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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패티 Mar 05. 2019

당신에게 그림책은 무엇인가요?

  그림책에 물들다 | 엄마 마중


엄마 마중| 이태준 글|김동성 그림| 출판 소년한길

 당신에게 그림책은 무엇인가요?


"초등학교 1학년 때 엄마가 돌아가셨다. 엄마가 돌아가실까봐 엄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지만 엄마는 돌아가시고 말았다. 아빠와 단 둘이 남게 된 나는 아빠가 엄마를 돌아가시게 했다고 생각하며 아빠를 원망했다. 아빠는 나를 다독여주지 않았다. 아빠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럴수록 나는 외롭고 무서웠다. 아빠도 저러다 어디론가 떠나버릴까 두렵고 불안했다. 나는 우울한 아이였다. <엄마 마중>은 외로웠던 어린 나를 다시 만나게 해주었다. 책을 읽으며 아가가 가여워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  


어머니 건강 때문에 어릴 때 외가에서 자란 적이 있어요. 열 명의 어른들이 돌봐주신대도 어머니 한 분만 못했지요. 학교를 입학하고도 얼마간 더 외가에서 자랐는데, 광복절이 너무 싫었어요. 광복절은 며칠 후면 방학이 끝나간다는 것이고, 나는 다시 외가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었거든요. 그림책 속 아가가 코가 빨개지도록, 날이 저물도록 엄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는 장면은 누구라도 눈시울이 뜨거워 질거예요.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덮기 직전 꿈처럼 눈이 내리는 골목길에 광주리를 옆에 낀 엄마와 아가가 손을 잡고 걸어가는 장면에서 모든 외로움을 보상받은 느낌이었어요. 


"쿵쾅, 투당탕! 아버지가 돌아오시는 소리는 그날도 요란했다. 나는 숨을 죽이며 가만히 있었다. 술 취한 아버지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은 다른 날과 달리 그 후 더이상 아버지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안도했다. 그대로 주무시면 되었다고 생각을 했다. 저녁 늦게 퇴근하시던 엄마가 소리를 지를 때까지 나는 아버지는 잊고 있었다. 

투당탕 소리는 아버지가 쓰러지는 소리였다. 뇌경색이었다. 쓰러질 때 뇌출혈도 있었다.  그 날 이후로 아버지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셨다. 그날 만일 내가 아버지 안부를 확인했더라면...." 


<오늘은 아버지의 안부를 물어야겠습니다>(윤여준)을 읽은 어느 독자는 그날 아버지 안부를 확인 했더라면 하면서 눈물을 쏟았습니다.  그는 강제 해고를 당하신 아버지가 겪었을 외로움도, 이후 일이 어렵게 되면서 더 무겁게 느꼈을 아버지라는 자리를 이해하지 못했다면서, 죄책감 때문에 마음 놓고 눈물도 흘리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그림책이 더 이상 어린이만을 위한 책이라는 생각을 내려놓게 합니다. 여러분에게 그림책은 무엇인가요?


고단한 현실을 보완하는 따뜻한 상상  


추운 겨울 아가는 엄마가 오실 전차 정거장으로 마중을 나갑니다. 아가의 발걸음은 한두 번 해본 일이 아니라는 듯 머뭇거림이 없습니다. 몇 번이나 전차를 보내도록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지만 초조해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으며 다만 코만 빨개져서 가만히 서서 기다립니다. 제각기 자신들의 일로 바쁜 사람들, 가라앉은 모노톤으로 그려진 무표정한 사람들의 거리에서 엄마 마중을 나간 아가에게 눈길을 주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몇 번의 전차를 보내고 날이 어두워오도록 엄마를 기다리느라 코만 빨개서 서 있는 아가의 모습에 읽는 이의 코가 찡합니다.

    

 <엄마 마중>에서 생략된 배경과 인물에 대한 정보를 작가의 상상이 담긴 그림이 대신합니다. 면지에 펼쳐진 골목이 있는 마을 풍경은 이야기의 공간 배경이며, 눈이 오는 풍경은 이야기의 시간 배경을 알려줍니다. ‘전차’라는 낱말 외는 어떤 텍스트에서도 시대를 짐작하게 하는 낱말이 없으나 벙거지를 쓰고 저고리와 바지를 입은 아가의 모습이나 주변에 오가는 인물과 소품들로 시대상황을 짐작하게 도와줍니다.


이태준의 원작만으로는 감동을 다 담아내기 쉽지 않습니다. 글에 꼭 어울리는 옷같은 그림, 그림이 더해져서 주는 감동이 눈부십니다. 그중에서도 아가의 간절한 바람을, 물고기를 몰고 오는 전차로, 나래를 활짝 편 새들의 호위를 받으며 오는 듯한 전차 이미지로 표현한 장면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와 함께 원작에 없는 엄마와 만나서 함께 함박눈이 오는 골목길을 가는 장면은 아직도 엄마를 만나지 못한 채 ‘코만 빨개서 가만히 서 있습니다’로 눈물짓는 독자를 안도하게 하는 그림 작가의 미덕입니다.


    <엄마 마중>은 아가의 현실과 상상이 번갈아 펼쳐집니다. 전반적으로 아가의 현실은 책의 왼쪽 면에 그려져 있고, 아가의 상상은 책의 오른쪽 면에 그려져 있습니다. 작가 김동성은 그림책을 감성적인 판타지로 보고 “그런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전차의 운행 방향이나 구성에 있어서 그림책의 흐름을 위해 실제와 다른 모습으로 편의적으로 처리했다.”라고 합니다. 전차가 하늘에서 날아오는 듯한 장면이 그런 예입니다.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나면 마치 영화 한 편을 본 것처럼 감동적입니다. 책을 펼치면 아가가 왼쪽 아래쪽에서 독자와 눈을 맞추고 걸어옵니다. 앞만 바라보고 걸어가는 아가의 목적은 오직 하나, 엄마 마중입니다.


아기는 날이 어두워지도록 엄마를 기다리지만 엄마가 타고 올 전차에 엄마는 없습니다. 아가는 차장더러 “우리 엄마 안 와요?” 묻지만 “너희 엄마를 내가 아니?” 차갑고 사무적인 대답을 들을 뿐입니다. 세 번째 전차가 다가오고 “우리 엄마 안 와요?” 묻는 아가에게 차장은 내려와서 “엄마를 기다리는 아가구나. 다칠라. 너희 엄마 오시도록 한 군데만 가만히 섰거라, 응?”하고는 갑니다.


시간은 점점 더 흘러 어느새 주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책을 읽던 아이들은 다시 아가의 안부를 근심하며 불안해합니다. 바람이 불고 마침내 눈송이가 날리기 시작해도 아가는 꼼짝 안 하고, 전차가 와도 다시는 묻지도 않고 서서 엄마를 기다립니다. 이야기가 끝나갈 즈음이면 아가의 기다림은 아이들의 기다림이 됩니다. 원작은 거기서 끝이 납니다. 끝내 엄마가 오지 않았지요. 하지만 화가는 아이들의 바람을 흐뭇하게 채워줍니다. 엄마와 아가가 눈 내리는 골목길을 손잡고 가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끝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는 어른이나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만큼 상상하고 자기만큼 이해할 것입니다. 그만큼 감상의 깊이나 폭도 제각기 다르겠지요.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은 어른이나 아이 모두 글을 다 읽고 난 뒤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먹먹한 감동 때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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