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목소리를 찾아준 문장들

작은 일기

by 김패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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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지 한참 지난 책 독후감을 이제야 쓴다. 단어들 때문이다. 황정은 작가의 문장이 내면에 숨어 있던 감정들을 비로소 세상 밖으로 꺼내준 것 같다.




《작은 일기》는 내 안의 목소리가 되어준 기록이었다. 단어가 없어서 못 쓴 게 아닌데 나는 써내지 못한 감정을 여기서 보았다. 그가 한 말은 바로 내 말이었고, 그가 느낀 감정은 바로 내가 느낀 감정이었다.



작가가 담아낸 문장들은 마치 깊은 땅속을 흐르던 지하수가 터져 솟아오른 물 같다. 감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어 가슴속에 응어리졌던 시대의 슬픔과 불안을 작가는 정직하게 마주한다. 특히 다음 문장들은 그 혼돈의 시기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2024년 둘째 주, 지금으로선 이름도 붙이지 못할 이 기간의 불안과 울분을 어떻게 기록해야할까. 감히. 혼란이 어느 정도 가시고 나니 이 말만 입속에 줄곧 서 있다. 감히."



이 '감히'라는 단어 속에 얼마나 많은 주저함과 엄숙함이 담겨 있는지. 우리 모두는 그 시간을 지나오면서, 이 거대한 슬픔과 분노를 감히 어떻게 다뤄야 할지 망설였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광장을 축제처럼 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작가는 집회의 가장 깊은 근원을 슬픔에서 찾는다.



"누가 그랬나. 케이팝과 응원봉의 물결을 보며 축제 같다고. 그런 면도 물론 있지만 이 집회의 가장 깊은 근원을 나는 그 순간에 본 것 같았다. 슬픔. 저마다 지닌 것 중에 가장 빛나는 것을 가지고 나간다는 그 자

리에 내가 바로 그것을 쥐고 나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무사를 바라며 앉아 있었다."



이것이 바로 연대의 가장 순수한 모습이다. 가장 빛나는 슬픔을 들고 나간 자리에서, 우리는 서로의 무사를 바랐다. 눈이 내리는 차가운 밤에도 사람들이 자리를 지켰다는 그 기록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는 인간의 숭고한 의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 한편에는 비통함도 존재했다. 작가가 느낀 비참은 곧 나도 느낀 죄책감과 분노다.



"오늘은 투표로 그를 대통령 자리에 올리고도 주말마다 레저를 즐기고 스포츠를 관람하러 간다는 어느 부부를 속으로 원망했다. 너희가 만든 세상, 죽은 사람들, 그들을 생각해서라도 거리로 나가. 밤이라도 새워. 감기에라도 걸려. 양심이 있으면 그렇게라도 병들어."



이런 생각을 하느라 종일 비참했다는 고백은, 고통받는 이들을 외면하는 세상을 향한 분노이자, 자신마저 온전히 그러지 못하는 데서 오는 자책감이었다. 삶이란 본래 이렇듯 선명하게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의 덩어리다.


작가는 결국 이 모든 마음을 단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하지 못한다.



"도대체 이 마음을 어떻게 글이나 말로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 미안하고, 놀랍고, 고맙고, 그리고 미안하고, 고맙고."



이 미안하고, 고맙고가 반복되는 문장은 시대의 고통을 견뎌낸 우리 모두의 가장 진실한 고백이다. 지키지 못한 이에 대한 미안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싸워준 이들에 대한 고마움. 이 감정의 순환이야말로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아냈다는 증거다.


《작은 일기》는 우리에게 위로를 건네기 전에 먼저 우리의 감정을 인정해준다. 당신이 느낀 모든 혼란과 비참함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말이다. 우리 삶은 이 작은 기록들처럼, 절망 속에서도 서로를 알아보고 마음을 나누는 순간들을 통해 다시 단단해지고 희망을 향해 나아간다. 이제 당신의 마음을 대신 말해준 이 문장들을 딛고, 조용하지만 힘차게 하루를 시작할 용기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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