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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패티 Mar 25. 2019

빨간 모자는 왜 위험을 알아채지 못했을까요?

그림책에 물들다 | 로베르토 인노첸티의 빨간 모자


로베르토 인노첸티의 빨간 모자|로베르토 인노첸트 그림| 사계절

 

친절도 의심해라, 애야!


  사랑스러운 소녀가 있었습니다. 누구보다 소녀를 사랑했던 할머니는 소녀를 위해 빨간색 작은 모자를 선물해 주셨지요. 늘 그 모자를 쓰고 다니자 사람들은 소녀를 ‘빨간 모자’라고 불렀습니다.


  어느 날, 엄마 심부름으로는 홀로 살고 계신 할머니께 과자와 포도주를 갖다 드리러 갑니다. 엄마는 소녀에게 숲에 들어가면 길을 벗어나지 말아야 하며 할머니를 만나면 인사부터 하라고 당부합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숲 속에서 소녀는 늑대를 만납니다. 늑대는 점잔을 빼고 소녀에게 다가가 어디를 가는 길이냐고 묻습니다. 소녀는 아무런 의심 없이 할머니 댁에 가는 길이며 할머니 댁이 어디에 있는지도 말해줍니다.


늑대는 앞질러 할머니 댁에 도착하여 할머니를 잡아먹고 할머니 침대에 누워 소녀를 기다립니다. 마침내 소녀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늑대는 소녀마저 먹어치웁니다. 배가 부른 늑대는 코를 골며 잠이 듭니다. 다행으로 사냥꾼 덕분에 할머니와 빨간 모자는 늑대의 뱃속에서 무사히 나올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두 사람이 모두 무사히 살아나게 된 ‘빨간 모자’는 그림형제의 작품입니다. 


 페로는 《옛날이야기와 교훈》에서 할머니도 소녀도 모두 늑대에게 희생당하고 마는 이야기로 끔찍한 결말을 짓고도 잘 아는 사람이라도 조심하라는 경고를 덧붙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잘 자란 매력적인 소녀가 늑대와 같이 길에서 만난 수상한 자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늑대의 저녁감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란 점을 배울 수 있다. 늑대는 협박을 하거나 폭력을 휘두르지도 않았고 화를 내지도 않았다. 오히려 정중한 말로 길에서 만난 소녀의 집까지 들어간 것이다. 정중한 행동을 하는 늑대가 사실은 가장 무서운 존재였다는 것을 어찌 알았으랴!”


  문학은 삶을 반영하는 거울이기도 하고, 반대로 사람들의 인식이 형성되는데 영향을 끼치기도 합니다. 페로와 그림형제가 살았던 시대도 세상은 안전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빨간 모자’는 모르는 사람을 함부로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교훈에 “점잖고 예의 바르게 보여도 위험한 사람일 수 있다”는 경고까지 덧붙인 것을 보면 말이에요.         


 페로와 그림형제의『빨간 모자』는 숲길을 걸어서 할머니 댁에 간다는 것이나 숲 속에서 늑대를 만나 잡아먹혔다는 이야기는 숲과 꽃, 늑대가 상징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직 어린아이들에게는 한 편의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로 그치고 말 가능성이 크지요. 그에 비해 『로베르토 인노첸트의 빨간 모자』는 샤를 페로가 쓴『빨간 모자』의 시간과 공간을 현대로 옮겨놓아 오늘날 어린이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현실감 있게 전달해줍니다.


  부모는 대개 이웃에게 친절하라고 아이들을 가르치지요. 그러면서 점잖은 이웃도 조심해야 한다는 이율배반적인 경고를 설명한다는 게 쉽지 않아요. 아이들에게 세상을 믿지 못할 곳이라 해서 좋을 것도 없는데, 그렇다고 현실적 위험에서 아이를 언제까지 부모가 보호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니 난감한 일이지요. 문학은 이렇게 곤란한 부모를 대신해서 있음 직한 그대로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등장인물이 겪는 사건 사고와 그것에 대처하는 주인공의 자세를 통해서 부모가 해 줄 말을 들려주니 난처한 부모로서 다행한 일입니다.  

            


빨간 모자는 왜 위험을 알아채 못했을까요?    


  옛이야기는 전해지는 과정에서 시대에 따라 조금씩 이야기가 달라지기도 하는데요, 이 책도 그렇게 달라졌습니다. 또 소피아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의 “너희들, 이것 한 가지는 알아두어야 해. 이야기란 날씨처럼 변화무쌍하다는 거야. 날씨가 제멋대로 바뀌면 우리는 깜짝 놀라게 되잖아. 바깥 하늘 좀 내다볼래? 하지만 지금 하늘이 얼마 뒤에 또 어떻게 바뀔지 우리는 절대 모르지.”라는 말은 또 어느 때에 어느 사람에 의해 어떻게 다른『빨간 모자』이야기가 나올지 알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로베르토 인노첸티의 빨간 모자』는 원래 이야기의 배경인 나무숲이 콘크리트와 벽돌로 이루어진 도시 숲으로 바뀌었습니다. 숲에서는 꽃이 빨간모자를 한눈 팔게 하지만 도시 숲에는 화려한 것들이 빨간모자를 유혹합니다.  사람은 많지만 “그들이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아도 실은 아무도 나를 보고 있지" 않는 곳이 도시입니다.  쇼핑몰 ‘더 우드’는 나무 대신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는 곳이며 온갖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곳입니다.글자 그대로 숲입니다.


 소피아는 쇼핑몰 '더 우드' 구경을 하면서 문득 엄마가 했던 말이 생각나기도 했지만 인형가게 진열장에 더 마음이 끌립니다. 살림이 어려운 집안 형편에 소피아로서는 가져보지 못한 것들, 그러나 갖고 싶은 것들입니다. 쇼핑몰은 그런 소피아에게 지나치기 어려운 유혹이고 함정이었습니다. 결국 쇼핑몰에서 소피아는 길을 잃고 맙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 일에 바빠 길 잃은 소피아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아도, 실은 아무도 나를 보고 있지 않다’는 소피아의 독백은 이런 우리 사회의 현실에 대한 다른 표현입니다.


 혼란에 빠진 소피아에게 사냥꾼의 도움을 받습니다.  사냥꾼은 자칼 일당의 위협을 받는 소피아를 구출해서 할머니 집까지 데려다줍니다. 위기에서 도움을 준 사람이 착한 사람의 가면을 쓴 악당이었다는 사실은 충격입니다.  소피아는 낯선 사람의 친절에 주의하라는 페로의 경고를 아직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림책에서는 몇 번이나 소피아에게 주의를 기울일 것을 경고합니다. 할머니 댁으로 부지런히 뛰어가는 소피아를 훔쳐보는 늑대의 모습이나, 소피아 머리 위에 있는 도로에 오토바이를 타고 소리 없이 달리는 남자, 폐타이어가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곳을 지날 때 숲을 상징하는 한자 ‘림(林)’이 가리키는 방향은 소피아가 가고 있는 반대 방향을 가리키는 식으로요. 그러나 그 많은 경고를 소피아는 단 하나도 알아채지 못합니다. 


미침내 도착한 할머니 집 모퉁이에 세워진 오토바이는 악당이 한발 앞서 그곳에 와 있다는 뜻이지만 소피아는 알지 못합니다. 천둥번개를 품고 쏟아지는 빗줄기는 소피아에게 주는 마지막 경고처럼 격렬했지만 소피아는 눈치 채지 못합니다. 독자가 아는 것을 소피아만 모를 때 안타까움은 말할 수 없습니다. 한편 소피아로서는 설령 오토바이를 보았다 하더라도 나무꾼의 가면을 쓴 늑대라는 걸 눈치 채지 못했을 거예요. 방금 자신을 자칼 일당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빨간 모자들은 도시 변두리에 산다 


  강렬한 빨간색의 띠지 앞면에 “왜 빨간 모자는 위험을 알아채지 못했을까? 로베르토 인노첸티가 그려낸 성폭력의 현실”과 뒷면의 비평가와 상담전문가의 소개글은 그림형제가 빨간 모자에서 에둘러 말했던 폭력, 특히 성폭력의 위험에 대한 돌직구 화법으로 경고처럼 읽힙니다.     

  

  앞표지를 넘기면 소피아 이야기를 들려주는 인형 할머니 주위에 12명의 아이들이 둘러앉아 있습니다. 모두들 할머니에게 귀를 기울이고 있는 방안은 각종 장난감으로 어지럽습니다. 아이들을 돌보는 이가 어른이 아니라 인형이라는 사실은 이 그림책에서 반복적으로 확인시켜주는 소외된 환경의 아이들이 안전한 돌봄을 받지 못하고 위험에 방치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허름한 골목길을 홀로 걷는 소녀, 어른이 없는 곳에서 인형과 더불어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 낮에도 가로등이 필요한 변두리의 낡은 아파트, 할머니가 홀로 살고 있는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집이 그렇습니다. 


 소피아가 구경거리에 홀딱 빠진 도시 숲에는 각종 광고판과 간판이 어지럽습니다. 왕복 차선 가득 메운 채 달리는 자동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도 의미심장합니다. 앞으로 달려오는 차에는 무표정한 사람들이 타고 있습니다. 하지만 뒤를 보이고 달려가는 차에는 사나운 짐승들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마치 앞과 뒤가 다른 사람을, 즉 사람의 탈을 쓴 늑대를 조심하라거나, 혹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한 몸 같아서 분간하기 어려우니 잘 살피라는 경고 같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요. 인형 할머니의 이야기가 시작될 때 시작되었던 뜨개질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어졌습니다. 인형 할머니의 이야기도 끝나 갑니다. 어른들로부터 보살핌을 받을 형편이 되지 못하는 가난한 동네의 아이들은 인형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립니다. 소피아의 일이 남의 일이 아니라고 여겨졌기 때문이겠지요. 슬픔을 공감하며 눈물 흘리는 아이들을 인형 할머니는 위로합니다. “부끄러워하지 마! 눈물이 나는 건 비가 오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거야.”라는 말로.   


  부모들은 일하러 나가고 가정에 홀로 남은 ‘나 홀로 아동’의 안전에 대한 문제를 다룬 영화가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해마다 방영하는 <나 홀로 집에>입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용감하고 지혜로워서 강력한 힘을 가진 악당을 물리치지만 실제로는 아동이 그렇게 할 수 없으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2013년 보고에 의하면 아동의 하루에 3시간 이상 보호자 없이 혼자 집에 있는 아동이 전체 아동의 절반 정도이며 맞벌이와 한부모 가정에서 특히 돌봄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동이 많다고 합니다. 


 소피아를 위협했던 자칼 일당도 소피아와 다를 바 없는 처지에서 자란 아이들이라고 보입니다. 돌봄을 받지 못한 채 각종 범죄의 위험에 그대로 방치된 아이들일 가능성 말입니다.     



어린이에게 빨간 모자를 어떻게 읽어줄까요? 


  언젠가 ‘빨간 모자’ 원작을 읽고 “부모님 말씀을 잘 듣지 않으면 저렇게 된다”는 협박 같은 교훈을 아이에게 들려준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다만 어린 소녀가 부모님 말을 안 듣고 한눈팔다 생긴 사고였으며 다행인 것은 빨간 모자의 할머니께 향한 효심이 그를 구원하게 했다고 여겼지요.


작가의 메시지를 충분히 알아채지 못한 것도 있었지만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콘크리트와 벽돌로 이루어진 도시 숲은 그 옛날 빨간 모자가 살았던 숲과는 다르기에 자녀 양육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 책으로 아이들에게 들려주기에 불편한 이야기지만 꼭 해주어야 할 이야기, 그래서 시간과 공간을 현대로 옮겨 아이들이 알아듣기 쉽고 부모들의 고민도 덜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패러디 동화를 읽는다면 우선 먼저 잘 쓰인 원작을 읽고 패러디 작품들을 읽어 원작과 다른 갈등 구조를 살펴 생각하는 힘 기르기를 먼저 하면 좋겠어요. 어떤 책을 고를까, 망설여질 때는 동화의 의미와 작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는 연령을 고려해야겠지요. 그렇다면 초등 저학년보다는 원작을 읽은 중학년 이상이라야 하지 않을까요. 


  소아정신과 전문가들은 성폭력 문제를 다룬 이 책은 작가의 의도를 아는 아이라면 꼼꼼히 진지하게 읽으며 이야기 전개과정에서 보여준 소피아의 행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다, 그러나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라면 구태여 자세히 분석하며 읽을 필요는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더라도 조심해야 한다 말을 들려주기는 해야 하겠지요.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미니 그레이<늑대를 잡으러 간 빨간모자>(모래알)

매튜 코델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소녀>비룡소

루리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비룡소)

이억배<오누이 이야기>(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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