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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챙 Apr 24. 2024

에세이를 쓸 수 있으니 조금쯤은 억울해도 괜찮아요



왜 항상 꼭 하고 싶은 말은 말할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말까?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에세이를 쓸 수 있으니까.






우리는 누구나 오해를 안고 살아간다


가수 김국환은 이렇게 노래했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다른 사람도 나를 모르지만 때론 나도 나를 잘 모른다. 그러니 어쩌면 사람 사이에 아무런 오해가 없는 게 더 이상하다. 우리는 누구나 서로에 대한 오해를 조금씩 안고 살아간다. 그러니 작은 일에 그리 억울해할 필요는 없다.


김국환은 또 이렇게 노래했다:

우리네 헛짚는 인생살이
한세상 걱정조차 없이 살면 무슨 재미


우리는 때로 서로에 대해 헛다리를 짚지만 그게 또 인생에 재미를 더해주기도 한다.






한 사람만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여 준다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단 한 사람이라도 내 억울함을 알아주면 덜 억울하다.


나는 다 알아. 내가 다 봤어.


비록 그 사람이 내 억울함에 대한 정의구현을 해주진 못할지라도, 내 억울함을 알아주기만 해도 마음이 한결 나아진다.


근데 살다 보면 아무도 모르는 나만 아는 억울함도 생긴다. 그래도 괜찮다. 다른 사람이 몰라주면 내가 내 억울함을 알아주면 된다. 난 그럴 때 에세이를 쓰며 스스로에게 고개를 끄덕여준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내가 다 봤어.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다 알아.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게 되니 때론 억울함이 반갑다. 에세이를 쓰며 나를 위로해 줄 나를 만날 생각에 반갑다.






선생님, 제가 잠든 게 아니라요


올해 나태주 시인에게 온라인으로 시를 배웠다.


한국시간으로 오후 2시에 진행되는 수업이라 내가 있는 미국 시애틀에선 밤 10시에 수업이 시작됐다. 내가 그리 일찍 잠드는 편은 아니라 밤에 진행되는 수업이 피곤하진 않았지만, 수업이 끝날 때쯤이 되면 항상 배가 출출했다.


결국 세 번째 수업에서는 도저히 허기를 참지 못하고 (수업을 진행하시는 선생님께는 매우 죄송하지만) 카메라를 끄고 블루투스 이어폰을 낀 채 부엌으로 향했다. 무엇을 얼른 입에 넣고 씹지 않는 척을 하며 다시 카메라를 켤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 프로틴바를 하나 뜯어 입에 욱여넣었다. 입안 가득 찐득한 프로틴바를 씹으며 다시 컴퓨터 앞으로 가는데 선생님이 수업을 마무리하고 질문을 받으시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날 따라 질문이 별로 없어서 선생님은 랜덤으로 지목을 하시기 시작했다.


ㅇㅇ씨는 무슨 할 말 없어요?


그런데 그러시다 갑자기 이러시는 거 아닌가.


폴챙 씨는 벌써 자러 갔나 보네?


아, 선생님 그게 아니라. 제가 지금 양볼 가득 프로틴바를 씹고 있어서 지금 카메라랑 마이크를 켤 수는 없는데요. 제가 선생님 수업 도중에 프로틴바나 먹고 있을 만큼 몰상식하긴 하지만 아직 수업도 안 끝났는데 숙면을 취하러 갈 만큼 버르장머리 없지는 않거든요. 제발 내가 얼른 이 프로틴바를 씹어 삼키고 저 자는 거 아니라고 말할 수 있도록 누군가 시간을 끌어주세요. 누군가 선생님 신발 사이즈라도 물어주세요, 제발.


하지만 프로틴바가 미처 내 목구멍으로 넘어가기 전, 수업은 끝나 버리고 말았다. 내 입안 가득한 프로틴바가 얄미웠고 참지 못한 배고픔이 야속했다.


그래, 살다 보면 나태주 시인 수업 듣다가 자러 가는 사람이 될 수도 있지.


괜찮아, 에세이에 쓰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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