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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패티 Mar 05. 2019

어린이에게 환경감수성을 키워주는 방법

 그림책에 물들다  |  고라니 텃밭

고라니 텃밭|김병하|사계절

공존, 환경 교육의 시작은 


 어린이에게 




충돌,  반갑지 않은 손님    


 이삿짐 트럭 한 대가 산골로 들어옵니다. 도시에 살던 화가 김씨 아저씨네 이사를 온 거예요. 아저씨는 텃밭 가꾸는 일을 즐깁니다. 마치 소풍을 가는 아이처럼 목에 카메라를 걸고 휘파람을 부는 모습은 텃밭 농사가 아니라 텃밭 놀이를 나선 모습처럼 보입니다. 설계도까지 그려가면서 단정하게 정돈한 밭이 화면 가득합니다. 텃밭 가에 민들레에도 작은 돌담을 둘렀어요. 김씨 아저씨는 작은 것에도 마음을 쓰는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아저씨의 정성스런 텃밭이 엉망진창 되어 있는 거예요. 고라니였습니다. 다시 심어도 보고, 허수아비를 세워도 보지만 헛수고였어요. 이번엔 아저씨가 직접 지키기로 합니다. 밤이 점점 깊어지고 텃밭을 지키던 아저씨 지쳐갈 무렵 막 채소 한 잎을 입에 문 고라니와 눈이 마주칩니다. 작가는 이 모습을 둘로 쪼개 그렸는데요, 인간과 자연의 대립을 생각하게 합니다. 인간의 시선으로 보는 고라니, 고라니의 시선으로 보는 인간. 누가 누구에게 반갑지 않은 손님일까요? 


그 때부터 아저씨와 고라니의 쫓고 쫓기는 장면이 펼쳐지지요. 마치 뫼비우스 띠처럼 처음과 끝이 없는 이 장면은 둘의 대립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암시힙니다. 아저씨는 왼쪽 페이지 주앉았고 고라니는 반대쪽 끝에서 멀뚱히 지켜봅니다. 화면에는 아저씨와 고라니만 있습니다. 이 장면은 인간과 동물의 거리, 고라니가 사람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거리이면서도 결코 사람과 가까워질 수 없는 거리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갈등,  울타리를 친다는 것은    

  한 밤의 소동이 끝난 뒤 텃밭을 지키기 위해 아저씨는 어떤 대책을 마련했을까요? 울타리를 치고 새총까지 준비합니다. 이윽고 팽팽하게 당긴 새총의 총알을 놓으려는 순간, 어미 고라니와 두 마리의 새끼 고라니와 맞닥뜨립니다. 이 순간, 아저씨도 고라니도,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묻고 있는 것 같아요. 고심끝에 아저씨는 텃밭을 반씩 나누기로 합니다


 사실 자연의 원주민을 따지자면 사람이 아니라 고라니가 숲의 원주인이지요. 이 책의 제목이 김씨 아저씨의 텃밭이 아니라 <고라니 텃밭>인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숲의 주인을 김씨 아저씨가 아닌 고라니라고 생각하는 마음을 갖는 것, 이것이 이 작품을 통해 우리가 읽어내야 하는 진실이라고 생각해요. 



  교감,  행복한 텃밭    


 <고라니 텃밭>은 그림 서사시입니다.  주로 아저씨의 시선을 따라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하지만 고라니의 시선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고라니의 시선으로 읽는다면 어떤 이야기가 될까요? 텃밭 가에 피어있는 민들레의 시선이라면 또 어떨까요?  이 민들레는 줄곧 텃밭 가를 지키고 있었기에 이 모든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으니 할 말이 많을 거예요.


 이 그림책에서 울타리는 내 것과 네 것을 구분하는 경계이면서 너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뜻처럼 느껴집니다. 이 책은 그림에도 표정과 이야기가 풍성한데요, 그 중에 민들에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시간의 흐름과 사건의 해결을 민들레의 변화로 알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아저씨와 고라니의 갈등이 해소됨과 동시에 민들레꽃도 활짝 핍니다. 일이 잘 마무리가 되어 기쁘다는 것처럼요. 작가의 친절이지요.  


 이 그림책은 전반적으로 상승의 효과를 잘 표현했어요. 고라니가 세 번이나 밭을 망가뜨리는 아저씨의 감정의 상태는 점점 상승하다 고라니 가족과 대면하는 순간 숨이 멎는 긴장감이 극에 달합니다.


 <고라니 텃밭>은 앞면지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뒷 면지에서 이야기가 닫힙니다. 면지를 그냥 지나쳤다면 다시 표지를 열어 보세요. 앞면지에는 김씨 아저씨가 트럭을 타고 숲으로 들어옵니다. 계절은 이른 봄입니다. 뒷면지 어느새 숲이 초록으로 변했습니다.

 김씨 아저씨가 텃밭을 반으로 나눈 날 밤, 새끼 두 마리를 이끌고 밭으로 오는 어미 고라니의 모습은 마치 자기 텃밭에 오는 것처럼 당당합니다. 더 이상 눈칫밥을 먹지 않아도 되어서 그럴까요? 눈을 지그시 감고 내 텃밭에 간다는 폼이 무척 유머러스합니다. 맨 뒤에 따르는 고라니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정면을 보는 모습은 앙증맞지요. 그 모습을 보는 동안 독자의 마음은 평화롭게 내려앉습니다. 이 장면을 통해 독자는 귀가의 안도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림책에 상생과 배려와 공존의 윤리를 담아 말로는 하기 어려운 지혜를 읽어만 주어도 아이들은 배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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