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없는 자유를 꿈꾸며, 의미를 찾아 헤메는 시편

[수도승과 로봇]을 읽고

by 폴라리스

수도승과 로봇 시리즈는 2부작입니다. 1편 《야생 조립체에 바치는 찬가》, 2편 《수관 기피를 위한 기도》 이죠. 제목의 Psalm(시편)과 Prayer(기도)가 말해주듯, 이 책은 방황에 대한 솔직한 토로에 가깝습니다. 독자에게 섣부른 위로를 건네기보다, 정직하게 길을 잃을 자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소설 속 세계관은 기술과 자연이 공존하는 유토피아입니다. (이런 걸 솔라펑크(Solarpunk)라고 하더라구요.) 의식주 걱정도, 자본주의의 압박도 없는 곳이지만 사람들에겐 여전히 '종교'와 ‘위로’가 필요합니다. 수도자 덱스는 마을을 돌며 차를 대접하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뚜렷한 상담을 해주지 않아도 사람들은 평안을 얻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죠. 정작 아이러니한 것은 덱스 본인입니다. 타인의 평안은 찾아주면서도, 자신은 삶이 가야 할 목적을 알지 못해 결국 사람이 살지 않는 야생으로 도망치듯 떠나니까요.


덱스는 그곳에서 로봇 '모스랩'을 만납니다. 이 로봇과 인간의 대화는 묘하게 익숙합니다. 현대인에게 AI가 가치판단 없이 속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담가가 되어주듯, 덱스도 낯선 로봇에게만큼은 자신의 연약함을 솔직하게 고백하며 위로를 얻습니다.


모스랩이 “인간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의 대답을 찾고 싶어합니다. 삶의 목적과 의미가 필요하다고 대답하는 덱스와 사람들에게 모스랩은 또 다른 질문을 갖습니다. 인간은 로봇에게 목적없는 자유를 주었으면서, 왜 스스로에겐 목적을 강요하며 힘들어하는가?


무언가 가치 있는 일을 해내야만 존재 의미가 있다고 믿는 우리에게, 이 책은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하지만 이걸로 정말 충분할까요? 사실 그 위로는 곁에 있는 사람, 나와 관계로 맺어진 이가 건네줄 때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로봇도 인간도 결국 답을 얻지는 못합니다. 우리 모두 존재만으로 충분하다는 걸 알면서도,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발버둥 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할 뿐이죠.

방황에 대한 솔직함으로 시작된 이 시편은, 서로에게 닿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서로를 지지하기를 바라는 기도로 마무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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