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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챙 Mar 26. 2024

당신을 그곳에 데려갈 순 없으니 에세이를 씁니다



올해로 11년 차 미국 군인이다. 군인이니 종종 훈련을 나간다.


훈련만 시작되면 날씨가 협조적일 때가 거의 없다. 너무 춥거나, 너무 덥거나, 비가 와서 군복이 쫄딱 젖거나, 아침에 침낭에서 기어 나올 때면 간밤에 내린 서리로 침낭이 바스락 거리기도 한다.


그럴 때면 집에 두고 온 모든 것이 그리워진다. 뜨거운 샤워, 깨끗한 마른 옷, 벌레가 기어 다니지 않는 바닥, 이슬과 서리를 막아주는 지붕, 언제든 뜨끈한 커피를 내려주는 커피머신,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꼭 껴안고 잠들 수 있는 내 아내. 이 훈련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그동안 익숙함에 감사한 줄 모르고 살았던 일상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리라 다짐하곤 한다.


2021년 봄, 캘리포니아 사막으로 한 달간 훈련을 떠났다. 아직 봄이었지만 낮엔 강렬한 사막의 태양이 뜨거웠고, 해가 지면 추위가 찾아왔다. 잠시 눈을 붙일 수 있는 밤이 오면 낮에 흘린 땀에 젖은 군복을 새 걸로 갈아입고 침낭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사막에서의 훈련 개시 일주일 후, 내가 챙겨 온 깨끗한 군복은 곧 바닥났다. 그 후 2주, 매일 밤 땀에 절어 축축한 군복을 사막 모래바람에 널어 말리며 부디 내일 아침에는 축축하지 않은 군복을 입을 수 있길 바랐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사막에서의 3주 훈련도 끝나고 베이스캠프로 돌아갈 수 있었다. 베이스캠프에도 샤워시설은 없었지만, 오랜만에 훈련 없이 여유로운 저녁을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수통, 비누, 그리고 수건을 들고 물탱크로 향했다.


허허벌판 사막 한가운데 있는 물탱크 주위에는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남자 군인들이 윗옷을 벗고 몸을 씻고 있었다. 나도 그들 사이로 들어가 윗옷을 벗고 물 한 통 전부를 사막 모래가 잔뜩 낀 머리와 몸에 뿌렸다. 다시 물통에 물을 받고는 머리와 얼굴에 비누칠을 했다. 마지막으로 물을 뿌려 머리와 몸에 뭍은 비누를 씻어내고 수건으로 물기를 대충 닦은 후 옷을 다시 입었다.


3주 만에 감은 머리와 물로 씻어낸 몸은 정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상쾌했다. 그리고 그날따라 밤바람은 차지 않고 봄바람처럼 선선했고, 밤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밤하늘에는 대형 가로등을 켜놓은 것처럼 밝은 달이 떠 있었고, 높고 까만 밤하늘에는 별이 가득했다. 정말 한가득. 인간이 만든 조명 하나 없이 달과 별빛 아래 끝없이 펼쳐진 사막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나는 창조주를 믿었지만, 만약 내가 신을 믿지 않았더라도 신의 존재를 예측할 수 있게 만드는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이런 걸 혼자 보기 아깝다고 하는구나.


그 순간 그 아름다운 풍경을 꼭 보여주고 싶었던,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내 아내였다.






그날 밤 그 순간의 그 상쾌함, 그 아름다운 풍경, 그 밤 별빛 아래 내가 느꼈던 그 감정. 그 순간이 너무 아름다워 너무 함께 하고 싶었지만, 그걸 같이 느끼자고 아내에게 군에 입대하라고 할 순 없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름다운 걸 보여주고 싶은 건 인지상정.


현재 내게 주어진 삶은 나 스스로 살아내야 하지만, 그 안에는 사랑하는 내 사람과 나누고 싶은 것들이 속속들이 들어있다. 내가 아니라면 겪지 못할, 나만이 마주칠 수 있는 아름다운 순간들이.


그럴  그때의 아름다움과 황홀함이 전달될 수 있도록 순간을 담아 에세이를 쓴다. 지금껏 나도 타인이 살아낸 삶에서 건져 올린 지식, 지혜, 경험, 감정들을 누려왔으니, 나도 같은 것으로 돌려주려 에세이를 쓴다.


비록 때론 내게 주어진 시간을 완벽하게 살아내지 못했을지라도, 미숙했던 내 경험이 정제되어 솔직하고 정갈하게 전달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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