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 뿐인 삶
<단 한 번의 삶>은 소설가 김영하의 산문집이다. ‘여행의 이유’ 를 읽고 기다렸던 글. 유료 이메일 구독 ‘영하의 날씨’에 연재된 글을 대폭 수정·다듬어 묶은 작품이란다.
열네 편의 이야기로 구성되며, 어머니의 장례식 장면에서 시작해 가족사와 자신의 삶을 담담히 돌아본다.
‘나는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는가?’그리고 ‘이 단 한 번뿐인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누구나 함직한 질문에, 쉬운 위로나 뻔한 조언 대신, 솔직한 경험과 고민을 담담히 풀어냈다.
많든 적든 후회를 끌어안고 다시 걸어가야 하는 게 인생이라는 태도로.
천 개의 강에 비치는 천 개의 달처럼, 나라고 하는 것은 수많은 타인의 마음에 비친 감각들의 총합이었고, 스스로에 대해 안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은 말 그대로 믿음에 불과했다.
첫번째 이야기, '나는 누구인가'를 말할 때 '천 개의 강에 비친 천 개의 달'을 비유하며 규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늘에 달은 오직 하나이지만, 세상의 수많은 강물(타인의 마음)에 비치면 그 강물의 모양, 깊이에 따라 천 개의 모습으로 반짝인다. 즉, 고유한 '나'는 하나지만, 나를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들의 감각과 해석이 더해져 비로소 완성된 입체적인 '나'가 된다는 것이다.
세종이 훈민정음으로 쓴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의 '월인천강'은 하나의 달이 천 개의 강을 비춘다는 것이다. 세종은 달이며 그 달이 세상을 공평하게 비춘다는 뜻이다. 달은 하나지만, 강물 하나하나에 비칠 때마다
강물의 깊이와 흐름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양으로 빛난다. '나' 역시 수많은 타인의 마음에 비칠 때마다 그들의 경험과 감각을 통해 '착하고 활발한 나', '차분하고 진지한 나', '실수하는 나' 등 천 개의 모습으로 존재하게 된다.
우리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얼마나 다층적인 '나'로 살아가는지, 우리 모두의 존재가 수많은 사랑과 시선 덕분에 반짝이고 있음을 일깨워주는 말로, 작가는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굳게 믿었던 자기 이해는, 결국 세상이라는 무대에 나와 다른 사람들과 부딪혀 보지 않으면 확인할 수 없는 하나의 '가설'이었다는 고백한다.
지금 이 생은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것과 스스로 결정한 것들이 뒤섞여 만들어진 유일무이한 칵테일이며 내가 바로 이 인생 칵테일의 제조자다. 그리고 나에게는 이 삶을 잘 완성할 책임이 있다.
글 잘 쓰고 말도 잘하는 작가의 신작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독서지도사 준비를 하는 15기 독서정원 회원을 이끌고, 연례행사로 가는 책과 함께한 가을소풍에서, 북토킹을 위해 준비해온 회원의 것을 빌려왔다.
글은 내 삶을 나란히 비교해 보게도 하고, 포개어 보게도 한다. 술술 읽힌다. 세상에는 어수선하고 독한 말이 난무하는데, 잠시 가만한 읽기를 하게 한다. '삶'이란 단어는 가볍지 않지만 무겁지 않게 읽힌다.
그동안 김영하 작가의 작품들을 따라왔지만, 이렇게 사적이고 내밀한 고백은 인상적이다. 생전에 차마 펼쳐 보이지 못했던 부모님의 이야기, 그리고 작가가 청춘의 시절 동안 홀로 품고 지냈던 열등감, 불안, 어쩌면 죽음까지 생각했던 마음의 그림자를 털어내 보인 것은 처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