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아내와 함께 영화관에서 <서울의 봄>을 봤다.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함, 짜증, 그리고 분노가 마음속에 차올랐다. 내가 아무리 만 12살에 미국으로 이민 가 비록 지금은 미국인이라지만, 한국의 부끄러운 역사에 감정이 이입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마 나도 군인이(미군 대위)라 군인 같지 않은 인물들의 행동에 감정이입이 더 됐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며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저 상황을 막으려면 당시 사람들은 어떻게 했어야 했지? 저 상황은 누가 막을 수 있었을까? 국민들? 정신이 돌아온 하나회 멤버 중 하나? 대통령? 한 사람이라도 정신이 더 똑바로 박혀있었으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극 중 이태신 장군 같은 인물이 발버둥을 쳤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는데 한 사람이 더 정의의 편에 섰다고 상황이 역전됐을까? 전두광 아내가 남편 밥에 쥐약이라도 탔어야 했나? 아니, 남편의 탈선을 막아설 줄 아는 여자였다면 애초 그런 남자랑 결혼을 하지도 않았으려나? 내가 그 당시 대한민국 육군 대위였다면 어떤 입장을 취했을까? 전두광이의 승리가 눈에 뻔히 보인다면 돈과 권력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누가 봐도 누가 잘못했는지 뻔한 스토리인데, 그 이야기의 악당들과 그 후손들은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잘 먹고 잘살고 있다고 한다. 영화도 내 마음도 총체적 난국이었다. 이 영화가 역사적 인식은 살아나게 했을 텐데, 이 인식은 의미 있는 행동과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까? 누군가의 잘못이 만천하에 드러났는데 잘못한 사람들이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면 악당들은 이 사회를 더 비웃지 않을까?
영화가 끝나고 일어서기까지 답은 떠오르지 않았고, 나는 마음속으로 타협을 이뤄냈다. 어차피 나는 곧 미국으로 돌아갈 사람이니까, 어차피 난 미국인이니까, 이 나라의 역사는 이 나라의 국민들이 알아서 하겠지. 나는 나중에 브런치스토리에 글이나 써야겠다. 나중엔 영어로도 써볼까? 국제사회가 이 나라의 부끄러움을 알게 된다면 변화에 작은 도움이 될까? 그저 국제적 망신만 되려나? 내가 미국에서 최선을 다해 살고 있으면 나비효과로 한국이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될까? 미국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면 한국전쟁 흥남 철수 작전에서 피난민들을 미군함에 태워 달라고 미군 장군에게 요청해 9만 8천여 명을 살려낸 재미교포 현봉학 선생 같은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아, 이제 대한민국은 자국민을 살려달라고 미군에게 요청할 만큼 약한 나라는 아니었나?
여러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 상영관 출구로 향했다. 아내는 내 어두운 표정을 보고 왜 그러느냐 물었고, 난 앞으로 태어날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일단 매일의 삶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작은 일도 타협하지 않기로 다짐하며 상영관을 나섰다.
상영관을 빠져나와 다 먹은 팝콘 봉지와 콜라를 버리려고 쓰레기통으로 향하니 꽤나 불편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쓰레기통은 아직 많이 비어있는데도) 쓰레기통 밖으로 쓰레기와 팝콘이 널브러져 있었고, 재활용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영화를 보며 눌렀던 화가 쓰레기통을 보고 폭발했다. 비록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는 그 모양 그 꼴이었어도, 지금 우리는 쓰레기 정도는 교양 있게 제대로 버릴 수 있지 않나? 저런 영화를 보고 나와서도 그러고 싶었을까?
아내와 나는 널브러진 쓰레기를 주워 쓰레기통에 버리고, 쓰레기통에 들어있는 재활용 용기들을 빼내어 분리수거를 했다. 쓰레기통에서 재활용품들을 꺼내려다 보니 상반신 전체를 쓰레기통에 넣어야만 했다.
쓰레기통을 정리하고 영화관을 나서는데 괜스레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그깟 쓰레기 좀 널브러져 있는 게 뭐라고. 재활용을 잘하고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제대로 버리는 게 이 사회에 무슨 도움이 된다고. 영화관 쓰레기통을 정리하는 것에도 나비효과가 있을까? 의대 정원을 늘리면 낙수효과가 있다고 누가 그러던데, 영화관 쓰레기통 정리에도 긍정적인 낙수효과가 있을까?
근데 어쩌면 그렇게 널브러진 쓰레기통이라도, 그나마 쓰레기를 상영관 안에 놔두지 않고 쓰레기통 근처까지 가져와 내던져준 것에 고마워해야 할까? 어쩌면 내가 몰상식이라고 판단했던 것이 누군가의 최선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우리도 이 나라가 그나마 서울의 봄 정도로 그칠 수 있었던 것을 고마워해야 하는 걸까? 아니, 이건 또 무슨 헛소리야.
영화 속에서 일어난 일도, 내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들도 말이 안 되는 날이었지만, 뭐라도 제대로였으면 하는 날이었다.
미국으로 돌아와 형과 동생과 함께 삼 형제가 영어 자막을 켜고 <서울의 봄>을 다시 봤다.
영화가 끝나자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 역사는 잘 모르는 동생은 저게 실제로 일어난 일이 맞냐며 되물었고, 나는 다시 봐도 화가 났고, 형은 영화를 다 봤는데 마치 똥 싸고 안 닦은 것처럼 찝찝하다 했다.
살면서 놀랍고 화나고 찝찝한 일들이 한 둘은 아니지만, 그런 일들이 더 이상은 쌓이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