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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패티 Nov 27. 2021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쓸데없이 진지한 일기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려고 마음을 잔뜩 떼어낸다면 서른 살쯤 되었을 땐 남는 게 없단다.

그땐 새로운 인연에게 내어줄 게 없지.

그런데 아프기 싫어서 그 모든 감정을 버리겠다고?

너무 큰 낭비지.

주제넘은 말이었니?

그럼 하나만 더 얘기할게.

이 얘긴 좀 편할 거다.


나도 기회가 있었지만 너희와 같은 감정을 못 가져봤어.

늘 뭔가가 뒤에서 붙잡았지.

앞을 막아 서기도 하고.


어떻게 살든 네 소관이지만

이것만 기억하렴.


우리 몸과 마음은 단 한 번 주어진단다.

그런데 너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닳아 해지고

몸도 그렇게 되지.

아무도 바라봐 주지 않는 시점이 오고

다가오는 사람들이 훨씬 적어진단다.


지금의 그 슬픔, 괴로움, 모두 간직하렴.

네가 느꼈던 기쁨과 함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아버지의 대사 중에서



올리버와의 단둘이 여행을 하고 혼자 돌아와 아파하는 아들을 받아주며 아버지가 들려준 말이다. 이런 부모가 또 있을까? 돌아온 엘리오에게 '웰컴 홈'이라고 말하는 아버지. 아들의 모든 것을, 기쁨도 슬픔도 아픔도 고통도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던 부모. 나라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아마 아들을 잃어버릴 행동과 말을 했을 것 같다. 애틋하게 아름다운 영화다. 



 17살 엘리오와 아버지 일을 돕는 24살 대학원생 올리버의 특별한 관계를 그린 영화다. 눈부신 초록과 햇빛, 아름다운 자연과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는 풍경. 6주간의 폭풍 같은 시간을 보낸 엘리오의 이야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남자가 남자를 사랑한 이야기, Call me by your name 직역하자면 너의 이름으로 나를 불러달라는 뜻이다.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한 문장이다.

“Call me by your name, and I’ll call you by my name 너의 이름으로 나를 불러줘, 그러면 나의 이름으로 너를 부를게.” 

 올리버와 엘리오가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며 올리버는 위와 같이 말한다. 이 말은 연인에게서 느끼는 일체감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자꾸 부모에게 몰입되었다. 엘리오가 내 아이였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영화 속에서는, 영화니까, 나는 하지 못하는 것을 엘리오 부모에게 기대한 바가 있기는 했다. 아들에게 더 큰 상처를 주어 아들이 망가지는 지름길로 내몰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엘리오의 부모의 태도에 가슴이 뭉클했다.


엘리오의 부모는 여러모로 이상적인 부모의 전형이다. 그러나 그런 부모의 모습이란 현실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희망일 가능성이 높다. 내 인식의 한계에서는. 엘리오에게는 아픈 첫사랑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의 그 아이가 감당해야할 현실은 가혹할 것이어서 부모라면 바라 보기만 하기 힘들 테니까. 아무리 부모가 성소수자를 이해하는 진보적이고 열린 사람들이라고 해도 현실은 부모가 보여주는 이상처럼 될 수 없다는 것을 엘리오는 깨닫게 될 것이다. 


올리버가 먼저 엘리오로부터 떠나기 위해 머물기로 예정했던 날을 당겨서 떠날 때 엘리오의 부모는 두 사람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주선해준다.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나라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을 그들은 결정한다. 첫사랑과 함께 한 이 여행의 기억이 엘리오에게 어떻게 남을 것인가를 계산하며, 나는 내 자식에게 바라듯 엘리오의 특별한 첫사랑이 상처로 남지 않기를 바랐다. 


한정된 시간의 사랑, 결국 두 사람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끝이 있어서 더 애틋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시간이 지난 어느 겨울,  흰 눈이 내려 쌓인 날 엘리오는 올리버의 전화를 받는다. 올리버가 약혼한다는 이야기였다. 활활 불이 타오느는 벽난로의 불꽃을 바라보는 엘리오의 눈에 눈물이 줄줄 흐르는 것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조용히 어떤 소리도 움직임도 없이 엘리오가 눈물을 흘릴 때 나도 같이 눈물을 흘렸다. 잊히지 않는 장면이다. 여름에 시작해서 겨울에 끝남. 한 소년의 첫 사랑이 그렇게 막을 내린 것이다. 마치 내 자식의 아픔을 보는 듯했다. 세상의 엘리오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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