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준비해온 대답
우리 인생의 어떤 순간에는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자기 운명에 대한 예언이 된다.
<오래 준비해온 대답>은 소설가 김영하가 10여년 전 TV 프로그램 제작진으로부터 어디로 여행하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마치 '오래 준비해온 대답'처럼 시칠리아라고 답했던 그 순간을 담고 있는 에세이로, 단순한 여행기를 넘어 삶의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읽은 지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이 문장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자기 운명에 대한 예언이 된다". 무심코 내뱉는 말들이 실은 자기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다는 것을 서늘하게 일깨워준다.
우리는 살면서 무심코 내뱉은 말들이 있다. "언젠가 거기 가볼 거야", "나중에 꼭 해볼 거야." 그 말들은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 내면 어딘가에 씨앗처럼 심어진다. 김영하가 시칠리아라고 대답했을 때,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언젠가 어디선가 이미 그 답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 마치 오래전부터 그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던 것처럼.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단순한 음성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무의식의 지도이자,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방향이다. "나는 작가가 될 거야"라고 말하는 순간, 그 사람은 이미 작가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나는 행복할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행복을 향한 문을 조금씩 열어간다. 반대로 "나는 안 될 거야", "나는 늘 이래"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 예언을 스스로 성취해간다.
우리가 무엇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그것은 추상적 바람에서 구체적 의도로 변한다. 생각은 흐릿하지만, 말은 명확하다. 말은 우리 자신에게 선언하는 것이며, 동시에 세계에 던지는 씨앗이다. 김영하가 "시칠리아"라고 말한 순간, 그것은 단순한 답변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는 약속이었고, 미래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였던 것처럼.
누구나 각자 '오래 준비해온 대답'들이 있을 거다. 누군가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나요?"라고 물었을 때, 주저 없이 나오는 그 답변. 그것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오며 무의식적으로 쌓아온 욕망의 결정체다. 그 답변이 나오는 순간, 우리는 이미 그 운명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심리학에 '자기 충족적 예언'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무엇을 믿고 말하는가가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고, 그 행동이 결과를 만든다는 거다. "나는 이 일을 해낼 수 있어"라고 말하는 사람과 "나는 못 할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의 인생은 다른 궤적을 그린다. 같은 능력을 가졌더라도.
그러니 조심스럽게, 살리는 말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