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패티 Mar 06. 2019

대한민국 초딩으로 산다는 것은

그림책에 물들다 |토끼 탈출


토끼 탈출 |  이호백  | 재미마주

 대한민국의 초딩으로 살기   


 <토끼 탈출>은 사람들이 제한한 공간과 일에서 끊임없이 탈출하는 토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인지 첫문장에서 “엄마! 우리 귀여운 토끼가 탈출했어요.”로 시작한다. 표지부터 쇠창살로 만든, 단단한 자물쇠로 채워진 토끼장과 그 안에서 역기를 들고 운동하는 토끼의 모습이 심상치 않아요. 


  책머리에 이호백 작가의 전작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의 후속 작임을 알리는 글이 있습니다. 전작에서는 식구들이 모두 외출을 한 후 혼자 남은 ‘빨빨이(토끼 이름)’가 집안에 들어와 온갖 모험을 즐깁니다. 가족들이 돌아오기 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제자리로 돌아가 시치미를 떼고 있지만 군데군데 떨어진 토끼똥은 집안을 어질러 놓은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게 했지요.


 <토끼 탈출>은 전작의 주인공 ‘빨빨이’가 낳은 ‘예삐’라는 토끼가 주인공입니다. 빨빨거리며 분주하게 돌아다녀 ‘빨빨이’라는 이름을 받게 된 것으로 상상이 되는 엄마 토끼, 예삐는 그런 엄마의 활동적인 특성을 물려받기라도 한 듯 탈출의 명수입니다. 엄마 토끼 빨빨이는 베란다를 탈출했다가 스스로 제자리로 돌아가는 정도이지만 예삐의 탈출은 엄마와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그럴 때마다 주인은 더욱 튼튼한 우리를 만들어 가두지만 예삐의 탈출을 막지는 못합니다.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의 토끼는 하는 짓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유아의 모습이라면

 <토끼 탈출>의 토끼는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는, 즉 공부를 해야 하거나, 공부를 보다 잘하기 위해서 학원도 가야 하는 어린이입니다. 두 권의 책을 통해 주인공이 같은 인물은 아니지만 유아에서 아동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토끼 탈출>에는 전작에서 볼 수 있었던 귀여운 토끼의 모습은 없습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탈출을 꿈꾸는 아이들을 위하여”라고 책머리에서 밝힌 것처럼 토끼에 대한 작가의 시선에는 사랑스럽지만 규제해야 하는, 안쓰럽지만 마음으로 지원하는 따스함이 있습니다.


 사실 이 책을 읽다 보면 토끼는 ‘어른들이 만든 규제와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아이’이고 토끼를 가두려는 주인은 ‘그런 아이들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통제하려는 어른’이며 토끼장은 ‘어른들이 아이들을 교육하기 위한 교육현장’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다소 과장된 연상인 듯하지만 <토끼 탈출>는 몇 년 전 한 어린이가 과도한 학원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자살한 이야기를 기억하게 합니다. 이 사건은 교육방송에서 제작한 “대한민국 초딩으로 살기”라는 프로그램으로 더욱 널리 알려졌었지요. “10명 중 9명이 과외, 과외 종목 평균 3.13개, 하루 평균 3시간 37분, 과외 5시간 초과 중 38.6% 이유 없이 아플 때 많다. (---) 학원을 조금만 다녔으면 좋겠다. 그리고 평범한 초등학생이 완성한 문장 "내가 잊고 싶은 두려움은(이번에 친 시험 점수이다).” “우리 가족이 나에 대해서 (공부 잘하는 것만 밝힌다).” “나의 가장 큰 결점은 (공부를 못하는 것이다).” “언젠가 나는 (공부 제일 잘하는 아무개를 이기고 싶다).” 그리고 완성되지 못한 문장 "나도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날고 싶다.”(EBS 다큐 프라임 “대한민국 초딩으로 살기”중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외롭고 고되었을 한 어린이의 완성되지 못한 문장의 여운이 무겁게 남습니다.      



힘의 대결       


  <토끼 탈출>은 토끼를 가두려는 주인과 토끼장을 탈출하려는 토끼와의 힘의 대결이 대응관계로 짜여있습니다. 주인의 요구가 커질수록 토끼의 대응도 점차 세련되고 강하게 발달해 갑니다. 주인과 토끼의 힘의 대결은 탈출하기와 더 단단히 가두기 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처음에 상자 안에 있던 토끼가 탈출해서 목욕탕의 비누를 갉아놓자 사방을 막은 튼튼한 우리에 가둡니다. 토끼가 망을 찢고 다시 탈출하여 거실을 엉망으로 만듭니다. 이번에는 쇠로 창살을 만든 아주 튼튼한 우리에 가둡니다. 그러나 토끼는 문을 열고 나와 신발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토끼장 문을 열지 못하도록 자로 빗장을 질러놓지만 토끼는 또 탈출에 성공해 전화선을 다 갉아놓지요. 이제 자물쇠로 잠가버려 더 이상의 탈출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토끼장을 통째로 들어 올리고 탈출에 성공합니다.


  막는 주인과 탈출하는 토끼의 갈등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층적으로 강화되는데요, 주인 입장에서는 마치 말 안 듣는 아이에게 하듯 더욱 강한 벌이나 규제를 하지만 자유를 바라는 토끼의 막을 수 없는 본능은 지칠 줄을 모르고 점점 더 커지기만 하지요.


  막기와 탈출이 강화되어 가는 것과 함께 토끼를 묘사하는 말도 갈수록 점층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처음 탈출에 성공한 토끼는 “귀여운 ~” 로, 다시 탈출한 토끼는 “예쁘고 착한 ~”로, “예쁘고, 착하고, 날쌘~”, “예쁘고, 착하고, 날쌔고, 똑똑한 ~”, “예쁘고, 착하고, 날쌔고, 똑똑하고, 힘센 토끼”가 또 탈출했다는 방식입니다. 토끼를 표현하는 말이 하나씩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자유를 찾는 토끼의 본능도 더욱 강해집니다.   

    

  토끼의 태도를 살펴보면 시켜서 하는 일인지 위해서 하는 일인지를 구별할 수 있습니다.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은 울타리가 없는 열린 장소에서 대체로 말리는 일입니다. 거실에서 질펀하게 펼쳐놓고 물감과 크레파스를 마음껏 사용하여 그림 그리기, 운동장에 나가 축구하기, 컴퓨터 게임하기 등이지요. 그리고 어린이와 토끼의 통행이 금지된 곳에 가보기입니다. 금지된 행동이지만 토끼의 표정은 행복하게 보입니다.


 이에 반해 시켜서 하는 일은 우리 안에서 하는 것들입니다. 가령, 크레파스로 그림 그리기, 뜨개질하기, 독서하기, 운동을 하더라도 토끼장 안에서 역기 들기 등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두려는 이와 탈출하려는 토끼의 갈등은 당연해 보입니다.   


 그러다 마침내 수학을 50점밖에 못 받았으므로 특별히 과외를 시켜야겠다는 엄마의 말과 함께 토끼는 토끼 전문 학원에 가게 됩니다. 이 모든 일이 토끼를 위한 것이라고 해도 토끼로서는 내키지 않습니다. 마침내 토끼는 또 탈출하고 말지요. 이번엔 무거운 가방도 내려놓은 채 더 넓은 곳으로의 탈출입니다. 예쁘고 착하고 날쌔고 똑똑하고 힘센 토끼가 날듯이 뛰어가는 모습에서 더 이상의 대결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니, 도대체 그렇게 엄격하게 규제하고 가두려는 이의 의지가 한 번이라도 결실을 본 적이 있기나 한가? 의구심마저 들지요.


  현실에서 토끼로 표현된 아이와 주인으로 표현된 어른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갈등과 그로 인한 괴로움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더라도 저렇게 끊임없이 자유로움을 찾아 탈출을 꿈꾸고 시도하는 아이의 본능을 부모라고 해서 무조건 막기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합리적인 방법을 찾고자 하는 부모들의 고민이 깊어지는 것이겠지요.   



어른을 위한 어린이 책


 <토끼 탈출>은 한국적 상황을 바탕으로 한 아이의 일상이 제재입니다. 귀엽고 사랑스럽던 영아기를 지나면서 시작되는 학습과 통제는 물론 한국 아이만 학습을 강요당하고 통제당하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쇠창살로 상징된 강요된 학습 환경에서 책 읽기, 탈출하여 학원을 뛰쳐나왔을 때 붉게 물든 저녁 하늘은 우리 아이들이 하루에 얼마나 긴 시간을 공부에 매달리게 하는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하지요.


 그림책의 주요 독자는 어린이이지만 더이상 어린이만을 위한 책이라고 하지 않지요. 이 책 또한 어른들로 하여금 어린이의 특성을 이해하고 반성하게 합니다. 나아가 제한하려는 부모와 한계를 벗어나려는 자녀 사이의 갈등을 어떻게 지혜롭게 풀어갈 것인가 고민이 깊어지게 합니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부모와 자녀의 바람이 서로 달라 이해가 부딪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일종의 힘의 대결을 벌이지요. 부모는 경륜과 경제력, 심지어 신체적 우위성을 내세워 아이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자신들의 뜻을 순순히 따라주기를 강요하기도 하지요. 한편 예전과 다른 양육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억지를 쓰거나 화를 내는 등의 방법을 쓰기도 합니다. 자녀의 감정을 다치지 않게 하려는 부모의 의도를 학습하여 이용하는 것이지요.  


 아이들은 단순히 부모를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말을 듣지 않기도 한다네요. 때로는 하지 않음으로써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다는 거예요. 야단맞을 일을 한 아이에게 정색을 하고 나무라는데 아이들은 반성은커녕 돌아서서 ‘짜증 나’ 툭 한 마디 던져 부모로서는 권위가 땅에 떨어진 느낌이 들게 하기도 하고요. 결국 부모는 본래 의도와는 달리 아이들의 온몸에 철철 흐르는 반항의 욕구를 피하지 못하고 애써 참았던 화를 터뜨려 관계를 악화시키기도 합니다.  

    

 한편 토끼의 손을 잡고 달리는 아이는 누구일까요? 그동안 책 바깥에서 “엄마! 토끼가 또 도망갔어요!”하며 이르던 그 아이일 것입니다. 그 아이는 토끼와는 달리 탈출을 시도한 적은 없습니다. 토끼 탈출을 이르는 아이의 심정은 부러움과 질투의 다른 표현일 것입니다. 토끼 탈출을 이르는 아이의 속마음은 부모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심리가 숨어 있을 것입니다. 부모의 잔소리와 규제에 길들여진 아이는 자신의 기준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다른 아이를 인정하기 어려워합니다. 대신 친구를 규제하려고 하지요. 그러니까 일러바치는 행동은 자신이 받고 있는 억압에 대한 일종의 보상인 셈입니다.


 아이들이란 본능적으로 어른의 기준, 사회가 정한 틀에서 벗어나려 하지요. 작가는 이 점을 이야기하면서 아이들을 묶는 틀에서 자유롭게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 책에 담았다고 봅니다. 책머리에서 밝힌 저자의 바람 “끊임없이 탈출을 꿈꾸는 아이들”이 그 근거이지요. 결국 아이들의 요구와 바람을 이해하는 일은 어른들의 과제입니다. 경쟁이 만연하는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이 안쓰러우나 내려놓음직한 대안도 마땅하지 않은 현실적인 고민이 있기 때문이지요.      


 자물쇠가 채워진 토끼장 안에서 역기를 들고 운동을 하는 토끼 모습에 빠삐용을 연상했다는 독자도 있습니다.  억압과 통제가 강해질수록 탈출에 대한 욕망도 더 강렬해서 탈출을 위한 힘 기르기를 하는 빠삐용이 연상되었다는 거예요. 감상은 독자 각각의 몫이니 독자가 많을수록 감상도 풍부해지리라 생각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