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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패티 May 06. 2019

우리가 집에 없는 동안

그림책에 물들다  |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이호백 글 그림|재미마주

사랑을 시작하다 


작고 순한 인상 때문에 네 발 가진 동물, 토끼. 어린 자식을 앙증맞은 토끼에 빗대어 토끼 같은 자식이라는 말까지 생겨났으니 사람들과 토끼는 심정적으로 퍽 가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연약한 외모 때문에 우리 옛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토끼는 사냥꾼에게 쫓기거나 용왕에게 간을 빼앗길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알고 보면 용케 스스로 살아날 궁리를 해내는 꾀돌이이기도 한데 말이지요. 토끼가 자신의 신체적 약점을 꾀로 극복하는 줄만 알았더니 의외로 강한 동물이기도 해요. <시튼 동물기>에 등장하는 산토끼 리틀워호스는 토끼들의 영웅이었으니 말입니다.     


한때 토끼의 수가 너무 많아 사람들은 토끼몰이를 해서 잡은 토끼를 경기장에 몰아넣고 사냥개와 토끼의 경주를 즐겼다는군요. 짐작하는 것처럼 리틀워호스는 경기에서 번번이 승리합니다. 그의 승리는 돈을 내고 경기를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지요. 그러나 부상을 당하는 일이 잦고 목숨은 점점 더 위태로워집니다. 그때 리틀워호스를 깊이 사랑한 청년의 도움을 받아 야생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 후로도 사람들의 토끼몰이 놀이는 계속되었지만 다시는 잡히지 않고 살아남았어요.    


이 그림책의 주인공은 토끼 빨빨이입니다. 얼마나 빨빨대고 다니기에 이름마저 빨빨이일까요. 사람과 함께 사는 토끼가 사람이 없을 때 무엇을 할까 궁금해하는 상상이 신선했습니다. 집에서 동물을 기르는 많은 독자들이 공감하는 부분도 여기가 아닐까요? 그래, 맞아, 우리가 외출했을 때 우리 집 누구는 뭐하고 지낼까라고 한 번쯤 상상해 보았을 테니 말이지요.    


물고기 구피를 기른 적이 있어요. 식구가 한 이틀 집을 비운 사이에 새끼를 낳곤 했지요. 한두 번 그런 경험을 한 뒤로는 명절을 보내고 오면 구피가 사는 오지그릇을 먼저 들여다보게 되었어요. 조용한 시간에 출산을 하는 구피를 상상할 때는 슬그머니 웃음이 나기도 했지요.  

  

그 상상의 시작이 애정이었습니다. 당연하겠지만 한낱 동물이라고, 그저 장난감처럼 갖고 노는 물건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나올 수 없는 상상이지요.   

 


일탈을 꿈꾸는 아이들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느끼는 대로 받아들이라는 말이 가장 잘 통하는 순간이 그림책을 볼 때입니다. 이 그림책을 읽은 많은 독자들은 여기 등장하는 주인공 토끼가 마치 어른 흉내를 내보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를 닮았습니다.


신나게 롤러블레이드를 타는 토끼를 보면서 아이들은 쾌감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집안에서는 할 수 없는 게 많은 요즘 아이들, 그 아이들이 집안에서 롤러블레이드를 타는 토끼를 보면 그야말로 통쾌할 것 같습니다. 빨간 혀를 빼물고 부러워하는 듯한 곰인형의 시선과 약간은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공룡 인형, 그러거나 말거나 눈을 감고 만끽하는 토끼의 모습이 재미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즐거움의 압권은 토끼가 싸놓은 똥을 볼 때입니다. 많은 아이들이 토끼 똥에 관심을 기울이고 토끼 똥을 찾는 일에 열을 올립니다.‘똥’이야말로 어른들에게는 금지어지만 아이들에게는 해방의 낱말입니다. 지저분한 이야기, 똥 이야기에서 어른들이 빠진 자리에 아이들은 지저분함에서 오히려 해방감을 느낀다고 하니 아이들의 열광이 이해됩니다.    

 

아이들도 때로는 마음대로 해보고 싶고 또 그렇게 할 자유가 있어야 합니다. 토끼가 하는 행동이야말로 보통의 아이들이 갖고 있는 자연스러운 마음입니다. 집 안에 감시하고 통제하는 어른이 없는 틈을 탄 이 모든 금기사항을 어기는 토끼는 아이들의 대리인입니다.   

      

이 그림책이 주는 재미는 미처 생각해 보지 않았던 누군가의 비밀스러운 일상을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마음과 눈으로 토끼를 보아도 재미있지만 토끼의 눈으로 사람을 보는 것도 즐겁습니다. 비로소 상상의 눈을 뜨는 것이지요.    


강렬한 노란색 앞 면지를 넘기면 뭔가가 통통통 세 발자국 뛰어간 듯한 포물선이 보입니다. 그리고 “도대체 그동안......”이라고 천천히 문을 열기 시작하지요. 얼른 한 장을 넘기면 이 책의 주인공과 그 가족들의 사진이 보입니다.     


이 집의 아이인 담이는 토끼에게 가려 얼굴이 반만 보입니다. 이 토끼 빨빨이가 주인공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의 주인공 빨빨이는 작가가 기르고 있는 토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존하는 토끼 빨빨이 이야기라서 더 실감 나고 독자의 몰입을 돕습니다. 


한편, 토끼를 어린이로 바꾸어 봄으로써 어른의 흉내를 내보고 싶은 아이의 특성,  어른의 말을 따르지만 그 속마음은 그러고 싶지 않다는 이중 심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는 관찰학습을 통해 바람직한 행동을 배우기도 하지요. 부모의 의도와 상관 없이 무심코 한 행동을 관찰하고 따라하다 그른 행동을 배우기도 한다네요. 

 

     

비밀을 나눈 사이


토끼는 식구들이 없는 사이에 별별 일을 다 해봅니다. 만화영화를 보고, 엄마 화장대에 올라가 화장도 해봅니다. 옷도 입어보고, 책도 하나 꺼내 책상에 앉아봅니다. 꼭 한번 타보고 싶었던 롤러블레이드, 튀김 젓가락을 스틱 삼아 집안에서 롤러블레이드를 탑니다. 실컷 놀았으니 졸리겠지요? 침대에 올라가 한숨 자고 식구들이 오기 전에 감쪽같이 원래 자리로 돌아갑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니, 왜 이렇게 집안 구석구석에 토끼똥이 있지?” 

외출에서 돌아온 식구들은 모르지만 독자는 알고 있다는 이 사실 때문에 독자는 토끼가 한 일을 보고도 못본 척하는 공범자 느낌마저 듭니다. 이 경험은 독자를 특별한 존재로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비밀을 나눈 사이인 거죠. 그래서 책을 읽는 아이들은 알고 있는 것을 말하고 싶어 안달이 납니다. 내기라도 하듯 서로 먼저 “토끼가 그랬대요!”라고 말을 하지요. 혹시 끝까지 모른 체할지도 모르겠어요.


이 그림책은 외국에서 먼저 알아본 그림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저는 이 그림책을 들여다보면서 참 한국적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토끼가 입은 한복처럼 한국을 상징하는 것들이 그림 속에 등장해서가 아닙니다. 그닥 멀지 않은 시대를 산 우리 모습을 그림 속에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냉장고 안, 식탁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여러 가지 통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새우깡 봉지, 화장 거울이 걸린 못에 걸어둔 목걸이들, 두말할 것 없이 많은 독자들에게 기쁨을 준 한복, 한쪽에 이불을 개켜 둔 아빠의 서재, 문밖에 세워둔 무전기 같은 전화기, 그리고 싱크대에 정리된 식기와 여러가지 부엌 살림살이 토끼가 꺼내 든 젓가락은 한국이라는 것을 어디에도 드러내 강조하지 않았지만 가장 한국인의 생활 풍경이지요.    


이렇게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는 우리와 함께 사는 여러 동물 중에서도 개나 고양이보다는 드물다는 점에서, ‘토끼’라는 조금은 흔하지 않은 존재와 우리 집 같은 친근한 배경이 어우러져 어느 평범한 집에서 벌어진 토끼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토끼와 함께 살아서, 토끼를 기르느라 오래 들여다보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다 보면 이런 특별한 상상을 하게 되는가 봅니다. 작가의 상상에 기대어 저도 우리와 함께 살았던 개를 기억하며 즐거웠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낸시 태퍼리<파란 거위>(비룡소)

미야니시 타츠야 <내가 오줌을 누면>담푸스

티라 헤더 <내친구 알피>(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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