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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패티 Mar 05. 2019

삶을 끌어가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

 그림책에 물들다

<엄마 까투리> 권정생 글, 김세현 그림, 낮은산


어머니를 잘 아세요?


고등어를 먹으면 생목이 올라서이기도 하지만 고등어를 사지 않는 이유가 있어요. 어머니 생각이 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시니 더 이상 그런 나들이를 하지는 못하지만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는 해마다 이른 봄에 제주도 나들이를 가고는 했어요. 3월 초 제주도는 봄은 유채꽃 만발한 사진처럼 온화하지 않지요. 그래도 초록이 그리운 사람들에게 노란 유채꽃밭은 봄의 선물 같지요. 혼자서, 둘이서, 셋이서, 딸들과 어머니 모두 모여서, 갖은 포즈로 사진을 찍고 우리 여행을 이끄는 가이드가 예약한 제주 맛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지요. 고등어 전문 음식점이었어요. 자리를 잡고 고등어로 만든 온갖 음식들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보고 온 유채꽃밭 이야기로 다시 꽃을 피웠습니다. 이윽고 음식이 나오고

"고등어 회구나, 맛보자." 

"어머니, 드셔 보세요. 고등어조림도 맛있어 보입니다." 

어머니가 자리에 안 계시다는 걸 그제야 알았어요. 그 순간 모두들 온갖 불길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는 것은 여행에서 돌아와 이야기 나누면서 확인했지만, 그땐 정말 아뜩했어요. 어머니가 어디 가셨을까 보다는 어디다 두고 왔을까, 무서웠지요. 어머니는 음식점 앞 화단에 앉아 계셨어요.

"엄마, 왜 여기 계세요?"

"언제 나오셨어요?"

"어디 편찮으세요?"

제각기 걱정했던 것들을 물 쏟아붓듯이 물었어요.

"어머니는 고등어 안 드셔. 냄새도 좋아하지 않으셨는데...!"

큰언니가 탄식 섞인 말을 했어요.


어머니와 함께한 제주도 나들이는 그것이 마지막이 되었어요. 그때도 연세가 높아서 제주도까지 너무 멀지 않을까 걱정했던 여행이었어요.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날이 많아지고 있었지요. 그 연세에 보일 수 있는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는 진단을 받기는 했지만, 그날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어머니를 잃어버린 줄 알았어요.  


고백이지만 저는 그때까지도 어머니가 고등어를 안 드시는 줄 몰랐어요. 고등어를 먹으면 오랫동안 생목이 올라 고생하는 것도 어머니를 닮았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어머니가 부드러운 카스텔라와 단팥빵을 좋아하시고, 색색이 예쁘고 부드러운 아이스크림보다는 단팥이 든 '아맛나'를 더 좋아하신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건 저도 좋아하는 거였기 때문이에요. 

여러분은 어머니를 잘 아세요? 


권정생의 어머니 품    


 “까투리 이야기를 써 보았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어떻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충분하다고 봅니다. 좋은 그림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엄마 까투리>는 권정생 선생님이 그림책을 마음에 두고 쓴 글에 김세현 선생님의 그림으로 옷을 입힌 책입니다. ‘2005년 3월 5일’이라 친필로 쓴 이 원고가 배달이 되고, 정작 권정생 선생님은 이 책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2007년 돌아가셨지요. 


 이야기는 단순합니다. 산에 큰 불이 납니다. 온산에 꽃이 한창이고 새들의 노랫소리가 가득한 봄, 산불이 난 것입니다. 봄바람은 이리저리 불꽃을 날리며 산속의 생명들을 위협합니다. 덩치 큰 동물들, 발 빠른 동물들은 재빨리 도망을 갔습니다. 그러나 다북솔 아래서 갓 태어난 아홉 마리 꿩 병아리를 혼자 돌보던 어미 까투리는 어찌할 줄을 모릅니다. 새끼들을 데리고 엄마 까투리는 이리저리 불길을 피해 보지만 어느 쪽이나 불길에 뜨겁게 막혀 있습니다. 그러다 뜨거움을 참지 못해 본능적으로 하늘로 날아오르고 다시 내려앉기를 몇 차례, 암만 그래도 엄마 까투리는 새끼들을 놔두고는 혼자서 날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생각다 못한 엄마 까투리는 두 날개를 펼치고는 날개 밑으로 새끼들을 불러 모읍니다. 기어이 사나운 불길은 엄마까투리를 휩싸더니 온몸으로 불길이 옮겨 붙습니다. 그러나 엄마 까투리는 품속에 새끼들이 다치지 않도록 더욱 날개를 꼭꼭 오므리고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흘 후, 아랫마을에 사는 박 서방이 나무를 하러 왔다가 까맣게 타 죽은 엄마 꿩의 품속에서 살아남은 꿩 병아리를 발견합니다. 놀랍게도 솜털 하나 다치지 않은 아홉 마리 꿩 병아리, 모두 살아 있었던 거예요. 온 산을 태운 불 속에 살아남은 어린 생명이라니, 박 서방은 정신을 잃을 지경입니다.  꿩 병아리들은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먹이를 주워 먹고 다시 죽은 엄마 품으로 돌아와 잠을 잡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모이를 먹고 밤이면 어김없이 죽은 엄마 날개 밑으로 들어가고는 합니다. 열흘, 한 달이 지나자 꿩 병아리들은 이제 깃털도 돋고 날개도 제법 자랐습니다. 


그러나 엄마 까투리의 몸은 점점 부서져 갑니다. 재가 되어버린 어미 곁을 맴도는 새끼들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한평생 엄마 이야기를 하며 사셨다는 작가 권정생에 대한 소개글이 출판사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습니다.     

  

 “<엄마 까투리>의 산불은 그가 평생 지니고 살았던 말 못 할 육체적 고통을 상기시키기도 하고, 미약한 존재들이 점점 살기 힘든 곳이 되어 가는 현실 세계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말년의 극심한 고통 속에서 이 세상을 향해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 <엄마 까투리>에서는, 종교적 구원일 수도 있고 정신적인 보금자리일 수도 있었던 ‘모성’에 대한 권정생의 천착을 엿볼 수 있다.”      



     글에 입힌 잘 어울리는 그림   

 


어린아이들에게 죽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들에게 죽음을 그림 언어로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요? 대면하기 힘든 이 장면을 화가 김세현은 간결한 추상으로 표현했습니다. 표현이 간결하다 하여 결코 어미의 죽음까지 가볍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눈물을 흘리지 않아서 슬픔이 덜하다 할 수 없는 것처럼. 슬프다 말이 없을 때, 아프다 말하지 않으며 고스란히 감당할 때 더 슬프고 더 아픕니다. 앞표지에는 엄마 등을 타고 노는 아홉 마리의 꿩 병아리들의 평화로운 풍경이, 뒤표지에는 산불에 산화한 엄마 까투리의 모습이 화려한 모자이크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림이 무얼 말하려는 건지, 이야기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알게 합니다. 글로 다 담아낼 수 없었던 깊은 느낌이 그림에 담겼습니다.    


엄마 까투리는 뜨거운 불길에 본능적으로 하늘로 날아올랐다 내리기를 수차례. 그럴 때마다 꿩 병아리는 이리저리 흩어져 어미를 찾고, 어미가 다시 돌아오면 재빨리 엄마한테 모여듭니다. 어미의 눈에 굵은 눈물이 흐릅니다. 달아나기를 포기한 엄마가 새끼들을 한데 모으고 날개를 펼쳐 보듬어 안을 때, 비상구를 알려주는 지시등 같던 풀잎이 불화살이 되어 까투리 가족을 향해 다가옵니다.  불길이 기어코 엄마 몸에 붙었습니다. 머리와 등과 날개가 한꺼번에 타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까투리의 몸도 뻘건 불덩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며칠 날이 지나고 일상의 평화로 돌아온 듯합니다. 해가 나고, 달이 뜨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그 속에 풍화되어가는 어미의 몸도 무심히 평화롭습니다. 엄마의 흔적만 남은 자리에 꿩 병아리들은 저희들끼리 보듬고 잠이 들며 자랍니다. 


 어린이에게 그림책의 그림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림을 넘어선 환상과 즐거운 경험을 선사하지요. 때문에 글 쓴 이와 그린 이가 다를 때 서로에게 꼭 맞는 옷을 입히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자칫 교훈을 이마에 건 모성애적 이야기가 그에 가장 잘 어울리는 그림 옷을 입어 훌륭해졌습니다. 독자는 작가의 고민만큼 깊어지고 넓어진 작품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삶을 끌어가는 힘    



 자식을 낳아보니 어머니의 마음을 알겠더라고 말들 합니다. 그러나 자식을 낳고 한순간에 어머니를 다 알게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빵가게에서 빵을 사다 문득 단팥이 든 빵을 좋아하신 어머니를 떠올리고, 생선조림을 밥상에 올리며 고등어조림을 드시지 않던 어머니를 기억하는 식으로 일상에서, 순간순간 어머니를 떠올립니다.

  

  어느덧 자라서 날개까지 제법 의젓한 꿩 병아리들과 엄마 까투리가 펼침 면에 가득하도록 유쾌하게 뛰노는 장면은 꿩 병아리의 몸이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이라 생각됩니다. 부서지고 흩어져서 냄새마저 희미해진 엄마의 몸은 이제 흙이 되고 자연이 되었지만, 엄마 몸에 대한 기억이 꿩 병아리들을 키워낸 것입니다. 이후로도 꿩 병아리들은 엄마 까투리한테 받은 사랑의 기억을 힘의 근원으로 삼아 세상을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요. 


어머니를 기억하게 하는 것은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무엇을 먹다가, 무엇을 보다가,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다 문득문득 어머니를 기억합니다.  현대의 정신의학자들은 엄마 품에서 사랑을 듬뿍 받았던 영아기의 기억은 몸속에 각인된다는데요, 아가들이 엄마의 품 안과 얼굴, 따스한 음성에서 받은 안정감을 몸으로 익혀두었다가 성인이 되어서도 어떤 계기로 자극이 주어지면 그때의 느낌을 되찾으려고 노력한다는 겁니다.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던 영아기에 경험한 이 느낌과 추억은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 쓸 수 있는 삶을 이끄는 힘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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