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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패티 Aug 11. 2021

다섯째 아이

화요일밤에 랜선으로 모여 책읽기

“난 벤이 태어난 이후 줄곧 벤 때문에 비난을 받아온 것 같아요. 난 죄인처럼 느껴요. 사람들이 내가 죄인처럼 느끼도록 만들어요.”



“그들은 다시 성생활을 시작했지만 이전 같지는 않았다. "이게 바로 피임법이 발견되기 전에 여인들이 느끼던 감정일 거야" 해리엇이 말했다. "공포 그 자체, 매번 그들은 월경을 기다리다가 그것이 오면 한 달간 처형 연기를 받는 거야. 하지만 그 여자들은 괴물을 낳을까 봐 겁내지는 않았겠지' (p. 88)


“이건 정말 희한해요. 이전에 아무도 그 어떤 사람도 나에게 <네 명의 정상적이고 똑똑해 보이는 멋진 아이를 갖다니 넌 정말 똑똑하구나! 그 애들은 모두 네 덕분이야. 훌륭한 일을 해냈어. 해리엇!>이라고 말한 사람은 없었어요. 아무도 이제까지 그런 말을 안 했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아요? 하지만 벤에 대해서는 - 전 그저 죄인이죠!” (140p)


생각 많아진다. 남다른 다섯째 아이로 인해 온 가족이 받는 도덕적 딜레마와 고통, 이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소설의 배경인 1960년대 시대적 상황, 68 혁명과 히피 등으로 대표되는 반체제적인 문화의 흐름이 팽배하던 때에, 보기에 따라서는 젊은이들의 가치관이 문란하다고 할 수도 있는 때에 가족과 순결에 대한 고전적 가치를 지키려 애쓰며 사는 젊은 부부를 등장시키고, 그들의 가치관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문제를 안겨준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그리고 왜 평론가들은 이 부부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가정 상 허상이라고 할까.


우리에게는 흔히 당연하다고 여기는, 혹은 정상적인 가정에 대한 이미지가 있다. 부부가 있고 자녀가 하나 이상 있으며, 부부는 서로에게 충실하고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워 ---, 여기까지는 해리엇 부부가 다섯째 아이를 낳기 전까지의 기대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정작 그 가정을 망가뜨린 것은 이들이 생각하는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낳은 아이다. 해설은 이를 사랑, 결혼, 가족, 모성애 등 완전하다고 생각했던 가치들이 허상이 되었다고 말한다.


토론 중에 몇몇 회원이 반론을 제기했다. 해리엇 부부가 추구하는 가치가 왜 허상인가, 혹은 왜 부정적 평가를 받는가. 일견 공감했던 부분이었다. 그 가족이 어떻게 살든 남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문제 되지 않겠는가. 각 가정은 그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존중해야 한다. 그러므로 해리엇과 데이빗이 꿈꿔온 이상적 가정이 실현 가능하든 하지 않든 노력 자체로 존중할 필요는 있다.



허상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따로 있다. 벤이 태어나고 가정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벤이 태어난 이후 피임을 하는 아내를 남편은 못마땅해하며 죄짓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벤을 끝까지 맡은 사람은 해리엇과 해리엇이 아이 많이 낳는 걸 반대했던 엄마였다. 데이빗의 이상이 이상이 되려면 벤을 대하는 태도부터 바뀌어야 한다. 벤을 다른 아이들과 다르지 않게 사랑으로 끌어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엔 감당할 비용이 너무 크다. 감당할 생각도 하지 않는 것 같다.



만사가 뜻한 대로 순조로울 때, 내 문제가 아닐 때 말하기는 얼마나 쉬운가. 산다는 것은 말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데이빗의 이상은 벤이 태어나기 전까지만 유효하다. 그것이 허상인 이유다. 무엇도 장담할 수 없는 게 인생이다.


<다섯째 아이> 아이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말하자면 전통적 가정, 가족적인 연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튼튼하지도 않고 위안이 되지도 않는다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장애아를 낳고 기르는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와 해리엇의 모성애에 대해 이야기들 많이 하지만 저자는 그걸 말하고자 하느것은 아니다. 장애아를 낳은 책임은 누가 지어야 하느냐 하는 도덕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가정'이라는 검색어를 넣고 이미지 구글링을 하면 크게 두 가지 느낌을 주는 그림을 보여준다. 행복한 가정과 불행한 가정. 밝고 환한 분위기와 사랑스러운 아기와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 더하여 꽃과 해와 푸른 하늘 등을 배경으로 한 행복한 장면. 반면 불행은 어두운 배경에 위에서 말한 것들이 없다. 대체로 흑백이고 등장인물들의 시선도 제각각이다. 그러나 행복도 불행도 고정적이지 않다. 흘러간다. 이상적인 것은 추구하는 것, 이상에만 있는 것. 현실에는 없기에 이상적이다!



도리스 레싱, <다섯째 아이>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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