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폴챙 Mar 21. 2024

주위에 내 말 들어주는 사람 하나 없어 에세이를 씁니다



사람은 타인의 말을 잘 안 듣는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내가 자주 겪는 일이니까. 


뭐 그렇다고 내가 억울하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내 관심사는 당신의 것과는 다릅니다


난 대체적으로 사람 말을 잘 들어준다. 눈을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 질문한다. 그런데 난 다른 사람 말 듣는 걸 좋아하지만, 나와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은 별로 없다.


내가 좋아하는 주제는 책이나 글쓰기 따위인데, 내 주위엔 그런 것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 많지 않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다른 사람들은 나와 다른 것에 관심이 있기에 그들의 이야기가 흥미로울 때가 있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직접 겪지 않을 것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타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시야와 관점이 넓어진다.


타인의 이야기를 한참 듣다 보면, 상대방은 말할 거리가 떨어진 건지, 자기 혼자 오랜 시간 이야기 했다는 걸 자각한 건지, 내 이야기를 묻기 시작한다.


그런데 내가 말할 순서가 되면, 평소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나는 이미 사람을 만나 피로감이 많이 쌓인 상태인 데다, 상대방도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엔 그리 흥미 없다는 걸 알기에 내 이야기는 넣어둔 채 대화를 마무리한다.






한 사람보단 여러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 


내 주위 사람이 내가 흥미 있어하는 것에 관심이 없다고 내가 그들에게 실망하는 건 아니다. 내겐 특별한 관심사가 있을 뿐이고, 나는 내 이야기에 흥미 없는 사람에게 가뜩이나 부족한 사회성을 발휘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고 주위 사람들이 소중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들과는 공통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주로 맛있는 음식, 사업, 군대, 교회 얘기 따위를 한다.


나는 나 혼자 관심 있는 것들을 (주고받기식으로 내 말도 들어주어야 할 의무감을 느끼는 사람이 아닌내가 하려는 말이 필요한 사람에게 하고 싶다.


물론 내가 관심 있는 것을 상대에게 전파하고 그 매력에 빠질 수 있게 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난 달변가도 아닌 데다, 내 관심사에 무지한 상대를 전도할 기력도 없다. 차라리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다수를 위해 글을 쓴다.


『진짜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사는 법』이라는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는 자기 시간을 '지역구'로 쓸지 '세계구'로 쓸지 결정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지역구라면 지역사회에 집중하고 대면 방식으로 일을 처리한다. 하지만 그러면 세계 무대에 쏟을 시간이 적어진다. 만약 당신이 세계구라면 전 세계를 위해 무언가를 만들어낼 것이다.


나는 이 대목에 크게 공감했다. 이 책 저자의 용어를 쓰자면 나는 '세계구' 성향이 강하다. (어쩌면 그냥 관종일 수도 있다.)


내 생각을 한 사람에게 "말하는" 것보다 다수에게 "글로 쓰는" 것이 좋다. 나의 버벅대는 언변으로 내 생각을 전하다 보면 내 메시지를 상대방이 놓칠 수도 있지만, 글은 다듬어서 상대방에게 보다 정제된 생각을 전할 수 있다. 물론 말도 내뱉기 전에 다듬을 수 있지만, 난 말보단 글을 준비하는 편이 에너지 효율이 좋다.






글쓰기는 친절한 일대일 대화다


글은 혼자 쓰고 혼자 읽는다.


그래서 글쓰기는 아주 친밀한 대화다. 글을 쓰면 상대방은 한참 후에나 읽을 수 있으니 나 혼자 호흡이 아주 길게 떠드는 것 같기도 하다. 한참을 혼자 글로 떠들다 보면 정적이 흐를 때가 있다. 내가 상대방이 지루해한다는 걸 자각하지 못하고 너무 재미없게 떠들었구나, 하며 글을 줄여도 보고 바꿔도 본다. 어떤 부분에서 상대방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일지, 어떤 부분에서 어떤 질문이 나올지 떠올리며 글을 쓴다.


좋은 글은 친절하다. 만약 군대 얘기를 하고 싶다면 군대에 안 다녀온 사람도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서 설명해줘야 한다. 이해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인사이트라도 소용이 없다.


내가 경험을 통해 얻은 생각을 글을 통해 전달할 수 있다면, 상대방이 직접 경험해야 할 수고를 덜어줄 수 있다. 마치 오렌지를 싫어하는 사람이 그 안에 들어있는 비타민C를 섭취할 수 있도록 비타민만 추출해서 알약으로 만들어 주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물론 오렌지를 통째로 먹으면 오렌지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겠지만, 주고 싶은 것이 비타민이라면 꼭 오렌지를 씹어 먹으라고 강요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당신을 위해 내가 대신 군대를 다녀왔다)


읽는 사람의 교양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일반 상식 수준을 넘어서는 예를 들거나 전문용어를 들먹일 땐 부연설명이나 뜻을 덧붙인다. 내 글을 읽으며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는 마음에서다. 얼굴을 보며 하는 대화에선 이해가 안 되고 소외감이 들어도 예의상 들어줄 수 있지만, 글은 당장 읽기를 멈출 수 있다.






당신은 아직 가장 친한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


군대 훈련소에 들어가면 내 선택과는 무관하게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2개월 이상을 함께 보내야 한다. 꽤 괜찮은 친구를 만날 수도 있지만, 개중엔 잠버릇 고약하고, 성질 더럽고, 같이 쓰는 공간도 지저분하게 쓰는 사람이 꼭 있다. (지금 당신의 배우자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건 아니다.) 이런 사람과 같이 생활하는 건 참 끔찍한 일이다.


끔찍한 사람과 함께 끔찍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교관이 우리들에게 해준 말이 있다.


You haven't met your best friend yet.

너희들은 아직 가장 친한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


군대는 넓고, 지금 네 옆에 있는 끔찍한 녀석 말고, 너와 꼭 맞는 친구가 있을 거라는 말이었다. 그 말이 맞았다. 훈련소를 졸업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며 나는 나와 비슷하게 목욕도 잘하고 대화가 통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군대 밖 세상도 다를 바 없다. 지금 내 옆에 끔찍한 사람이 있거나, 지금 처한 상황이 끔찍할 수도 있다. 내 말에 공감하며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괜찮다. 당신은 아직 가장 친한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 세상은 넓고, 나와 잘 통하는 사람은 꼭 있다. 그리고 글이 그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


글로는 나 혼자 떠들 수 있으니, 가식 없이 나 혼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내 이야기에 진정으로 공감하는 사람이 나를 찾을 수 있다. 내 글에 내 마음이 담기면, 나와 비슷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가닿을 수 있다.


그러니 계속 글을 쓰자. 내 마음이 온전히 담기는 글을 쓰자. 나는 그래서 오늘도 에세이를 쓴다. 






글은 얼굴을 마주 보며 하는 대화와 달리 언제든지 읽기를 멈출 수 있기에, 내 글을 끝까지 읽어주는 사람은 항상 고맙다. 오늘도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 당신, 참 고맙다.





에세이와 글쓰기에 관한 에세이:

어차피 읽을 사람만 읽을 테니 하고픈 말을 쓰면 됩니다

내 안의 이야기도 한 번씩 뽑아봐야 합니다

생각은 많은데 생각이 느려서 글을 씁니다

[매거진] 에세이의 이유

[매거진] 글 쓰면서 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대한민국 에세이 작가가 푸대접받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