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온 미래
여럿이 책을 읽다보면 생각도 의견도 다양하다. 그런 중에 과연 이책을 소장할 만한가, 이야기가 나왔다. 그에 대한 회원들이 이야기가 잠시 이어졌다. 책을 살지 말지 고민은 대체로 혼자 하고 마는데, 이번 책은 한 사람의 생각이 표출되어 얘깃거리가 되었다. <먼저 온 미래> 는 소장할 만한가? (내가 이 책의 작가라면? 흠흠~^^)
“이 책을 과연 사서 소장할 만한가?” 이 질문의 핵심은 이거다. 빠르게 진부해지는 과학기술 관련 서적의 운명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지난해 읽었던 AI 책의 기술이 이미 옛것이 되었다는 경험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시대의 속도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었다. 과연 <먼저 온 미래>는 그저 한때의 기술 트렌드를 좇는, 유통기한 짧은 책에 불과할까?
기왕 함께 읽기로 한 책이고, 읽는 사람이 많아서 도서관에서 빌리기도 어려운 책. 그리고 특별한 이유 없을 때는 책읽기를 하는 한 사람으로서, 책 모임에서 나온 문제를 잠시 생각해 보았다. 나도 종종 살지 말지 생각을 하기에. (모든 책은 그 나름의 가치가 있지만, 내가 소장하고 있는 적지 않은 분량의 책은 '페이퍼 인테리어'라고 회의한다)
기술의 '사실'이 아닌 '현상과 가치'를 담아낸 그릇
만약 <먼저 온 미래>가 최신 AI 알고리즘의 작동 원리나 당장 다음 달에 나올 하드웨어 사양을 담고 있다면, 당연히 그 가치는 빠르게 스러질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 이후, 바둑계라는 좁은 세계에 '먼저 온 미래'의 충격과 적응을 담아낸 르포르타주이자 깊이 있는 사색에 가깝다.
책의 핵심은 AI라는 '기술' 자체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 기술 앞에서 프로 기사들의 권위, 자부심, 그리고 바둑이라는 예술을 향한 가치가 어떻게 무너지고 변질되었는지를 생생하게 기록하고 질문하는 데 집중한다.
"좋은 바둑이란 무엇인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창의성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들은, 기술의 속도와 무관하게 모든 전문직 종사자와 창작자가 AI 시대에 던져야 할 본질적인 물음이다. 바둑이라는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우리는 소설가, 화가, 의사, 혹은 평범한 회사원의 세계에 닥쳐올 충격을 미리 엿볼 수 있다.
덧없이 변하는 시대의 '기준점'이 되는 가치
한 권의 책이 서가에 자리 잡는다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보관하는 것을 넘어, 생각의 기념비를 세우는 일과 같다. <먼저 온 미래> 속 바둑계의 경험은 다른 산업이 겪게 될 변화의 '원형(原型)'을 보여준다.
미구未久에 또 다른 분야에서 비슷한 위기를 겪게 될 때, 이 책은 우리가 '이 과정을 이미 겪은 적이 있다'고 말해주는 든든한 기준점이 되어줄 것이다. 미래의 격랑 속에서 우리가 흔들릴 때 책 속 프로 기사들의 고뇌와 선택을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장강명 작가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터미네이터를 막고 일자리는 지키더라도 어떤 인간적 가치들은 그 과정에서 틀림없이 부서질 것이다. (…) 그리고 우리는 그런 파괴가 일어난 뒤에야 그 가치들의 정체를 뒤늦게 알아차릴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기술 발전이 가져오는 인간 가치의 변질'이라는 주제는, 기술이 아무리 빠르게 발전해도 그 무게감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선명해지며, 시대를 초월하는 울림을 전할 것이다.
결국, <먼저 온 미래>를 샀다
최신 기술 정보를 얻고자 한다면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것이 현명할지 모른다. 하지만 <먼저 온 미래>는 '빠르게 변하는 기술'을 다루지만, 그 내용의 초점은 '변하지 않는 인간의 가치와 태도'에 맞추어져 있다.
기술의 발전은 거스를 수 없는 물결이다. 그 속에서 인간으로서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영원히 유효할 것이다. <먼저 온 미래>는 취재력을 바탕으로 한 그 고민의 내용으로 어떤 하나의 나침반 역할을 한다고 본다.
이 책을 읽고 난 후라고 해도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책 한 권에 그렇게 단순하게 내가 변화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어느 순간 문득 생각은 날 것이다. 그게 그 얘기였어, 공감할 것이다. 이 책에서 보여준 바둑기사들이 했던 고민을.
책을 살까 말까고민하는 이들을 옹호하며
책을 산다는 행위는 단순한 물건의 취득을 넘는다. 그런 결정을 한 사람들을 위해 옹호하는 두 가지 생각을 정리한다.
책에는 기록 너머의 '시간의 흔적'이 있다. 어떤 페이지 남겨진 연필 자국, 어느 날의 커피 얼룩, 급하게 적어 넣은 여백의 짧은 글씨, 이 모든 것은 내가 그 지식과 사유를 통과하며 남긴 '경험의 물질화'이다. 그것은 그저 지식이나 정보를 넘어서, 나중에 책을 다시 펼칠 때, '그때의 내가 이 문장에 왜 매료되었을까?' 하는 질문은 나만의 시간의 층위를 보여준다.
책장은 내가 어떤 질문을 품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어떤 세계를 탐험하고 싶은지를 침묵하며 이야기하는 '정체성의 풍경'이기도 하다. 생각이 잠시 머물렀던, 그 책을 읽었던 시간의 나가 머물렀던, 성장하고 진화해온, 내가 걸어온 또 하나의 내력이 담긴 풍경이다.
책 하나를 살 것인지 말 것인지를 두고 말이 길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