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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패티 Sep 12. 2021

시를 좋아하세요

화요일 밤에 모여 책읽기

글쓴이가 환청처럼 들었다는 말, “당신이 매주 시와 그림을 배달해 주었기에 기쁨 끝에 오는 지혜를 얻을 수 있었다고, 아늑한 공간에서 행복과 슬픔의 감정이 혼합된 칵테일을 마시는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고, 외로운 마음끼리의 따뜻한 포옹을 원하게 되었다.”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과 내용의 함축이다.

이 책을 쓴 작가 이명옥의 공식 직함은 미술관 관장이다. 미술 관장이 시를 읽고 시에서 받은 감흥과 발견한 메시지에 조화를 이루는 미술 작품에 입힌 이야기, 감상평을 담은 책이다. 지은이는 일주일에 한 편 시와 그림을 골라 누군가에게 보낸다. 시와 그림을 받은 이가 읽고 본 감상 혹은 질문을 적어 다시 저자에게 보냈다. 시와 그림을 매개로 오간 대화, 그것을 책으로 묶었다.


 

글을 읽는 내내 나는 수년 전 일군의 학습동아리를 생각했다. 수업 시간에 ‘매주 시 한 편을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지나가는 말처럼 했다. 바람이 크다고, 여러사람에게 좋은 일이라고 해서 함부로 강권할 수는 없는 일이었으나 그 말에 공명한 사람이 있었다. 매주 시를 고르고 시의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선정한 다음, 그날그날의 단상을 단톡방에 올려 시를 읽고 음악을 듣는 호사를 2년여 시간 동안 누렸다.


 

그렇게 올려진 시는 마치 내가 좋아하는 사탕만 골라 담아놓은 유리병 같았다. 매주 한 알씩 사탕을 꺼내먹듯 시를 읽었다. 어느 날인가는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보고 비 오는 날에 어울리는 시를 골라 놓았는데, 예보와 달리 화창한 날씨 때문에 다급히 다른 시를 골랐다는 메모를 보기도 하고, 또 늦도록 올라오지 않는 시를 기다리기던 날도 있었는데, 그런 날에는 요일을 착각했다는 메모를 보기도 했다. 그런 날은 새삼스럽게 그의 노고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확인하고 미안해 하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도 비슷한 고통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전체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시를 처음 읽기 시작한 사람을 위한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사랑과 시, 나에게 온 시의 메시지, 삶과 죽음, 마침내 나보다 더 시를 좋아하게 된 당신에게, 그리고 두 사람, 어머니와 책벌레에게 주는 시로 글을 맺는다. 지은이가 고른 시와 시와 감상을 읽고 그림을 보노라면 시와 그림으로 압축한 한 사람의 생애가 덧없이 흐른다. 시에서 지나온 내 시간을 읽기도 하고, 다가올 시간을 상상하기도 했다.


 

좋아하는 사탕처럼 골라 담은 시, 그 중에서 한 편을 고르라면 나는 쉼보르스카의 “두 번은 없다”를 고르겠다. “우리가, 세상이라는 이름의 학교에서/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여름에도 겨울에도/낙제란 없는 법” 에 밑줄을 긋고, “무엇 때문에 너는/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너는 존재한다-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너는 사라진다-그러므로 아름답다”에 오래 마음이 머물렀다. ‘카르페 디엠’, ‘아모르 파티’,‘메멘토 모리’가 다 같은 뜻이라는 걸. 오늘은 내 생에 두 번 오지 않는 최고의 날, 그러니 오늘,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면 될 뿐, 아직 오지 않은 날을 미리 걱정할 것도, 지나간 날에 매여 있지도 말라는 뜻이다. 인생에 낙제란 없는 법, 제각기 그때그때 충실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시는 쓴 이의 것이기도 하지만 누리는 이의 것이기도 하다. 많은 시 중에 나의 시를 골라 가만히 품고 살다  지난날이 그리울 때, 다가올 날에 불안스러이 서성이게 되는, 그런 날에 이 시를 다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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