만나게 된다. 모든 것은 원자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 한 주 사이에 나는 두 사람을 멀리 떠나보냈다. 한 사람은 막내 동생이고 다른 한 사람은 이웃에 살면서 함께 성당을 가고 모임도 하고 여행도 하면서 오래 친분을 이어온 사람이다. 두 사람 다 아직 죽음을 말하기는 너무나 이른, 젊은 사람이다. 동생의 죽음은 황망하기 짝이 없어서, 실감조차 나지 않는다. 아프기라도 해서 어떤 죽음의 징조가 있었더라면 덜 황망했을까. 한 순간에 그애와 우리가 있는 곳을 갈라놓은 죽음 앞에서, 그애가 살긴 살았던 건가 싶은 것이다. 다른 한 사람은 수술 후 회복이 순조로워 그대로 툭툭 털고 모임이 나올 줄로 믿고 기다렸다. 그러나 응급실로 실려가 그대로 고인이 되었다.    


  물리학자들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원자가 모여서 형체를 이루었다가 형체가 먼지처럼 산산이 흩어져 또 다른 무엇인가의 일부가 된다고 한다. 삶과 죽음이 그렇다 해도, 그것이 진실이라 해도, 다시는 그들의 따듯한 손을 잡을 수 없으며 슬픔은 가벼워지지도 않는다. 시간이 쌓이고 쌓여가는 동안 슬픔의 농도가 흐려지고 잊혀지겠지. 어느 날 문득 떠오르긴 하겠지만.  참 잔인한 3월이다.   



인간/우주의 존재와 인간이라는 경이로움     

  

지금까지 우리는 기본입자에서 분자, 인간을 거쳐 태양과 은하에 이르는 우주의 모든 존재와 사건을 훑어봤다. 결국 물리학이 우주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 물리는 한마디로 우주에 의미가 없다고 이야기해준다. 우주는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뜻하지 않은 복잡성이 운동에 영향을 줄수도 있지만 거기에 어떤 의도나 목적은 없다. 생명체는 정교한 분자화학기계에 불과하다. 초기에 어떤 조건이 주어졌는지는 우연이다. 하루가 24시간이거나 1년이 365일인 것은 우연이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은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아니다. 아무 의미 없이 그냥 법칙에 따라 그냥 도는 것뿐이다. 지구상에서 물체가 1초에 4.9미터 자유낙하는 하는 것은 행복한 일일까? 4.9라는 숫자는 어떤 가치를 가질까? 4.9가 아니라 5.9미터였으면 더 정의로웠을까? 진화의 산물로 인간이 나타난 것에는 어떤 목적이 있을까? 공룡이 멸종한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진화에 목적이나 의미는 없다. 의미나 가치는 인간이 만든 상상의 산물이다. 우주에 인간이 생각하는 그런 의미는 없다.


  그렇지만 인간은 의미 없는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는 존재다. 비록 그 의미라는 것이 상상의 산물에 불과할지라도 그렇게 사는 게 인간이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상상의 체계속에서 자신이 만든 행복이라는 상상을 누리며 의미없는 우주를 행복하게 산다. 그래서 우주보다 인간이 경이롭다. (pp250-251)   

  


  

저자가 말하는 의미없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까.


기후 위기를 말할 때 사람들은 흔히 ‘지구야, 미안해’라는 말을 한다. 그런 말에는 인간이 지구에게 몹쓸 일을 많이 해서 지구가 폐허가 되기라도 하는 등 인간이 지구를 힘들게 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지구는 다를 바가 없다고 한다. 문제가 생긴다면 그건 지구보다 인간에게 생기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류가 멸망한다면 과거 공룡이 사라지고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진 것처럼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에서 사라지는 종이 되는 것일 뿐 지구는 다를 게 없다고 한다. 이 책은 기후 위기가 지구에게 기쁜 일도 슬픈 일도 무엇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과학을 태도라고 할 때, 기후위기에 대해 이제까지 견지해온 나의 태도에 의심이란 걸 하게 되었다.     

     

“모진 놈 곁에 있다가 같이 벼락 맞는다” 는 속담이 있다. 인간이 기후 위기의 주범이라할 때 애꿎은 다른 생명이 함께 모진 위기를 맞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모진 놈 곁에 있다 벼락맞는 게 아닌가. 미안한 일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코로나는 과학기술의 발달의 역설이라고나 할까.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보았던 감염병 문제 코로나는 인간에게 질병 문제 이상의 문제를 야기했다. 코로나 발생과 대책의 과정에서 뜻밖의 문제들이 발생했는데, 그런 문제 중 하나가 음모론이다. 일부 유튜버의 백신 가짜뉴스와 함께 극소수 종교 집단에서 퍼트리는 '백신 음모론'이 대표적이다. "낙태아의 유전자로 코로나 백신을 만든다" 거나 "접종받은 사람들이 발작을 일으키고 좀비처럼 변한다"와 같은 사례와 함께 '빌게이츠 음모론'과 '백신 베리칩(Verichip)'설은 광범위하게 퍼진 음모론이다. '빌게이츠 음모론'은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게이츠가 투자하는 백신이 DNA를 조작하거나, 백신 접종한 사람을 노예로 만들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는 내용이다. ‘백신 베리칩'은 백신이 신원을 확인해주는 '베리칩'의 기능을 하고, 심지어 이것이 성경에 나오는 '666 짐승의 표'로서 백신을 맞으면 사탄에게 지배를 받으며 뇌를 조종당하게 된다는 등의 황당한 음모론이다.   

       

우주에 의미를 붙이는 것은 우주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잘 모르기 때문에 두렵고 잘 모르기 때문에 의미를 찾게 된다. 음모론도 잘 모를 때 생겨나고 모르는 사람이 많을수록 기승을 떤다.        

  

저자는 ‘과학은 지식의 집합체가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태도이자 사고방식’이라고 말하며, 종교나 철학이 자신의 이론으로 때로는 분명하지 않은 것조차 모순 없이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과학자로서 ‘모르면 모른다고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피력한다.

          

그렇다고 과학이 만능도 아니다. 과학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과학은 불확실성을 안고 가는 태도이며 그래서 과학은 무지를 기꺼이 인정한다고 설명한다.

          

과학은 무엇인가, 철학이 과학인가, 과학이 종교의 일종일까, 과학자 아닌 사람이 과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 저자는 나노과학의 최고봉인 쇤의 컴퓨터의 핵심부품인 트랜지스터에 관한 ‘논문 조작사건’과 입덧을 완화한다는 ‘탈리도마이드 스캔들’,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을 통해 과학적 합리성이 부족할 때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른 사례를 들어, 과학자 아닌 사람이 과학이 과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이며, 알지 못하더라도 과학에 대한 관심을 가짐으로써 우리 사회를 보다 합리적이고 민주적으로 만드는 기초가 되게 하기 바란다는 말로 정리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이 말을 하기 위해 빅뱅에서 원자까지 등판시킨 것이라고 생각한다. 훗날 2020년 발생해서 전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던 코로나 음모론에 대해서도 과학적 합리성이 부족해서 일어난 일의 예로 추가될지 모르겠다.    


       

모든 물체는 고유의 진동을 갖는다고 한다. 발신 고유진동수와 수신 고유진동수가 일치하면 공명이 일어나서 진동이 엄청나게 증폭된다고 한다. 그걸 공명이라고 한단다.


"공명한다"는 말, 국어 사전에서는 '깊이 동감하여 함께 하려는 생각을 갖다'고 정의한다. 나의 진동이 엄청 약하여 저쪽의 진동을 감지하지 못하거나, 또는 서로 맞지 않았거나---. 아무튼 공명까진 못.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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