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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패티 Jul 15. 2024

30대 가장의 마음을 다시 세워준 이야기

긴긴밤

긴긴밤 | 루리| 문학동네


30대, 정확히는 1년만 있으면 마흔이 된다는 남자분이 제 글쓰기 수업에 참어했습니다. 온라인으로 이뤄지는 글쓰기 수업으로, 이메일로 글을 써 보내면 저는 이메일로 첨삭 답장을 보내는 식이지요. 참가자들은 처음엔 머뭇 거리지만 곧 진솔한 자기 이야기를 씁니다. 이메일 글쓰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6개월여, 글을 주고 받으며 저는 그가 초등생 아들을 둔 가장이며, 어떤 시험인지 모르지만 국가 고시에 여러 차례 낙방하고, 스트레스가  원인으로 짐작되는 병을 앓고 있나보다 짐작할 수 있었어요. 당시는  도전까지 멈춘 상태라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글쓰기 공부 외에 더러 책 추천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주로 동화책 추천을 바랐습니다. 동화책을 추천해달라는 마음이 이해 될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리운 메이 아줌마>, <굿바이 마이 프렌드>, <소희의 방>, <순례씨 주택>, <책과 노니는 집>,< 유진과 유진> 같은 성장 소설을 추천했습니다. 동화책을 순례하다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여름의 잠수>, <비에도 지지 않고>,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멈춰 서서>와 같은 그림책을 추천하기도 했습니다. 마치 숙제를 하듯 꼬박꼬박 읽으며 따라오는 그에게 <신갈나무 투쟁기>, < 두더지 잡기>, <야생의 위로> 같은 자연을 연구하는, 삶의 터전으로 삼아 위로와 치유 받는 사람의 수필을 추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추천한 책 중 하나인 그림책 <긴긴 밤>이라는 동화를 읽고, 포기했던 일을 다시 해보기로 했다는 글을 보내왔습니다. 정확히는 그 책 어디가 그의 마음을 다시 세우게 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보내온 글 <긴긴 밤>에서 뽑은 몇 구절로 짐작해 볼 뿐입니다.   


그가 뽑은 구절은 동화의 결말 부분이었습니다. <긴긴밤>은 고아 펭귄이 노든이라는 코뿔소의 도움으로 바다로 가는 꿈을 이룬다는 이 동화입니다. 어른이 더 좋아한다는 동화입니다.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내개 저 바닷물 속으로 곧 들어갈 것을, 모험을 떠나게 될 것을, 홀로 긴긴밤을 견뎌 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어린 펭귄이 바다에 당도하기까지 겪은 고난이 끝이 아니라는 것,  또 홀로 견뎌야 하는 긴긴밤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바다로 뛰어드는 장면을 읽을 때 눈물이 났다고 했습니다. 다만 펭귄은 '무언가를 찾은 지금을 소중히 기억할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특히 눈여겨 본 것은 '펭귄이 어리다'는 점이었습니다. 본인의 처지와 비교했을 것 같아요. 펭귄은 목표를 달성했어도 긴긴밤이 또 오리라는 것을 압니다. 알지만 가야할 곳이기라는 것도 압니다. 그도 펭귄을 통해 자신의 길을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책을 읽고 기억 나는 좋은 구절이나 줄거리는 많습니다만 결심을 세우게 한 경험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유명 인사들의 독서경험을 들을 때마다 생각해 봅니다만 역시 '이것이다'라고 할만한 경험이 제게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기 있는 나는 그동안 읽은 많은 책 중 어느 한 구절의, 한 페이지의, 한 권의 영향을 받았겠지요. 날마다 식사를 하지만 그중 무엇이 내몸 어디로 가서 어떻게 영향을 주었다 구분할 수 없는 것처럼 구분해 낼 수 없는 거겠지요. 이제는 마흔이 되었을 그도 단 한 권 <긴긴밤>으로 결심을 세웠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 결심대로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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