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망치를 잡은 손으로 <코스모스> 이해하기

by 김패티


“망치는 손의 형태를 결정짓고, 나는 내가 선택한 삶을 거푸집 삼아 산다.” 늙은 정원사 마크 헤이머의 에세이 <두더지 잡기>에 나오는 문장이다. 나는 평소 책을 읽을 때 내용을 정리해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해 줄 생각을 하며 읽는 습관이 있다. 그런데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다.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동안 내가 잡은 ‘망치’가 내 독서 성향을 만들었고, 내가 선택한 읽기로 만든 ‘거푸집’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망치와 거푸집으로는 칼 세이건의 방대하고 심오한 우주 이야기를 온전히 담아내기 어려웠다. <코스모스>는 단순히 지식의 전달을 넘어, 내가 살아온 방식과 사고의 틀을 흔드는 경험이었다. 내가 쌓아 올린 지식과 경험의 한계를 직시하게 만들었고, 그 너머의 광활한 세계를 향한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 좁은 우물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던 나에게, 우물 밖의 우주를 보여준 것이다.


<코스모스>는 내게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지구가 얼마나 특별한 곳인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기막힌 확률로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깨닫게 해줬다. 더불어, 오늘날 우리가 천동설을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그것이 인류가 쌓아 올린 과학 문명의 첫 벽돌 중 하나라는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 동시에 지금 우리가 이룩한 과학적 성취 또한 미래의 누군가에게는 '천동설'처럼 여겨질 수 있다는 생각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문해력은 경험과 지식의 총체인 문화적 이해에 기반한다고 한다. 읽고 경험할 것은 무한히 많은데, 총명하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 것만 같다.


KakaoTalk_20250319_094751671_01.jpg?type=w3840 창백한 푸른 점 <코스모스>에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젊은 감성에 흔들리며 읽었던 베르테르의 슬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