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여자의 공간>(타니아 슐리)에는 다양한 장소에서 고개를 숙인 채 글을 쓰고 있는 여성 작가들의 사진이 많다. 이 사진들은 그들의 글 쓰는 환경이나 생활 환경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와 조앤 K. 롤링은 카페에서 글을 썼다. 보봐리는 난방 안 되는 집보다 카페가 나아서라고 하지만 단지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요리와 청소 등 살림살이가 글쓰기를 방해한다고 여긴 것도 있다. 흑인 여성 작가 ('흑인', '여성'이라는 수식어는 그녀의 환경을 이미 잠작케 한다) 토니 모리슨은 처음 글을 쓰던 시절, 새벽에 식탁에서 글을 썼다. 어린 두 아들을 키우느라 방해받지 않고 글을 쓰려면 새벽 시간밖에 없었다. 여담이지만 나는 토니 모리슨을 동화책 <네모 상자 속의 아이들>로 먼저 알았다. <재즈>로 노벨상 수상 작가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
마음 만 먹으면 글을 쓸 수 있다. 하지만 자기만의 방, 책상이 있다면 더 행복할 것이다. 나는 아직도 나를 위해 산 책상이 없다. 오랫동안 식탁, 탁자, 아이들 책상, 마니의 설계대 등에서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수업 준비를 했다.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책상이 정해지긴 했으나 그 또한 나를 위해 산 것은 아니었다.
컴퓨터는 이리저리 쉽게 들고 다닐 물건이 아니었다. 식구들 누구도 내가 책상 없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읽고 쓴다는 것을 눈여겨보는 것 같지도 않았다. 불편하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내 책상을 주장할 한 처지도 아니었다. 책상을 들여놓고 내가 밖으로 나앉아야 할 형편이었고, 무엇보다 책상과 맞바꿀 만한 소득원이 내게 없는 게 이유였다. 그럼에도 때때로 쓸쓸해졌는데, 온 집안이 내 공간이었으나 나만을 위한 공간은 없다는 것에.
스티븐 킹은 품안에 돈이 생기자 가장 먼저 소망했던 떡갈나무 책상을 들인다. 가장 좋은 방에 한 가운데 책상을 놓았다. 방 전체를 압도하는 책상을 갖고 싶었다는 스티븐 킹의 소망에 공감한다. 단단하고 아름다우며 떡갈나무 향기가 나는 책상이라면 글도 더 잘 써지지 않겠나.
스티븐 킹이 원작자인 영화를 볼 때마다 그는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쓸까 부럽지만, 그에게도 찢어지게 가난한 시절이 있었다. 셋집을 전전하며 아내는 던킨 도너츠에서 일했고 스티븐 킹은 세탁소에서 병원과 식당과 호텔에서 나오는 세탁물을 빨며 공포 영화 대본을 썼다.
장편소설<캐리>로 돈이 들어오고 수입이 늘면서 그는 오랫동안 품어온 '글 잘 써지는 환경'을 만든다. 마음에 드는 책상을 구하여 채광창이 있는 널찍한 서재 한복판에 놓는다. 책상 앞에 앉기만 해도 글이 술술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 책상은 고작 6년을 쓰고 레고 분해하듯 분해해서 치운다. 책상이 있던 자리에 양탄자를 깔았다. 그러자 아이들이 이 방에 들어왔다. 아이들은 이 방에서 농구 경기를 보거나 영화를 보면서 피자를 먹고는 했다. 책상은 집필실 구석에 붙여놓고.
"인생은 예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뭐만 있으면!' 종종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막상 바라던 '무엇'이 생겨도 변하지 않는다는 걸 경험으로 안다.
스티븐 킹의 저 말은 삶과 꿈이 따로 가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작가들은 언제 어떤 조건에서 글이 잘 써지는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노벨상 수상 작가인 토니 모리슨은 이제 커다란 책상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글을 쓸 수 있지만 여전히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쓴다. 누구나 자신에 맞는 글쓰기 좋은 공간이 있을 것이다. 그곳이 어디든 글을 쓰는 공간이 때로 피난처가 되기도 하고 가장 편안한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얼마전 선배로부터 벚나무로 만든 원목책상을 가져가겠느냐는 연락을 받았다. 언젠가 선배 집에 갔을 때 봤기 때문에 어떤 책상인지 안다. 붉은색이 아름답게 길이 든 멎나무 원목책상. 그러나 나는 사양했다. 우선 크기가 우리 집에 맞지 않다. 그건 57평 집의 서재에 맞춰 짠 책상이다. 마음이 흔들렸다. 가져와서 어디에 놓을까를 궁리해 보기도 했다. 책상이 없어서 글을 못 쓰는 것도 아닌데.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나쁜 엄마>에 주변적인 인물 중 트롯가수 겸 작곡가가 나온다. 그는 돼지농장이 자신의 창작활동에 방해가 된다며 지속적으로 민원을 넣어 '나쁜 엄마'인 라미란을 곤혹스럽게 한다.
창작활동에 주변환경이 영향이 없을 수는 없다. 밥상에 앉아 글을 쓰는 것보다 나무 향이 나는 책상이 더 좋을 수 있다. 글쓰는 시간을 확보하느라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던 토니모리슨은 충분한 환경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쓴다. 스키븐 킹은 세탁소 구석에서 소설을 쓰던 것처럼은 아니지만 그토록 원했던 채광 좋은 창 넓은 방에 향기나는 원목 책상, 그것을 방 한쪽이 밀쳐두었다고 한다.
삶과 분리돼서 이루어지는 꿈은 허약하다.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가 꿈의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