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노력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실의 무게에 대하여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by 폴라리스

“이 이야기들은 우릴 속이려 드는가? 아니면 내면의 진실과 공명하는가? 이야기라는 방식 말고는 표현할 수 없는 진실과.”

영화 <나이브스 아웃 3: Wake Up Dead Man> 속 대사입니다.

마침 저도 하나의 상실을 겪으며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있던 참이라, 이 문장이 유독 깊게 박혔습니다.


이 책이 위로가 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덕분에 상실을 대하는 또 다른 태도를 배웠습니다. 교양서나 철학서가 알려주는 구조적인 도움이 있을 수도 있지만, 때로는 이야기가 더 직접적으로 마음에 울림을 주고 전혀 다른 측면을 보게 하는 힘이 있으니까요.

주인공 와타나베는 상실에 의미를 부여하며 이겨내려 노력합니다. 책을 읽고, 술을 마시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매일 태엽을 감듯 일상을 반복합니다. 그렇게 하면 자신이 강해지고 성숙해질 거라 스스로를 설득하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상실이 그렇게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이 존재하니까요.


읽으며 가장 아팠던 건, 자신의 고통을 의미로 다루는 태도가 타인의 고통 앞에서는 ‘낙관’이자 ‘방치’가 될 때도 있다는 점입니다. 그 선의는 때로 상대에게 폭력으로 다가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의미를 부여하며 버티는 모습을 보일수록, 상대는 방치당한 느낌 속에서 또 다른 상실을 겪을 수 있으니까요.


책에는 에우리피데스의 연극을 설명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서로 얽히고설킨 채 각자의 사정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복잡한 관계를 정리하는 것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 즉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겪는 상실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서로가 서로에게 남기는 상실은, 어느 한쪽의 인간적인 노력만으로는 온전히 해결되지 않는 영역인 듯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는 자기계발서나 희망적인 소설에서 보이는 ‘인간 찬사’가 없습니다.

상실을 대하는 모범적인 자세도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저 아주 솔직하게, 상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존재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을 뿐입니다.

상실을 겪어본 적이 있다면, 이 책은 따뜻한 위로가 아니라 묵직한 질문으로 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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