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누구에게도 호의적이지 않다. 그 사실을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이마를, 눈썹을 , 뺨을 물큰하게 적시는 진눈깨비. 모든 것은 지나간다. 그 사실을 기억하며 걸을 때, 안간힘을 다해 움켜쥐어온 모든 게 기어이 사라지리란 걸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비도 아니고 눈도 아닌 것. 얼음도 아니고 물도 아닌것. 눈을 감아도 떠도, 걸음을 멈춰도 더빨리해도 눈썹을 적시는, 물큰하게 이마를 적시는 진눈깨비. "(59p)
예상치 못한 재난은 개인의 의지와 노력을 무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은퇴 후 모아온 퇴직금을 투자하여 운동 용품 가게를 연 한 사람이 있었다. 작년 8월이었다. 그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자신의 미래를 위해 열정적으로 일했다. 남들보다 일찍 문을 열고 남들보다 늦게 문을 닫았다. 친목 모임에도 나오지 않는 그에게 사람들은 그가 사업과 연애한다고 칭찬인지 응원인지 모를 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사업을 접었다고 했다. 가게를 열수록 적자가 커졌다고 했다. 사회적 혼란과 지속적인 경기 불황,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 외부적인 악재가 그사람이라고 피해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단단한 의지나 피나는 노력과는 상관없이, 적어도 지금은 그에게 삶이 호의적이지 않은 것 같았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걸 알지만 그 말을 하지는 못한다. 이미 녹으면서 내리는 진눈깨비는 말할 것도 없고, 함박눈 송이조차 살에 닿는 순간 물방울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안간힘을 다해 움켜쥐는 게 인간이라고, 차마 말하지 못하겠다. 무력할수록 통제 영역 바깥의 일이 얼마나 많은가.
삶은 종종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 방향으로 흘러간다. 아무리 철저히 계획하고 성실하게 노력한다 해도, 외부적인 요인이나 예측 불가능한 상황으로 인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이는 삶이 특정 개인에게만 가혹한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닥칠 수 있다. 삶의 본질은 끊임없는 변화이며, 그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삶에 시련이라는 단면만 있을까? 삶은 누구에게나 시련과 성장의 기회를 동시에 제공하는 무대와 같다. 호의적인 듯 보일 때조차도 이면에는 늘 변화와 도전이 숨어있다는 걸. 삶의 본질은 끊임없는 움직임이며, 그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심지어 그저그런 무난한 일상조차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하는 존재들이라는 걸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