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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챙 Jan 29. 2024

대한민국 에세이 작가가 푸대접받는 이유

그리고 700만 원 상금 에세이 공모전



작가 세 사람이 구직 활동을 시작했다. 각각 전공은 소설, 시, 에세이*.


소설 전공은 부르는 곳이 많다. 조건을 따져서 회사를 골라 원서를 넣는다.


시 전공은 소설처럼 부르는 곳은 많지만 조건이 소설만큼 좋지는 않다. 대우가 좀 덜해도 시 전공 작가는 나는 시인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사람들도 시인이라는 말에 낭만을 느낀다.


에세이 전공은 일자리 찾기가 쉽지가 않다. 회사 32곳에 문의했지만 에세이 전공을 뽑는 곳은 단 5곳. 대우도 소설과 시에 비하면 비정규직이다. 사람들은 에세이 작가는 작가도 아니라고 무시한다. 더러워서 취직을 포기하고 창업을 꿈꾼다.


이 이야기는 대한민국 문학계의 현실이다.


*여기서 에세이란 문예(文藝, 예술로서의 문학) 작품으로서의 에세이를 말한다. 한 편의 소설이나 한 편의 시처럼 하나의 독립된 작품이다.






에세이는 문학 작품도 아니다


신춘-문예(新春文藝)

「명사」 매해 초 신문사에서 주로 신인 작가를 발굴할 목적으로 벌이는 문예 경연 대회.


지금은 그 위상이 많이 줄었지만, 1915년 매일신보를 통해 처음 시작된 대한민국의 신춘문예(新春文藝)는 백 년 이상 동안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의 등용문이었다.


하지만 작가라는 이름을 얻기 위한 이 대회에 에세이 작가의 자리는 찾기 어렵다. 2024년 신춘문예 공고 32개 중 단 5개(15%)만이 에세이(수필) 응모를 받았다. 받는 곳의 수상금도 소설과 시에 비해 낮았다.


에세이를 쓰는 한 사람으로서는 꽤나 섭섭한 일이다.






문학계의 고아, 대한민국 에세이 작가의 현실


대한민국에서 에세이 작가는 고아 같다. 챙겨주는 사람이 없다.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


미국에는 전 세계 출판사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하퍼콜린스(HarperCollins)에서 매년 발행하는『 The Best American Essays』라는 단행본이 있다. 매년, 그전 해에 발행된 미국 에세이 중 약 20-30편을 선별해 단행본으로 엮어 발행한다. 매년 열리는 미국 에세이 챔피언쉽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에세이 작가들은 여러 문예지에 에세이를 투고해 원고료를 받고, 베스트 에세이로 뽑히면 또 저작료를 받는다. [참고: 37년 전통의 미국 에세이 맛집]


물론 미국에서도 에세이 작가는 작가들 사이에서 마이너에 속한다. 소설 작가나 실용서 작가처럼 대박 내기가 어렵다. 그래도 입에 풀칠할 구조는 마련되어 있어서, 에세이 작가들은 더 잘 먹고살기 위해 더 열심히 더 좋은 에세이를 써낸다. 경쟁사가 많을수록 제품과 서비스의 질이 높아지는 것처럼 에세이의 수준이 점점 높아진다. 베스트 에세이로 뽑힌 에세이를 읽어보면 에세이 한 편에도 문예 작품의 묵직함이 담겨 있다.


대한민국은 어떨까? 깊은 생각이 담긴 한 편의 에세이가 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환경일까? 그런 시장이 존재하기는 할까?






우리는 점점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


우리는 점점 생각이 없어지는 것 같다. 집중력도 없다. 상식 밖의 행동들을 한다. (그렇다. 나는 꼰대가 되어간다.)


숏폼 영상 콘텐츠가 난무하고 사람들은 글을 읽지 않는다. 누군가 대신 읽어주길 바라고 글보다 영상을 찾는다. 문해력,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사라져 가고 있다. 


베스트셀러 책들은 이미 아주 오래전 책에 나온 이야기들을 다시 뱉어내는데 사람들은 새로운 이야기, 놀라운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놀라워한다. (예전 이야기들이 요즘의 언어와 시대에 맞게 사람들에게 다시 들려져야 하는 필요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예전엔 글의 행간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글을 읽었는데, 이젠 글 한 행, 한 줄 읽는 것도 어려워한다. 15세기 인쇄술 발전이 가져다준 글의 접근성은 혁명을 일으켰는데, 이제 사람들은 스스로 글을 읽지 않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을 실제적으로 옭아매는 힘을 가진 법전이나 경전은 여전히 글로 되어있다. 옛날에는 읽을 수 없어 당했는데, 이제는 읽지 않아 당한다. 조상들이 글을 깨우치고 치열하게 생각하며 얻어낸 삶의 주도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만 같다.


나 같은 요즘 사람은 머릿속에 생각은 많지만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표현할 줄은 모른다. 항상 머릿속에 고민과 생각이 많으니 뭔가 대단하고 철학적인 것을 소유한 것 같지만, 머릿속에 든 것을 논리적으로 전달하지 못한다. 그저 머릿속에서 느낌과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는 것처럼 내뱉는 말과 글도 앞뒤가 맞지 않고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에세이는 이 문제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에세이가 필요한 이유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이 많아진 요즘, 에세이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1. 에세이는 짧다


평균 문학적 에세이의 길이는 2-3페이지다. 집중력 없는 요즘 세대에 딱 알맞다. 읽기에도, 쓰기에도 적당하다. 써볼 만하고, 읽어볼 만하다. 이 정도도 못하면 어쩌나 싶은 길이다. 


2. 에세이는 재밌다


문예 작품으로서의 에세이는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으면서도 재밌다. 작가의 개성이나 인간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유머, 위트, 기지(경우에 따라 재치 있게 대응하는 지혜)가 들어 있다. 그래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유튜브나 웹툰 읽을 시간에 에세이 한 편을 읽어보자.


3. 에세이는 논리적이다


에세이는 짧지만 독립된 작품이라 그 안에 메시지와, 그 메시지를 뒷받침하는 논거가 있다. 문해력과 논리력을 키우는데 아주 탁월한 도구다.


에세이는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세대와, 그 세대가 주류가 될 미래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에세이 작가 양성을 위한 12억짜리 제언


요즘 대한민국 청년들에겐 일자리가 없는데 중소기업들은 직원들 찾기가 어렵다. 이런 모순은 왜 생길까? 청년들은 대우 좋은 대기업에 가고 싶고, 중소기업은 대기업만큼의 대우를 안 해줘서 그렇다.


요즘 어린아이들의 장래희망으로 자주 등장하는 직업에는 아이돌과 유튜버가 있다. 둘 다 성공하면 돈도 잘 벌고 유명해지는 직업이다. 에세이 작가도 성공하면 돈도 잘 벌고 유명해지기까지 하는 직업으로 만들어주는 건 어떨까. 그러기 위한 한 가지 제언이 있다.


에세이 작가 양성과 발굴을 목적으로 통 큰 문예 경연 대회를 딱 10년만 열어보자. 그동안 에세이 작가들을 섭섭하게 했던 다른 장르들은 빼고 딱 에세이만 응모할 수 있는 경연 대회를 말이다.


상금은 통 크게 대상 1명에게 1억.

최우수상 1명에게 천만 원.

우수상 10명에게 각각 백만 원씩.

합쳐서 일 년에 1억 2천, 10년에 12억.


딱 이렇게 통 큰 에세이의 후원자가 나타난다면 10년 후 대한민국 문학 에세이계는, 그리고 에세이를 쓰고 읽는 사람이 많아진 대한민국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현재 가장 통 큰 에세이 경연 대회


아직 1억짜리 에세이 경연 대회는 없지만, 대상 상금 700만 원, 우수상 3명 상금 각 300만 원의 에세이 공모전이 있다.


자세한 사항은 다음 페이지를 참고하자: 제14회 천강문학상 작품 공모 | 대상 700만 원


마감은 1월 31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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