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이 바로잡아주는 것들

베니스의 상인

by 김패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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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은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읽는 것



고전은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읽는다. 하나는 작품이나 주제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고 착각했던 오해를 깨닫는 것. 제목이나 단순한 줄거리만 알았던 작품의 깊은 맥락(예: <베니스의 상인>에서 샤일록의 복수심 뒤에 숨겨진 반유대주의라는 사회적 압력 등등)을 통해 지식의 피상성을 인지하고 '아는 것 같았으나 몰랐던' 부분을 채우는 것이다.



또 하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가치관의 상대성을 깨달으며 세상을 보는 인식의 한계를 넓히는 것이다. 고전을 통해 독자는 자신의 현대적 시각이 특정 시대와 문화에 국한된 것임을 깨닫고, 과거의 사람들이 가졌던 다양한 관점과 그들의 삶의 복잡성을 포용하게 되면서 사고의 지평이 확장된다.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 독후감: 돈, 복수, 그리고 지혜의 재판



<베니스의 상인(The Merchant of Venice)>은 단순히 희극으로 분류되지만, 그 안에는 16세기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돈과 복수, 사랑과 우정, 그리고 법과 정의에 대한 복잡한 질문들이 얽혀 있는 셰익스피어의 걸작. 특히, 작품 속 인물들의 미묘한 관계와 포샤의 뛰어난 지혜는 오늘날에도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포샤 덕분에 미국에서는 포샤 이름을 딴 여성 법조인양성학교가 탄생하기도 했다고 한다.



살 1파운드를 건 계약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는 친한 친구 바사니오가 벨몬트의 상속녀 포샤에게 청혼할 자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보증을 선다. 평소 안토니오에게 멸시를 받아온 샤일록은 복수심에 3,000 두카트 대신 기한 내에 갚지 못하면 안토니오의 심장에서 가장 가까운 살 1파운드를 베어가겠다는 계약을 요구한다.


안토니오의 무역선들이 난파되어 빚을 갚지 못하게 되자 샤일록은 계약 이행을 주장하며 안토니오를 고소한다. 한편, 바사니오는 포샤의 지혜로운 선택을 통해 그녀와 결혼에 성공한다. 남편의 친구가 위험에 처했다는 소식을 들은 포샤는 남장을 하고 젊은 법률가로 변신하여 재판에 나타나, 기발하고 지혜로운 판결로 안토니오의 목숨을 구하고 도리어 샤일록을 곤경에 빠뜨린다.



유대인 박해와 반유대주의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배경은 당시 유럽 사회의 반유대주의 정서다. 16세기 베네치아 공화국은 무역의 중심지였지만, 유대인들은 특정 구역(게토)에 갇혀 살아야 했으며 기독교 사회로부터 심한 차별을 받았다. 당시 이탈리아 대부분의 도시마다 유대인 게토가 있었다.


샤일록이 고리대금업을 한 것도 기독교인에게는 이자놀이가 금지되었기 때문에 유대인에게 강요된 직업이었다. (오늘날에는 '고리대금업'에서 '고리'를 뺀 '대금업'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작품 속에서 안토니오를 비롯한 기독교인들은 샤일록을 거리에서 모욕하고 침을 뱉는 등 노골적으로 멸시하는데, 샤일록의 극단적인 복수심은 이러한 사회적 박해와 소외감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샤일록의 우리도 똑같이 눈이 있고 손이 있고 감정이 있지 않은가? 는 유대인도 인간임을 외치는 절규로 해석되기도 한다.



우정 그 이상의 안토니오와 바사니오의 관계


작품 속에서 안토니오와 바사니오의 관계는 단순한 우정으로 보기 어려운 미묘한 감정을 담고 있다. 어릴 적 읽을 때는 눈치채지 못했던 부분으로 안토니오는 작중 내내 깊은 우울함을 보이는데, 이는 바사니오가 여자(포샤)에게 빠져 자신을 떠날 것이라는 상실감 때문이었다.


안토니오는 바사니오의 청혼 자금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걸 만큼 헌신적이며, 재판정에서도 바사니오에게 자신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이는 바사니오를 향한 안토니오의 감정이 열렬한 연모(戀慕)에 가까웠음을 시사한다. 바사니오 역시 재판 직후 포샤보다 안토니오의 목숨을 구한 '법률가'에게 결혼 반지를 건네는 실수를 저지르며, 그의 마음속에서 안토니오와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우정 이상의 동성애적 코드'는 작품 이면에 숨겨진 복잡한 인간 심리를 보여준다.



시대의 장벽을 넘는 지혜: 포샤의 결단력


포샤는 작품의 핵심적인 갈등을 해결하는 구원자이자 가장 매력적인 인물로 가장 많은 부분에 등장한다. 혹자는 포샤야말로'베니스의 상인'의 주인공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청혼자들에게 강요된 '세 상자 선택'이라는 수동적인 상황에 놓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얻기 위해 바사니오에게 힌트를 주는 능동성을 발휘한다.


특히, 재판 장면에서 그녀의 시대 상황을 뛰어넘는 결단력과 지혜가 빛난다. 남성만이 법률가가 될 수 있었던 시대적 제약을 뛰어넘어 남장하고 법정에 선 포샤는, 샤일록의 계약서 내용을 문자 그대로 해석함으로써 샤일록의 복수를 무력화시킨다. "살 1파운드는 가져가되, 피는 한 방울도 흘리지 말고, 살은 정확히 1파운드만 가져가라"는 포샤의 판결은 계약의 형식을 존중하면서도 그 안에 숨겨진 잔인함과 모순을 꿰뚫어 본 통찰의 산물이다. 포샤의 활약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이 발휘할 수 있는 지성과 정의의 승리를 상징합니다.



진정한 정의란 무엇인가?


<베니스의 상인>은 단순한 해피 엔딩의 희극이 아니다. 포샤의 재판으로 안토니오가 구원받고 바사니오가 사랑을 얻지만, 샤일록은 전 재산을 몰수당하고 강제로 개종당하며 파멸합니다. 기독교인들의 우정과 사랑이 행복하게 마무리되는 순간, 유대인 샤일록의 비극이 대비되면서 진정한 정의와 자비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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