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만 있으면 돈 내고 배우지 말고 돈 받으면서 배우자
배움에는 돈이 든다. 대학교를 다녀본 사람은 안다. 학비는 비싸다.
하버드에서 대학원 수업을 하나 들으려면 3,100 달러가 (오늘 환율로 약 3,984,569원이) 든다. 자그마치 지난달 베스트셀러 1위부터 271위까지를 살 수 있는 돈이다. 책 271권이면 일주일에 한 권씩 읽어도 다 읽는데 5년이 넘게 걸린다. 그런데 하버드에서 고작 15주짜리, 그것도 온라인 클래스에 그만큼의 돈을 지불해야 한다. 배움에는 돈이 많이 든다.
하지만 학교에서만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게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다. 학교에서는 알바로 돈을 버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정통 흑인식 후라이드 치킨 튀기는 방법을 학교에서 가르쳐줄 리 없다. 흑인 빈민가 치킨집에서 일을 하는데 코카인에 취한 손님이 벽에 칼을 꽂아 놓고 리듬을 타며 흔들흔들 춤을 출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따위는 더더욱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류의 손님이 가게 안에서 총을 맞았을 때 가게 바닥에 얼룩진 핏자국을 지우는 방법도 말이다. (참고로 핏자국을 지울 때 코카콜라를 뿌리고 불려두면 잘 지워진다)
배움에는 돈이 드는데, 일하면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으면 일석이조다. 돈도 벌고 배움도 얻는다. 치킨집에서 일하면 치킨집 운영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치킨집에서 일하면서 번 돈에 배운 운영 노하우를 더해 자신의 치킨집을 차릴 수도 있다. 그렇게 자기 치킨집을 운영하면서 직원 관리하는 방법을 배우면 치킨집을 하나 더 차릴 수도 있다. 2호점 운영은 직원에게 맡기면 된다. 점점 더 배우고 점점 더 성장하면 돈이 점점 더 벌리고 내 시간도 점점 더 생긴다.
그렇다고 누구나 하는 일에서 배움을 얻는 건 아니다. 누구는 치킨집을 차리지만 누구는 계속 치킨만 튀긴다. 일주일 일해서 번 돈으로 일주일을 산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일주일 번 돈으로 일주일을 아주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있다. 그저 직원인 채로 계속 치킨만 튀기면 수입이 크게 늘지 않는 것뿐이다.
같은 일을 하면서 서로 다른 것을 배우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 이민자들이 운영하는 식당에는 보통 영어를 못하는 멕시코 출신의 직원이 한 두 명은 있다.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그리고 한 마디도 배울 생각이 없는 것 같아 보이는) 그 친구들과 같이 일을 하다 보면 스페인어로 일상 회화 조금은 할 줄 알게 된다. 누구는 그렇게 일하면서 배운 스페인어로 멕시코 아가씨와 데이트를 하고, 누구는 나중에 멕시코 일꾼들을 고용해서 부리는 데 쓴다. 둘 다 스페인어를 배웠지만 누구는 멕시코 아가씨와 아이를 낳고 누구는 멕시코 일꾼들과 비즈니스를 낳는다.
일을 하고 돈을 벌면서 무언가를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록하는 방법이다. 무엇을 적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무엇이든 다 적어보자. 일하면서 틈틈이 적고 퇴근해서도 기억에 남는 걸 기록해보자. 치킨 튀김옷 레시피도 적고, 무슨 종류의 기름을 쓰는지도 적고, 기름은 얼마나 자주 갈아 주는지, 치킨은 어느 온도에서 얼마나 튀겨야 겉바속촉 한 지, 기름때 낀 주방 배기후드는 어느 업체에서 얼마나 자주 청소하는지, 폐기 기름은 어느 업체에서 가져가는지, 치킨은 어느 도매상에서 납품받는지 혹은 사장님이 어디서 사 오시는지, 주방 바닥 타일이 깨졌을 때는 어떻게 교체하는지, 냉동고가 망가졌을 때는 누구를 불러야 하는지, 어느 브랜드 감자튀김이 바삭하면서 소금을 뿌리지 않아도 짭조름하게 맛있는지, 닭날개 5개를 시킨 손님에게는 포장용 케첩 몇 개를 주는 게 적당한지 따위를 말이다. 이렇게 뭐든 적다 보면 일 습득도 빨라진다.
기록하며 일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적는 것이 필요 없어지는 때가 온다. 적으며 배운 것들이 이미 머릿속에 다 들어가 있다. 그래도 그 노트를 절대 버리면 안 된다. 오히려 다시 열어보며 나중에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정리를 해서 다시 적어 놓으면 좋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언제 잊어버릴지, 언제 필요해질지 모른다. 나중에 치킨집 차리는 방법에 대한 책이라도 쓸 수 있을지 모른다.
치킨집의 달인 직원이 되었다면 기록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차례다. 지금까지는 사장님이나 나보다 먼저 들어온 직원이 어떻게 하는지 배우려고 기록했다면, 이제 가게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며 개선점이나 궁금한 점을 기록할 차례다. 사장님이 맨날 욕하면서 질투하는 친구 사장님 가게는 레시피가 어떻게 다른지, 큰 회사가 입주해있는 빌딩에 매장 입점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게를 내기 위해 은행 융자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본 자금은 얼마나 필요한지, 사업자 보험은 어떤 종류가 있는지, 직원이 일하다가 다치면 어떻게 보상을 해주어야 하는지, 가게를 운영하면서 나라에서 받을 수 있는 세금 혜택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사업체 세금 정산은 어떻게 하는지, 우리 가게 정도 매상이면 어느 정도의 권리금을 받고 가게를 매매할 수 있는지 따위를 말이다. 궁금하지만 왠지 물으면 안 알려줄 것 같은 것들도 기록해두면 언젠가 내 질문에 대답을 해줄 사람을 만나게 된다.
이렇게 일을 하면서 배우는 건 굳이 치킨집에서만은 아닐 거다. 세일즈를 하거나, 옷가게에서 옷을 팔거나, 카페에서 바리스타를 하거나, 빌딩 청소를 하거나, 마트 카운터를 보거나,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거나, 심지어 군대를 가는 것까지. 일도 배우면서 돈도 벌고, 또 다른 일을 시작할 수 있는 배움도 얻는다. 그렇게 조금씩 지금 현재 내 자리보다 한 단계 더 멀리 나아가고 그 자리에서 또 배우면 된다. 가서 또 열심히 일하고, 더 열심히 적고 더 나아간다. 일하는 것도 제대로 하면 참 재밌다.
열심히 하면 잘하게 되고, 잘하게 되면 인정받고, 인정받으면 자신감이 생기고 자존감이 높아진다. 누구는 칼퇴해서 놀러 갈 때 나는 칼퇴해서 내 일을 어떻게 하면 더 잘할지 생각하고 기록한다. 이렇게 퇴근해서 돈 안 받으면서 하는 고민은 손해 보는 게 아니다. 사장님을 위해 공짜로 일해주는 것 같지만 사실 내 경험과 실력과 콘텐츠를 쌓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