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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챙 Jun 30. 2022

37년 전통의 미국 에세이 맛집

The Best American Essays 시리즈



요즘에야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에세이집 몇 권쯤은 당연하게 끼어있고 에세이스트들이 득세하는 브런치 같은 플랫폼도 있다지만, 에세이가 문학의 한 장르로 인정받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런 사정은 미국도 마찬가지였는데, 꽤 성공한 한 미국 에세이스트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에세이를 써서 먹고살 수 있는 세상이 왔다는 건 정말 꿈만 같은 일이라고. 에세이스트들은 항상 문학계의 흑수저였으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그렇게 에세이가 마이너였던 출판시장에서 1986년부터 지금까지 37년 동안 꿋꿋하게 그해 미국 최고의 에세이를 모아 단행본으로 출간하는 Houghton Mifflin Harcourt 출판사가 있다. 이 글에서는 그 37년 전통의 미국 에세이 맛집 The Best American Essays 시리즈를 소개한다.






37년 전에 이 시리즈를 낳은 사람은 1940년생 로버트 애트완(Robert Atwan)이라는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독서광이었던 애트완은 1986년 그해 발행된 미국의 최고의 에세이를 모은 선집(anthology) The Best American Essays를 출간하고, 앞으로도 매년 에세이 선집을 출간할 포부를 밝힌다. 


그 당시 미국에서 매해 꾸준히 출간되는 문학 선집의 선례는 1915년에 첫 출간된 미국의 올해 최고 단편 소설 선집 (The Best American Short Stories)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문학 선집의 장기적인 성공 사례가 존재한다 해도, 비주류 문학 장르인 에세이 선집을, 그것도 매년 출간하겠다는 건 무모한 시도처럼 보였다. 그 무모한 시도는 이제 시도를 넘어 37년째 계속되는 미국 에세이계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The Best American Essays 시리즈는 그해 미국에서 발표된 에세이 약 20편을 선정해 단행본으로 출간하는 선집이다. 매해 새롭게 선정되는 초청 편집 위원장(guest editor)이 출판사와 시리즈의 창시자인 로버트 애트완이 추린 약 100여 개의 에세이에서 그해 선집에 실릴 최종 에세이를 선정한다 (초청 편집 위원장의 권한으로 100여 개의 에세이 목록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에세이도 추가할 수 있다). 1986년 시리즈의 첫 초청 편집 위원장은 구겐하임 펠로우십(Gúggenheim féllowship) 수상 경력이 있던 1916년생 문학 평론가 엘리자베스 하드윅 (Elizabeth Hardwick)이었다.


The Best American Essays 시리즈의 후보 목록에 오르려면 다음 기준을 만족시켜야 한다*:


1) 완성된 독립적인 작품으로,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주제의 에세이어야 한다.

2) 문학적 수준을 갖춘 에세이어야 한다.

3) 영어로 쓰였거나 작가에 의해 직접 영어로 번역된 에세이어야 한다.

4) 그해 미국에서 발행된 정기간행물에 실린 에세이어야 한다.


에세이스트로서 자신의 작품이 정기간행물에 실리는 것만 해도 성공한 셈인데, 이 시리즈는 그중에서도 최고를 뽑으니 그야말로 미국 에세이계의 챔피언쉽인 셈이다. 게다가 이제 40년 전통을 바라보는 시리즈이니, 자신의 에세이가 여기에 실린다면 미국에서 에세이스트로서는 최고의 영광이다.


매해 단행본 첫 부분에는 로버트 애트완과 초청 편집 위원장이 쓴 두 개의 서문이 실리는데, 이 서문들조차 그해 선정된 작품들에 절대 뒤지지 않는 상당한 수준의 문학적 에세이다. 시리즈의 서문들만 빼놓지 않고 읽어도 문학적 에세이 장르에 대한 상당한 식견과 이해를 얻을 수 있다. 참고로 매해 바뀌는 초청 편집 위원장은 모두 이전에 자신의 작품이 이 시리즈에 실린 적이 있는 에세이스트다. 시리즈 이름도 "미국의 최고 에세이"니까 말이다.






개인 적으로 영어로 신문기사를 읽을 정도의 영어 독해 실력이 있다면 이 시리즈를 꼭 한번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영어 표현의 진짜 맛을 느껴보는 것은 물론 에세이스트들이 우리와 비슷한 일상에서 뽑아낸 인사이트와 교훈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영어 논술을 공부하는 학생이 있다면, 지금까지 출간된 37권의 단행본 중 아무 책이나 골라 읽는 것이 웬만한 논술 공부 방법보다 나을 것이다. 고급 수준의 어휘 공부와 더불어 영어로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실력을 한층 높일 수 있다. 


만약 37권 중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면 2000년도에 출간된 특별판, 20세기 최고의 미국 에세이 선집 (The Best American Essays of the Century)을 추천한다. 제목에 걸맞게 쟁쟁한 에세이스트들의 에세이는 물론,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마틴 루터 킹 2세 (Martin Luther King, Jr.), 어니스트 헤밍웨이 (Ernest Hemingway), T.S. 엘리엇(T.S. Eliot), 그리고 마크 트웨인 (Mark Twain) 같은 작가들의 에세이도 실려 있다.






마지막으로 The Best American Essays처럼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의 작품 가운데서 어떤 기준에 따라 몇 작품을 모아 엮은 책"을 선집이라고 한다. 선집은 영어로 anthology라고 하는데, 이 단어의 어원은 antholegein이라는 그리스어다. 


Antholegein은 두 개의 단어로 이루어져 있는데, "꽃(anthos)"과 "모으다(legeiri)"라는 뜻을 갖고 있다. 선집의 이런 의미를 되새기며 로버트 애트완은 2011년 서문에 이렇게 썼다. 어쩌면 좋은 작품을 모아 선집을 만드는 것은 "문학적 꽃다발(literary bouquet)"을 만드는 작업일지도 모르겠다고. 37년째 꽃다발을 만들고 있는 이 문학적 플로리스트에게, 그리고 세계 여기저기서 문학적 꽃을 피우고 있는 에세이스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The Best American Essays 시리즈 후보 목록에 오르기 위한 기준 원문입니다:


1) intended as a fully developed, independent essay on a subject of general interest (not specialized scholarship)

2) work of respectable literary quality

3) originally written in English (or translated by the author)

4) publication in an American periodical during the calendar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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