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대'를 다시 읽다
탄핵시대에 책읽기!
불면 따위는 없었다. 그런데 내가 뭐라고, 잠이 오지 않는 날을 보내고 있다. 일을 하려고 앉았어도 눈과 귀가 자꾸 계엄 소식으로 향한다. 힘든 사람을 더욱 힘들게한 게 고작 한 사람의 터무니없는 행동 때문이라니!
계엄을 발표하던 날을 잊을 수 없다. AI로 누가 장난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사실이었고, 그 사실이 현실적이지 않아서 더 당황스러웠다.
오래전 읽었는데, 막연히 어떤 책이었다고만 기억되는 책 <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대>를 다시 꺼내왔다. 인벨 에포크의 시대의 서막도 피와 함께 열렸다. 어려운 시대였으나 없이 사는 사람의 어려움은 생존이 걸린 시대였다.
인간의 역사는 스위치백 기차처럼 앞으로 나아갔다가 뒤로 후진하며,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으로 이어져왔다. 그러나 분명한 건 기어이 올라간다는 것.
차가운 겨울바람이 창을 때리는 지금, 따스한 햇살 아래 꽃이 만개했던 봄날을 떠올려보자.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유럽 대륙을 휩쓸었던 황홀한 봄날이 있었다. 바로 '벨 에포크(Belle Époque)', 아름다운 시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시기다.
'벨 에포크(Belle Époque)', 아름다운 시대
산업혁명의 열기가 식지 않은 채, 유럽은 경제적인 번영을 누렸다. 증기기관차는 도시와 도시를 연결했고, 예술과 문화는 꽃을 피웠다. 파리의 거리는 화려한 빛깔로 물들었고, 카페에는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모여 열띤 토론을 벌였다.
모네의 붓이 포착한 빛과 그림자, 르누아르의 화려한 색채, 드뷔시의 감미로운 음악은 벨 에포크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적 아름다움이다. 에펠탑은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고, 백화점은 소비 문화를 이끌었다. 사람들은 미래를 낙관하며 삶을 즐겼다.
하지만 벨 에포크는 영원하지 않았다. 1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비극이 닥쳐오면서 황금기는 막을 내렸다. 전쟁의 참혹함을 겪은 사람들은 과거의 평화로운 시절을 그리워하며 벨 에포크를 '아름다웠던 시대'라고 불렀다.
벨 에포크는 단순히 과거의 한 시대가 아니다. 그 시대의 예술과 문화는 여전히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있으며, 삶을 즐기는 태도는 현대 사회에서도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시기도 고통스러운 사건들로 문을 열었다.
파리 코뮌: 혁명과 좌절의 드라마
원인은 전쟁의 상처와 사회 불평등의 심화였다.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패배한 프랑스는 깊은 상처를 입었다. 특히 파리는 프로이센 군에 포위되어 식량 부족과 질병에 시달렸고, 전쟁 배상금 지불이라는 막대한 부담을 떠안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파리 시민들은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고, 사회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었다. 특히 노동자 계급은 열악한 생활 조건과 정치적 소외감에 시달리며 혁명의 싹을 틔웠다.
1871년 3월, 파리 시민들은 정부의 무능과 억압에 맞서 봉기했다. 시민들은 자치 정부인 파리 코뮌을 수립하고, 사회주의적인 정책을 실시했다. 코뮌은 노동 시간 단축, 임금 인상, 공공 서비스 국유화 등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를 취했다. 또한 종교와 국가의 분리, 교육의 평등화 등 진보적인 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코뮌은 베르사유에 자리 잡은 프랑스 정부군의 공격에 직면했고, 2개월 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파리 코뮌은 잔혹하게 진압되었고, 수많은 코뮌 회원들이 처형되거나 투옥되었다. 코뮌의 짧은 역사는 비극으로 끝났지만, 그 의미는 오래도록 기억되고 있다. 파리 코뮌은 노동자 계급의 자주적인 정치 참여와 사회 변혁에 대한 열망을 보여준 역사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또한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비롯한 사회주의 사상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으며, 이후 세계 각국의 사회주의 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누구나 힘든 시기였지만 모두가 똑같이 힘들지는 않았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쪽은 가난한 자들이었고, 그들의 절망과 분노가 코뮌의 원동력이 되었다.
벨에포크, 아름다운 시절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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