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심야독서
"지나고 보니 그 시절이 참 좋았어."
그런 말을 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돌아보는 날이 많아졌다는 뜻이지요.
누구라도 앞으로 얼마나 오래 더 살는지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살아온 날이 살아갈 날보다 많은 건 분명한 나는 지난 날, 그때가 좋았지 라고 말하는 날이 점점 많아집니다.
어제 끝난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80년대 90년대 10대를 보낸 젊은이들의 이야기인데, 그 시절 그보다 훨씬 전에 10대를 보낸 내게도 추억을 소환하게 하더군요. 돌아보니 그 시절도 녹록한 시간을 보낸 건 아닌데도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다 놓은 지는 오래되었지만 지난 주에서야 읽은 책, <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대>를 읽은 소감도 마찬가지입니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파리의 4,50년을 벨 에포크 시대라고 한 대요. 우리말로는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뜻이랍니다. 이 책도 돌아보니 그 시절이 아름다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때도 격동하던 시대였지만 1차 2차 세계대전을 겪고 나서 돌아보니 그래도 그때가 아름다운 시절이었더라는 거지요. 그 주장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긍할 것 같아요.
우선 오늘날 이름이라도 들은 적 있는 유명인들 상당수가 그 시대 사람들이더라구요. 인물이 쏟아져 나오는 시기가 있는 것 같아요. 모네, 마네, 드가, 피사로, 고흐, 고갱, 로댕 같은 인상파 화가에서 피카소, 쿠루베 같은 인물들은 물론 에밀 졸라, 폴 발레리, 쥘 베른과 미국에서 건너온 헤밍웨이, 거트루드 스타인도 파리의 동시대 인물이었어요. 드뷔시, 에릭 사티, 푸치니, 베르디 같은 음악가, 마리 퀴리도 당대 파리에서 동시에 살았더라구요.
빛이 강하면 그림자로 진해서 파리의 어두운 면도 화려한 인물의 면면 못지 않습니다.
드레퓌스 사건처럼 반유대주의로 인한 혐오주의가 온 유럽을 강타하던 시절이기도 했지요. 산업사회로의 전환은 농촌 사회 붕괴로 이어져 많은 젊은이들이 도시로 유입돼 파리 외곽에 빈민으로 살았구요. 잘 나가는 작가들이 있었지만 오스카 와일드는 굶어 죽었고 , 마네는 31살에 전염병에 걸려 죽는 등, 인물이 많았으나 치료약으로 페니실린 정도가 발견된 시대로 재능을 못다 꽃피우고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떴더라구요. 또 가난한 여성들의 삶이 특히 비참했는데 허드렛일로 생계를 꾸리고, 몽마르뜨엔 창부들이 남쳐나기도 했대요.
딱한 건 발레리나가 되려고 공부하는 어린 소녀들의 꿈이 스폰서를 구하기 위해서였대요.
벨 에포크, 그 시대 모습을 지금 한국에서 보고 있는 것만 같아요. 밝은 면으로든 어두운 면으로든요. 한국판 벨 에포크라는 생각을 합니다. 영화, 음악(대중음악 클래식 전방위적으로), 문학 등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시대를 살고 있는데, 사회를 중심 잡아주는 담론이 없다는 점이 벨 에포크 시대 파리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파리 18구역에 자리잡고 가난한 예술가와 보헤미안과 창녀와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살았던 몽마르트가 서울 어딘가이 있을 것 같고, 그 당시 파리에서 있었던 일들이 지금 서울에서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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