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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패티 Mar 05. 2019

기억 속의 들꽃 아이

그림책에 물들다  |  들꽃 아이


<들꽃 아이> 임길택 글, 김동성 그림, 길벗어린이

들꽃을 닮은 아이    


산골학교 선생님이었던 임길택(1952~1997)은 교사 생활을 하면서 만난 아이들의 삶을 동시와 이야기(동화), 교단일기 등으로 남겼습니다. 그가 교사 생활을 했던 곳은 대부분 강원도 탄광 마을의 학교였는데요, 바람이 불어오면 열어놓은 창문으로 시커먼 탄가루가 들이닥쳤다고 하지요. 그래도 아이들은 학교에 왔고 선생님은 아이들을 기다렸지요. <들꽃 아이>는 그때 그런 교실에서 공부했던 아이들 중 한 아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김 선생님은 산골학교로 교사 발령을 받아 그곳에서 졸업반 학생들을 가르치시다 군 입대로 떠나시게 됩니다. 들꽃 아이 보선이는 그때 만난 학생이구요. 선생님은 왜 보선이를 들꽃 아이라고 표현했을까요? 들꽃은 고개를 숙여야만 보이는 작은 꽃, 누가 자기를 봐주지 않아도 최선을 다해 자기 모습을 피워내는 꽃, 돌보는 이 없어도 저 홀로 피어 제 몫을 다하는 꽃이 들꽃이잖아요? 보선이는 들꽃의 그런 특성을 닮은 아이 같아요.  

   

보선이는 이야기의 주인공이지만 그림책 안에서 보선이 목소리는 들리지 않아요. 행동 또한 소극적입니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 작은 들꽃처럼 거기 피어 있는 아이였어요. 눈에 띄지 않으니 주인공 보선이가 소극적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런 아이를 주인공으로 삼은 것은 작가의 의도가 있어 보여요. 특별하지 않아도 우리는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선이를 통해 보여준 게 아닌가 생각해요.



보선이라는 들꽃    


김 선생님은 보선이가 등굣길에 꺾어다 놓은 꽃을 보면서 예쁜데 정작 꽃 이름을 모른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식물도감을 펼치고 꽃을 공부하면서 꽃 이름을 공부합니다. 이름을 알고 보니 꽃이 훨씬 더 아름답다는 생각도 합니다.    


어느 날, 보선이는 마을 사람들의 장보기 심부름을 다녀오느라 수업에 늦습니다. 손전등 들어갈 배터리를 사느라 늦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은 보선이네 집 가정방문을 하러 갔다가 선생님은 그동안 몰랐던 보선이의 여러 가지를 알게 됩니다. “보선이가 이토록 먼 길을 다니고 있었구나!"보선이는 산 고개를 두 개나 넘어서 학교를 다녔어요. 선생님은 보선이의 하굣길에 손전등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보선이네 부모님은 가정방문을 오는 선생님을 기다려 한밤에 마을 잔치를 벌입니다. 김 선생님은 학교가 생긴 이래 마을을 찾아온 첫 번째 선생님입니다. 여름 밤하늘에는 쏟아질 듯 별이 빛나고 불이 다 꺼진 마을에 오로지 한 개 전등이 켜졌습니다. 평상 한가운데 선생님이 앉아서 옥수수술을 받고 귀한 손님을 맞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그때 그 순간, 오로지 자기를 보기 위해 선생님이 오셨다는 사실에 보선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시간은 흐르고 한 여름밤의 잔치는 시나브로 추억이 되어 갑니다. 그리고 이어진 이별. 김 선생님은 군대에 가야 했고 보선이는 졸업을 하기 때문입니다. 졸업식날 보선이는 학교에 오지 못합니다. 눈이 많이 내려 눈길을 뚫고 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독자들은 김 선생님이 보선이에게 선물로 남긴 <안네의 일기>에 주목할지도 모르겠어요. 왜 굳이 <안네의 일기>일까 하고. 김 선생님은 보선이에게 안네처럼 용기와 희망을 잃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어요. 보선이가 중학교에 진학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때는 많은 여자 아이들이 여자라는 이유로 초등학교를 끝으로 일터로 가야 했으니까요. ‘그때’는 말이지요.




 보선이꽃을 찾아낸 선생님 


<들꽃아이>는 분명 창작된 이야기인데 교단일기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니까 <들꽃아이>는 문학작품과 교단 일기 사이의 어디쯤에서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학으로 나아간 교단 일기라고 할 수 있겠어요.    


선생님은 학생을 발견하는 사람 같아요. 같은 교실, 같은 책상에 앉아 같은 공부를 하고 있지만 아이들은 저마다 다르지요. 봄부터 가을까지 온 산에 꽃이 피고 지지만 그 꽃들은 모두 다른 모양과 향을 지녔지요. 생길 때부터 다르게 나고 개별적인 존재로 자라도록 생겼지요. 식물도감을 보면서 깨닫듯이 그 꽃들은 저마다 맞춤한 이름을 가졌구요. 보선이도 그런 존재였지요. 누가 보든 보지 않든 먼 산길을 걸어 제 할 일을 했어요. 김 선생님이 오기 전에도 그 길을 걸어 학교를 다녔어요. 그런 보선이 학생을 발견한 사람이 김 선생님이었어요. 보선이는 제 삶을 산 것이지만 선생님이 발견한 보선이는 선생님의 머릿속에 의미 있는 존재로 남아 있게 된 거예요.    


<들꽃아이>의 주인공 보선이가 졸업 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어요. 삶에 대한 긍정적 시선을 잃지 않는 한 힘겨운 한 시절도 지나간다는 것, 그리고 그 지나온 기억을 아름다웠던 한 때로 떠올리게 된다니까 힘들어도 이다음에 떠올릴 추억이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들꽃 아이>는 정겨운 분위기의 그림책입니다. 그림책 장면 장면은 오래된 앨범을 펼쳐 보는 듯 책을 보는 내내 추억에 젖게 합니다. 선생님이 보선이네 가정방문을 가는 숲 속 길은 초록색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줍니다.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은 얼마나 투명한지요. 화가의 관찰력 덕분에 잊지 못할 그림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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