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에 대하여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의 첫 에세이 『호의에 대하여』는 법의 엄정함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우리에게 울림을 전하는 책이다. 이 책은 단순히 한 법관의 회고록이 아니라, 편견과 독선에 빠지지 않고 평범한 삶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성찰해 온 한 사람의 기록이다.
자작나무와 지리산, 도스토옙스키와 몽테스키외를 오가며 법과 삶의 경계를 허무는 120편의 글은 독자들에게 ‘호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호의가 어떻게 사람과 세상을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밑즐 긋게 하는 문장이 많았지만 그 중 두 개를 옮긴다.
"세월의 부피가 아니라 세월의 무게가 중요하다"
단순히 나이만 먹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고민과 경험, 깨달음으로 채워야 한다는 깊은 조언이다. 텅 빈 부피가 아니라, 삶의 깊이와 내면의 힘을 길러야 진정한 가치를 지닌 삶이 된다는 것. 나이라는 숫자 자체에 얽매이지 않고, 적극적인 성찰과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무게를 더해나가는 삶의 태도를 강조한다.
"좋은 판결이란 식물처럼 자란다"
판결이 단순히 법 조문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결과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다는 통찰을 담고 있다. 좋은 판결은 세 가지 요소가 어우러질 때 완성된다. 먼저,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라는 좋은 '토양'이 필요하다. 여론이라는 거센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잡는 힘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실'이라는 뿌리 위에서 '타당성'이라는 줄기를 뻗어나갈 때 비로소 굳건하고 생명력 있는 판결이 탄생한다. 이는 판사의 역할이 단순한 법 집행자를 넘어, 인간과 사회를 아우르는 지혜로운 원예가와 같음을 보여준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인 '호의'는 재소자에게 '자살'을 '살자'로 바꾸어 들려주었던 에피소드처럼, 타인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저자의 따뜻한 진심이 녹아 있다.
"아름다운 사람이 많다. 절망하기엔 아직 이르다"라는 그의 말처럼, 이 책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놓치기 쉬운 작은 호의와 인간다움의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40~50대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는 사실은, 이 책이 시대를 살아가며 쌓이는 고민에 대해 진정한 위로와 해답을 제공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 같다.
미디어를 통해서 본 문형배 재판관이 온화한 얼굴로 음성 지원하는 듯이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