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은 나한테만 나쁜 사람이다

by 폴챙



결혼 전 남편은 멀쩡했다. 정말이다. 하지만 결혼 후 사이코패스가 되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말한다. 그렇게 괜찮은 사람이랑 살아서 너무 좋겠다고. 지금까진 어찌어찌 버티며 살았는데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심장이 죄여온다.


그렇다. 저 인간은 나한테만 나쁜 놈이다.






내 남편의 진짜 모습은 당신이 아는 것과 다르다


남편 친구 아내들은 말한다. 남편이 패션센스가 좋은 멋쟁이라고. 웃기는 소리. 그 옷 내가 골라준 거다. 양말부터 팬티까지 다 내가 사 준 거다. 저 인간은 자기 옷 사이즈도 모른다.


남편 직장 여사원들은 말한다. 남편이 본인들 커피취향까지 기억해 가며 사주는 센스쟁이라고. 그 인간은 딴 여자 커피취향은 기억하면서 매년 자기 결혼기념일은 까먹는다. 까버리고 싶다.


남편 주위 사람들은 말한다. 남편이 젠틀하고 매너 있는 사람이라고. 그 젠틀한 사람이 집에만 오면 인상을 쓰고, 소리 꽥꽥 지르고, 지 화를 못 이겨 물건도 집어던진다.


보통 전자제품에는 이런 주의사항이 적혀있다:

너무 높거나 낮은 온도에서 사용하면 성능이 저하될 수 있으며, 제품의 수명을 단축시킬 수 있습니다.


남편은 집에서 사용하면 성능이 저하된다. 저하된 인간과 사는 내 수명이 단축된다.






모든 남편은 좋은 사람이다


내향적인 사람은 타인에게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정해져 있다고 한다. 그 에너지는 충전용 배터리 같아서, 다 쓰면 충전을 위해 멈추고 쉬어야 한다.


내 남편에겐 그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에너지가 있다. 그 에너지를 다 써버리면 나쁜 모습이 나온다.


가끔은 남편이 딱할 때도 있다. 얼마나 밖에서 시달렸으면, 사람들 비위 맞춰주느라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내 앞에서 저럴까.


하지만 남편은 밖에서 좋은 인간 에너지를 다 안 쓰고 온 날에도 남겨뒀다 남에게 써야 한다며 남은 에너지를 아내에게 쓰지 않는다. 남 앞에선 에너지가 방전되어도 기를 쓰고 좋은 인간을 끌어내지만, 내 앞에선 항상 방전된 모습만 보인다.






내 남편은 나한테만 불량품이다


결혼 전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을 보며 생각했다. 평생 혼자 살면 살았지 저런 미친놈과는 결혼 안 하겠다고. 평생 걸어 다니고 말지 똥차를 왜 타냐고.


그 똥차 내가 탄다. 안에 똥까지 가득 찬 똥차를 내가 돈까지 주고 샀다.


<한문철의 블랙박스 리뷰>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블랙박스 영상을 보여주고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 한문철의 설명을 들려준다. 이 방송 64회에 안타까운 사연이 하나 소개 됐다. 구입한 지 얼마 안 된 고급 외제차에 갑자기 불이 나 폐차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제조사는 시동 꺼진 차에 스스로 난 불이 소비자의 과실이라고 주장했다.


보는 내내 열불이 났다. 어찌 저런 못돼 먹은 회사가 다 있단 말인가. 아니, 대한민국은 왜 저런 회사를 가만히 놔두는가. 내가 가서 따지고 싶었다.


여기가 가만히 놔둬도 불붙는 차 만드는 회사라면서요? 그 차 하나 줘봐요. 우리 남편 주게.






미운 남편 떡 하나 더 준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있다.


왜 미운 놈한테 떡 하나 더 줄까? 미움을 사랑으로 감싸주라는 뜻일까? 아니다. 먹고 목 막혀 죽으라고 주는 거다. 하나 먹고도 멀쩡하니 하나 더 먹고 제발 목 좀 막히라는 거다.


오늘 사온 떡을 다 먹고도 남편은 여전히 살아있다. 내일은 대왕 찹쌀떡을 사러 가야겠다.






오늘 점심으로 아내가 대왕 찹쌀떡을 싸줬다.


나는 찹쌀떡을 안 좋아하니 집에 가서 아내랑 나눠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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