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25부터 11/30까지 세바시 대학에서 <강원국 작가의 글쓰기 전공>을 들었다.
수강 신청을 하고는 흥분된 마음으로 (내가 어떤 공부를 시작할 때 항상 그렇듯) "배우는 것을 모두 기록해 버리겠다!" 굳은 다짐을 하며 브런치에 "세바시 대학 글쓰기 전공"이라는 매거진도 만들었다. (비록 다짐만으로만 끝나버렸지만.)
이 글은 세바시 대학 4기가 끝난 시점에서 지난 4개월 간의 경험을 의미 있게 되돌아보려는 시도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이 글은 세바시 대학 4기 글쓰기 전공을 수강하고 수료한 후 극히 개인적인 개인의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객관적인 리뷰가 아니라 단 한 사람의 의견일 뿐이니 딱 그 정도로만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부디 이 글이 누군가 세바시 대학 수강을 결정하는데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기를 바랍니다.
목차
1. 세바시 대학을 알기 전 세바시를 알아야 한다.
2. 세바시 대학은 '대학'이 아니다.
3. 내가 세바시 대학을 신청한 이유
4. 세바시 대학이 일반 대학과 비슷한 점
5. 세바시 대학이 일반 대학과 다른 점
6. 세바시 대학을 수료하고 남은 것
7. 세바시 대학에서 글쓰기 외 배운 점
8. 세바시 대학 4기에서 아쉽거나 불편했던 점
1. 세바시 대학을 알기 전에 세바시를 알아야 한다.
세바시 대학은 "주식회사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줄여서 "세바시"에서 운영하는 대학이다.
내가 처음 세바시에 대해서 알게 된 건 2015년 즈음, 한 목사님을 통해서다. 청년 리더들을 위한 리더십 강의에서, 리더라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한다며 유튜브에서 세바시와 TED는 꼭 챙겨 들으라고 하셨다. 그때부터 두 프로그램을 시간 날 때마다 듣곤 하는데, 지금은 TED보단 세바시를 더 많이 챙겨 듣는 편이다.
내가 세바시를 처음 접했을 때 세바시는 아직 기독교방송 CBS에서 방영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기독교 방송에서 하는 프로그램 치고는 기독교적인 냄새가 나지 않았다. 나만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극히 기독교적인 영상(예를 들어 예배중계)을 제외한 기독교방송의 프로그램은 왠지 어설프거나 오글거리는 면이 있다. 하지만 세바시는 그렇지 않았다. 그저 극히 세상적인 TED의 한국어 버전이었달까.
아무튼 세바시는 기독교 방송에 속한 프로그램으로 시작해 주식회사로 독립했다. 회사의 수장은 처음부터 세바시를 기획했던 구범준 PD.
2. 세바시 대학은 '대학'이 아니다.
내가 세바시 대학 4기를 들었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세바시 대학 등록 페이지 맨 아래에는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세바시대학'은 '대학' 컨셉으로 운영되고 있는 세바시 콘텐츠 유료 멤버십 프로그램이며, 고등교육법에 의한 정식 대학이 아니란 것을 밝힙니다.
내게 세바시 대학이란 나날이 변해가는 세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돈을 지불하고 들어야 하는 평생 교육(Continuing Education)의 영역에 있는 상품이다.
'세바시 대학'은 정식 대학이 아닌 만큼 대학에서 기대할만한 부분이 없기도 하고, '대학 컨셉'으로 운영되고 있는 만큼 대학과 나름 비슷한 구석도 있다.
3. 내가 세바시 대학을 신청한 이유
어느 날 아침 유튜브에서 강원국 작가님이 세바시 대학에서 글쓰기 수업을 한다는 짧은 영상을 보게 되었다. 평소에 좋아하던 글쓰기 전문 작가님의 라이브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전공을 수료하면 수강 기간 동안 작성할 나의 책 기획서를 여러 출판사에 대신 제안하여 준다는 혜택에 매료되어 덜컥 수강신청을 해버렸다.
무엇보다 내가 아무런 부담 없이 379,000원을 결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수료 혜택이 매력적이었던 점도 있지만 그전에 내가 세바시에 익숙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세바시 강연이라는 플랫폼에 익숙했고, 그것은 나에게 지금까지 도움을 주었고, 세바시 대학을 통해 그 플랫폼을 좀 더 잘 누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원국 작가님은 세바시를 통해 나의 성향과 취향에 맞는 강연을 많이 들려줬던 분이기도 했다.
세바시 대학은 세바시라는 플랫폼을 좋아하는 사람이 들을 때 더 마음이 간다.
4. '세바시 대학'이 정식 대학과 비슷한 점
(1) 전공 필수과목, 전공 선택과목, 교양 필수과목, 그리고 교양 선택과목이 있다.
- 전공 필수과목은 전공 담당 교수님의 4번의 온라인 라이브 강의 (각 2시간).
- 전공 선택과목은 각 전공과 관련된 예전 세바시 강의들의 큐레이션.
- 교양 필수과목은 '인생 질문 클럽' 라이브.
- 교양 선택과목은 세바시 클래스 중 아무거나.
(2) 담당교수님과 조교님이 계신다.
- 담당교수님은 각 전공 담당 강사님. 4기 글쓰기 전공에는 강원국 작가님.
- 조교님은 세바시 직원 씁 조교님. (여기서 '씁'은 짜증 날 때 나오는 터져 나오는 "씁"이 아니라 세바시의 자음을 딴 'ㅅㅂㅅ'의 조합이다)
5. '세바시 대학'이 정식 대학과 다른 점
(1) 교수님이 교수님이 아니다.
일부 전공 담당 교수님은 (예를 들어 4기 가족상담 전공의 박상미 교수님은) 정식 대학의 교수님이다. 하지만 다른 담당 교수님들은 각자 자신의 분야 전문가다. 그래서 여느 세바시 강연이 그렇듯 교수님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인사이트와 꿀팁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내 의견으로는) 한 분야에 대한 포괄적인 설명은 부족할 수도 있다. 무언가를 잘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다른 분야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실전에서 뛰는 선수는 자신의 방법을 가르쳐줄 순 있지만, 자신과 다른 사람이 자신처럼 잘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줘야 할지는 잘 모를지도 모른다.
(2) 조교님이 안쓰럽다.
일반 대학에서도 조교는 안쓰럽다. 교수님이 하기 싫은 것을 모두 담당하고 일도 많다. 하지만 길고 긴 조교라는 터널을 지나고 나면 빛 볼 날도 온다. 세바시 대학 조교는 아닐 것 같았다.
세바시 대학에서는 조교님의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고 그저 '씁조교님'이라고 불렀는데, 내 추측으로는 아마 두 분 정도가 계셨던 거 같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그분들은 세바시에서 아무리 많은 월급을 받아도 충분치 않을 만큼 과도한 양의 일을 담당했다. 내가 들었던 글쓰기 전공만 하더라도 100명이 넘는 인원이 있었는데 4기 전공은 무려 4개였고, 씁조교님(들)은 그 모든 수강생과 교수님들의 필요를 채워줘야 했다.
만약 내가 한 명의 씁조교였다면 매일 아침 사직서를 품고 출근했을 것 같다. 그 이름 없는 씁조교님의 무덤에 마음으로나마 꽃 한 송이를 내려놓는다.
6. 세바시 대학을 수료하고 나서 남은 것
(1) 세바시 수료증
예전에 대학원을 딱 1학기 다녔던 적이 있다. 그때 학비로 $4,000 가량을 지불하고는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학기를 끝내지 못했었다. 그래서 스스로 농담처럼 그때 $4,000 내고 남은 것은 오리엔테이션 때 받았던 머그컵 하나가 전부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리고 그 생각은 쓰다. 상당히.)
하지만 이번엔 그때 1/10 가격으로 세바시 대학 수료증을 받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수료증에 '세바시 대학 4기'라는 것만 명시되고 어떤 전공인지는 나와있지 않다는 점. 수료증에 전공 이름과 함께 세바시 대학 총장 구범준 PD와 전공 담당 교수님 두 분의 서명이 들어갔다면 나중에 꺼내볼 때 더 의미 있지 않을까?
(2) 클럽 멤버들과의 관계
단언컨데 세바시 대학 4기에는 클럽이 찐이었다. 클럽 참여는 옵션이었는데, 클럽의 리더인 FT(faciliator)분들에게서 각 클럽 성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선착순으로 신청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만약 클럽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면 내 세바시 대학 경험은 사뭇 달랐을 것 같다.
먼저 내가 속한 클럽의 FT님은 을유출판사에서 『무심한 듯 씩씩하게』라는 책을 출간한 김필영 작가님이셨고, 멤버 중에는 이미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고 계셨던 중년의글쓰기 작가님과 마음이 동하다 작가님이 계셨고, 세바시 대학을 들으면서 브런치 작가가 되신 해냄, 권석민, 윤하늘 작가님들도 계셨다.
지극히 비사회적인 나도 zoom을 통한 클럽 미팅에 참여하고 단톡방에 소속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글쓰기에 대한 동기부여를 받을 수 있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매일 보는 직장 동료보다 일주일에 한 번 보는 교회 사람과 더 친밀함을 느끼는 경우가 있는데, 온라인을 통해 만난 클럽 사람들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내가 한국에 방문하는 동안 오프라인 미팅이 이뤄져 커뮤니티의 친밀감이 더 돈독해졌다.
7. 세바시 대학에서 글쓰기 외 배운 점
다음은 세바시 대학을 수강하며 배운 콘텐츠와는 관련 없이 든 생각이다:
(1) 이런 플랫폼을 만드고 꾸려가는 일, 참 어렵겠다.
세바시의 수장 구범준 PD의 브런치 작가소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세바시를 만들고 11년째 이어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세바시의 대표 PD이자 CEO로 일하고 있는데요, 이 일은 매우 힘듭니다. ^^;;;;
그렇다. 세바시 대학 운영은 정말 힘들어 보였다.
처음 줌(zoom) 라이브 강의에 들어갔을 때는 솔직히 예상보다 너무 많은 수강생 숫자에 조금 놀랐다. 그리고 속물인 나는 수강생 숫자에 수강료를 곱하며 이익은 얼마일까 혼자 계산을 했었더랬다. 하지만 몇 개월간의 수업, 수강생 지원, 조교님의 월급, 그리고 전공 교수님의 페이 등을 생각하면 얼마 남는 게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운영하며 받는 스트레스에 비하면 남는 장사가 아닐 거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 매체를 통해서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구범준 PD가 세바시 대학 4기는 적자였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험난한 사업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 장사, 이렇게 해야겠다.
4기를 수료하고 나니 감사하게도 세바시 대학 다음 학기에 쓸 수 있는 10만 원짜리 쿠폰을 발급해 줬다. 너무 고마웠다. 하지만 속물인 내겐 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어느 책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한 마케팅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물건은 새로운 고객에게 파는 것보다 이미 내 물건을 한번 사준 사람에게 파는 것이 월등히 쉽다는 것을. 그런 의미에서 세바시는 고객 충성도를 높이는데 아주 효과적인 행위를 했다.
세바시의 의도는 전혀 그렇지 않겠지만, 내가 만약 세바시의 수장이라면 세바시의 영업 목표를 모든 세바시 고객들이 항상, 그리고 평생 세바시 대학의 수강생이게 하는 것으로 잡을 것 같다. 실제로 나는 세바시 대학을 수강하면서 수강생은 모든 세바시 플랫폼에 있는 강의를 무료로 들을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8. 세바시 대학 4기에서 아쉽거나 불편했던 점
내가 속한 미국 육군의 생일은 1775년 7월 14일이다. 그런데 2022년 올해로 만 247살이 된 미국 육군도 가끔 일처리 하는 걸 보면 답답할 때가 많다. 그런데 이제 겨우 4기를 맞은 세바시 대학이 어찌 완벽할 수 있으랴. 지금까지 존재했던 기간을 고려한다면 세바시 대학은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은 프로그램일 수도 있다. 그래도 지극히 개인적으로 세바시 대학 4기에서 아쉽거나 불편했던 점을 기록해 본다.
(1) 이해하기 어려운 수료 조건
이건 순전히 내 이해도의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도 없으란 법은 없을 터. 세바시 대학을 들어야겠다고 마음먹게 했던 한 가지 이유는 수료 조건을 충족하면 따라오는 혜택(공동 출간 + 여러 출판사에 출간 기획서 대신 제출)이었다. 하지만 수료 조건은 너무 이해하기가 어려워서 나 스스로 세바시 대학 글쓰기 전공 교수요목(Syllabus)을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나만의 문제였을 수도.
(2) 해외 거주자에겐 너무 어려운 세바시
나는 미국에 23년째 살고 있는데, 세바시 대학 등록이 굉장히 어려웠다. 만약 한국에서 지내고 있던 아내가 없었다면 세바시 대학 등록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 해외 신용카드로 결제가 불가능했다. 다행히 아내가 한국에 있어서 계좌이체로 결제를 진행할 수 있었다.
- 세바시 대학을 듣는 동안 몇몇 전달사항은 핸드폰 문자메시지로 발송됐다. 만약 한국에 아내가 없었다면 몇몇 커뮤니케이션을 전달받지 못했을 것이다. 나중에 세바시 조교님께 사정을 설명하고 이메일로도 보내주십사 부탁을 드렸고 그렇게 해주셨지만 문자 메시지로 발송된 모든 메시지가 이메일로 동일하게 발송되지는 않은 것 같다.
- 해외 거주자는 세바시에서 보내주는 굿즈를 받을 수 없다. 세바시 대학 4기 때는 『세바시 인생질문 세트(3권)』을 수강생들에게 보내줬는데, 해외로는 배송이 불가하다는 안내를 받았다. 이것도 다행히 한국에 아내가 있어 나중에 전달받을 수 있었다. 또한 대학 수료 후 수료증과 스티커를 보내주셨는데, 이것도 한국에 아내가 없었다면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수료증을 PDF로는 발송해 주셨겠지만,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수료증을 받는 기분과는 사뭇 다르지 않았을까.
(3) 아직은 과도기인 세바시 시스템
세바시 대학 4기는 여러 플랫폼을 통해 커뮤니케이션과 수업이 이루어졌다. 세바시 대학 모든 전공의 수강생과 (예전 기수의 수강생까지 있는) 단톡방, 네이버 카페, 문자 메시지, 클럽 FT님을 통한 공지, 그리고 세바시 웹사이트를 사용했다. 여러 플랫폼을 꼼꼼히 체크하면 필요한 정보는 모두 전달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리 꼼꼼하지 못했다.
(4) 거슬렸던 '세바시 대학' 이름 띄어쓰기
내가 세바시 대학 4기를 신청할 때 홍보자료에는 "세바시 대학"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마치 하버드 대학을 "하버드 (띄고) 대학"이라고 표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내 수료증에는 "세바시대학"이라고 붙여서 프린트가 되어 있다. 5기 홍보자료들에도 그렇다. 세바시 대학은 '세바시 대학'인가 '세바시대학'인가.
나도 이렇게 까탈스러운 내 성격이 싫지만 왠지 신발 안에 모래가 들어간 것 같은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마치는 말
세바시 대학 4기가 끝났다.
비록 다사다난했지만 그 경험은 재밌었고 유익했다.
이제 2022년이 끝나간다.
내 2022년도 세바시 대학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