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와 데이터 이면의 사각지대를 생각하며

[우리에게는 다른 데이터가 필요하다]를 읽고

by 폴라리스

혼자서도 여행을 곧잘 다니는 편이라, 국내 여기저기 뚜벅이로 다닐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때마다 교통편으로 곤혹을 겪습니다. 서울이나 경기권과는 달리 농어촌 버스들은 배차간격이 아닌 정해진 시간에 출발하는 ‘시간표’ 기준입니다. 지도 어플에서 예상 출발 시각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인터넷을 따로 검색해볼 수 밖에 없습니다. 누군가의 오래된 블로그 포스팅이나 가끔 발견되는 공식 시간표 이미지들. 하지만 이런 자료들은 최신 데이터가 아니다보니, 막상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붙여진 종이 시간표를 보고 계획을 수정하기가 일쑤죠.

이걸 공공 데이터로 가공해서 제공하는건 어려울 건 아닐겁니다. 버스 시간표는 자주 바뀌지 않고, 관리 주체도 분명하니까요. 물론 ROI(투자 대비 효율, Return on Investment)가 낮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현지 분들은 이미 익숙한 시스템이라 굳이 데이터로 확인하실 필요는 없을테고, 대다수의 외부인들은 자동차로 이동하면 될테니 말이죠. 하지만 혜택의 여지도 있고, 충분히 관리가 가능한 영역임에도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이 아쉽게 다가옵니다.


‘우리에게는 다른 데이터가 필요하다‘는 이처럼 존재하지만 흐르지 않는 공공데이터의 사각지대를 조명합니다. 일단 띠지부터가 참 자극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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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한 시골 버스 시간표는 사소한 영역입니다만, 이 밖에도 필요하지만 찾기 어려운 공공 서비스는 많습니다. 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사용하지는 않더라도 때로는 간절히 필요한 서비스들이 있고, 심지어는 그런 혜택이 있는 지 조차 몰라 소외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공공과 민간 서비스의 차이를 세 가지로 꼽습니다. 사용자 친화적인 UX, 복잡한 데이터를 처리하는 효율적인 인프라, 그리고 꾸준한 피드백. 기업의 영리라는 인센티브가 분명한 민간은 ‘고객’을 위해 사활을 걸지만, 공공은 ‘이용자’를 관리 대상으로 간주하며 기능을 제공하는 데만 만족합니다. 변화를 이끌어낼 동력이 부족한 셈입니다. 물론 이 부족한 동력은 담당자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대학교 MT나 교회 수련회를 준비해 본 적이 있나요? 야심 차게 장소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설문조사를 통해 피드백을 받지만, 다음 해에 담당자가 바뀌면 그 모든 결과가 휘발됩니다. 피드백은 반영되지 않고 작년의 실수는 반복됩니다. 올해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큰 사고 없이 마치기만을 바라면서 말이죠. 공무원들의 업무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잦은 보직 이동과 과중한 업무 틈바구니에서 공공 서비스 혁신을 추구하는 건 일선 공무원들에게는 속 편한 소리이자 현장을 모르는 공염불로 여겨질 겁니다. 이런 현실에서 시빅 데이터(Civic Data)를 활용하는건 리스크일 뿐입니다.


십수 년간 우리를 괴롭힌 액티브X와 공인인증서 역시 그런 문화의 산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서비스 제공자가 피해를 받지 않으려는 면피용 보안 정책들 말입니다. 그 과정에서 인터페이스, 인프라, 피드백 모두 뒷전이 되었습니다. 지금에서야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지만, 그 복잡한 인증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공공 서비스를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개발자인 저에게 세상은 늘 범주화의 대상입니다. 데이터를 분류하여 비즈니스 로직을 짤 때, if-else로 분기를 치기 위해서는 명확한 타입이 있어야 합니다. 명확한 범주 외 케이스는 흔히 장애나 오류로 치부됩니다. 하지만 분류가 되었다는 건 그 서비스에 성공적으로 진입해서, 범주에 들만큼의 숫자를 보장한다는 의미입니다. 서비스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거나, 범주화 하기가 어려워 예외 케이스로 분류된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요? 예매 시스템을 사용하지 못해 오프라인 매표소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어르신들이나, 복잡하고 어려운 절차에 충분한 시간을 투자할 수 없어 포기하는 바쁜 사람들은요?


책이 제시하는 솔루션들은 다소 원론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결국 시스템을 움직이는건 개인이기에 공무원의 경험을 인정하고 맨파워를 키워야 한다는 결론들이 실제적인 설계도라기보다 이상적인 방향 제시에 가깝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책을 덮고 나서 프릭션(Friction) 데이터라던가 마이크로 피드백 등의 추가적인 해결책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질문들이 남습니다. 필요한 사람이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인터페이스는 무엇일까? 공공데이터로 더 나은 정책을 만들면서도 개인정보는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까? 그리고 기술자로서 나의 서비스는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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