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 관하여
제목은 <독서에 관하여>지만 '독서' 보다는 예술가와 그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다. 영국의 비평가 존 러스킨(John Ruskin, 1819~1900)의 책들을 불어로 번역하면서 쓴 에세이들(역자 서문이나 해설)로 짧게 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뿐, 나머지는 모두 화가들에 대해 쓴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날 미술평론은 전문 평론가나 철학자(주로 미학자)가 하지만 인상파가 활동하던 19세기까지만 해도 시인이나 소설가가 했다. 미술평론가나 철학자가 그들만의 언어로 쓴 예술론에 실망할 때, 그 대신 소설가나 시인이 쓴 어떤 글들에 감동한다. 이 책도 그렇다.
우리는 종종 과학자나 화가, 시인의 눈을 빌려 관찰한다. 평볌한 내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을 그들의 눈으로 통해서 발견할 수 있다. 푸르스트의 관찰력, 묘사, 그리고 그것을 감싸는 따스함이 읽히는 글을 읽어본다.
"나는 시골의 호텔들에 들어설 때면 기쁨을 느낀다. 그런 호텔에는 춥고 긴 복도를 따라 바깥바람이 들어와 난방장치가 애쓰는 것을 무색하게 만들고, 벽에 걸려 있는 유일한 장식이라고는 마을 지리가 자세하게 표시된 지도뿐이며, 작은 소음은 고요함을 이동시켜 그것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면서, 시원한 바깥 공기가 호텔 방에 갇혀 있던 공기 냄새를 씻어버리려 하지만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고, 후각은 그 내음을 상상하기 위해서 다시 맡아보려 백 번도 더 애쓰며 이를 모델 삼아 그 공기가 간직하고 있는 생각들과 추억들을 방 안에 재생시키려 하는 것이다. 저녁에 문을 열고 호텔 방에 들어가는 순간 나는 그곳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던 삶을 방해하는 것만 같고,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 식탁이나 창문이 있는 곳까지 가면 마치 무례하게 여인의 손을 잡은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독서에 대하여, 19p>
푸르스트는 이처럼 사소한 것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묘사하며, 의미를 부여하여 해석을 한다.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을 읽을 때 친구가 와서 같이 하자는 놀이, 페이지에서 눈길을 돌리게 하거나 자리를 바꾸게 만드는 귀찮은 꿀벌이나 한 줄기 햇빛, 손도 대지 않은 채 옆에 있는 벤치 위에 밀어둔 간식, 파란 하늘 속으로 해가 점점 그 힘을 잃어가면 집에 들어가서 먹어야 하는 저녁식사---". <독서에 관하여, p9>
책에 푹 빠져 있을 때, '같이 놀자'고 부르는 친구의 목소리나, '눈길을 돌리게 하는' 꿀벌, 혹은 '자리'를 옮기게 만드는 햇빛 한 줄기 같은 사소한 방해물들이 오히려 독서의 순간을 더욱 특별하고 선명한 기억으로 만들었다는 점을 깨닫게 한다.
푸르스트는 독서를 방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독서의 일부이자, 그 순간을 규정하는 배경임을 섬세하게 포착했다. 책의 내용뿐 아니라, 그 책을 읽었던 시간, 장소, 그리고 그곳에 있던 모든 요소들이 우리의 추억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벤치 옆에 놓아둔 '손도 대지 않은 간식'이나 '점점 힘을 잃어가는 해'는 책에 대한 몰입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다.
푸르스트의 관찰력은 독서에 몰입하는 순간조차도 우리를 둘러싼 주변의 모든 요소들이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했는지 포착해낸다.
나는 연민이 섞인 호감을 가지고 종종 화가 와토의 삶을 생각한다. 그의 작품은 회화이자 알레고리, 사랑과 즐거움의 예찬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의 전기작가들은 한결같이 그가 너무나 허약해서 사랑의 즐거움을 한 번도, 거의 한 번도 경험할 수가 없었다고 전한다. 그러다 보니 그의 작품 속 사랑은 구슬퍼 보이고 왠지 즐거움조차도 그런 것 같다. 우리는 그가 처음으로 근대적인 사랑을 그렸다고 이야기한다. 이 말은 즉 대화, 식탐, 산책, 슬픈 분장, 흐르는 물과 시간 등이 그림 속에서 즐거움 그 자체보다 더 큰 자리를 차지하고, 그러한 것들을 일종의 무기력한 화려함으로 보여주었음을 의미한다. <와토, 149쪽>
푸르스트는 화가 와토(Watteau)의 예술과 삶을 연결하며, 그의 작품에 담긴 독특한 감성을 분석하는 통찰을 담은 부분이다. 와토의 그림은 표면적으로는 사랑과 즐거움을 노래하지만, 푸르스트의 관찰력은 그 이면에 숨겨진 '슬픔'과 '무기력함'을 간파한다.
푸르스트는 와토의 그림을 단순한 시각적 이미지로 보지 않고, 작가의 내면을 투영한 심리적 풍경으로 해석했다. 그는 와토의 전기를 통해 그가 '허약한' 몸 때문에 사랑의 즐거움을 온전히 경험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이를 와토의 작품 속 '구슬픈' 정서와 연결 지었다.
'사랑의 환희'라는 겉모습과 '구슬퍼 보이는' 실제 감정의 대비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대화, 식탐, 산책, 슬픈 분장, 흐르는 물과 시간'과 같은 구체적인 요소를 나열하여 와토의 그림이 단순히 즐거움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 주변을 맴도는 무언가를 그리고 있다고 묘사한다.
'즐거움 그 자체보다 더 큰 자리를 차지'한다는 표현은 와토가 즐거움이라는 본질보다, 그 즐거움을 둘러싼 '무기력한 화려함'에 더 집중했음을 명확히 한다.
이처럼 우리는 푸르스트의 눈을 통해 와토의 작품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화려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모여 유쾌한 시간을 보내는 와토의 그림들은 사실 미완의 욕망, 혹은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을 향한 쓸쓸한 시선을 담고 있다.
내게 푸르스트는 어렵다. 이 책도 그렇다. 그러나 그의 글쓰기 방식에 익숙해지기를 기대하며 읽다보면 "잃어버린 시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의 사유의 세계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