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아 사장을 납치한 하롤드 영감]을 읽고
아버지는 작은 서점을 오랫동안 운영하셨습니다. 하지만 대형 서점과 온라인 플랫폼이 득세하면서 결국 문을 닫으셨죠. 평생의 터전이 무너지는 풍경 속의 아버지는 여전히 잊혀지지 않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 하롤드 영감도 비슷합니다. 평생 일궈온 가구점은 이케아가 나타나며 부도가 나고, 사랑하는 아내는 치매로 나를 잊어갑니다. 직장과 사랑, 즉 자신의 세계 전부를 잃은 셈입니다. 사실 제목만 보고 유쾌한 소동극을 기대했습니다. 직전에 읽은 “노르웨이의 숲”이 묵직한 몰입감을 주었기 때문에 조금은 환기가 되길 바라면서 말이죠. 하지만 이 책도 결국 상실에 대해서 이야기하더군요. 노르웨이의 숲의 와타나베가 안으로 참잠하며 상실에 대응했다면, 하롤드는 밖으로 비명을 지르며 저항하고 있었습니다.
하롤드에게 가구는 단순한 물체가 아닙니다. 길고 추운 겨울을 보내는 북유럽 사람들에겐 “관계의 증거”였으니까요. 사람이 사람과 의미를 교환하며 서로를 규정하는 처럼, 가구 또한 사람과 관계를 지으며 서로를 증명합니다. 그러니까 아내와 가구를 잃어버린 이 상황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자연재해였던 셈이죠.
여기엔 명확한 가해자가 없습니다. 누군가의 악의라기보단, ‘상황이 가해자가 된’ 가혹한 현실이 있었을 뿐이죠. 압도적인 무력감을 느낀 하롤드 영감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많지 않았습니다. 결국 상황을 납득하기 위한 일종의 제물로 이케아 사장을 납치하려합니다. 하지만 막상 그 납치 또한 치밀하지 못합니다. 본인조차 목적을 모른 채 저지르는, 실존을 붙잡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에 가깝습니다.
어쩌면 내가 믿어왔던 삶의 정답들이 더 이상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꺠달았을때,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일지도 모릅니다.
이 책도 끝내 명쾌한 해답이나 위로를 주지는 않습니다. 그저 비명을 지르는 노인의 모습만 남길 뿐이죠.
우리의 최선이 가혹한 상황으로 돌아올 때,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의 비명은 어디를 향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