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폴챙 Jun 26. 2022

글 쓰는 게 두려운 당신이 에세이를 써야 하는 이유

이 세상은 당신의 생각이 필요하다

굳이 시키지 않아도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 어디 갈 때 노트와 펜이 없으면 불안하고, 새로운 것을 듣거나 읽으면 꼭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나 같은 사람이다. 누가 그래 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항상 어떤 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쓴다. 쓰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시간이 모자라는 걸 안타까워한다. 이 글은 그런 사람을 위한 글이 아니다. 오히려 당신이 글을 써야 한다는 제목만 봐도 부담스러운 사람을 위한 글이다.


글쓰기에는 많은 유익이 있다. 글을 쓰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고, 때론 내 생각이 별로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쓰는 행위는 내 생각을 발전시키고 또 다른 생각을 낳는다. 내 머릿속을 비워주고 또 다른 생각이 자리할 공간을 마련해준다. 쓰면서 마음이 치유된다. 이 외에도 글을 쓰는 행위에는 여러 가지 유익이 있다.


당신은 무슨 글이든 쓸 수 있다. 하지만 에세이는 꼭 써야 한다. 에세이는 당신의 경험이나 생각으로 무언가를 정의하는 글이다. 에세이를 쓰면 삶을 돌아보게 되고 더 꽉 찬 삶을 살게 된다. 보통 에세이는 "OOO은 무엇인가" 혹은 "OOO에 대하여" 따위의 제목을 갖고 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보자. 우리가 무언가에 내렸던 정의가 변하지 않고 항상 그대로였던 적이 있었는지.


당신이 "삶에 대하여" 30대에 쓴 에세이와, 당신이 80대가 되어 "삶에 대하여" 쓴 에세이는 확연히 다를 것이다. 아주 다른 두 사람이 쓴 글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사실 "다른" 사람이 쓴 글이기도 하다. 하지만 두 에세이가 내린 정의는 둘 다 가치 있다. 하나는 젊은이가 외치는 세상은 이래야 한다는 소리이고, 또 하나는 나이 많은 노인이 들려주는 지혜일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다른 사람이 되기 전에, 그래서 무언가에 대한 나의 이해가 바뀌어 버리기 전에 최대한 그것들을 에세이로 남겨두어야 한다.


만약 에세이가 정말 거창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래서 당신은 에세이를 쓸 자격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면, 에세이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몽테뉴(Montaigne)의 『수상록』 목차를 읽어보길 권한다. 그는 "OOO에 대하여" 류의 에세이를 많이 썼는데, 당신도 그가 정의했던 것들에 대해 쓸 수 있다. 그가 썼던 에세이의 제목 몇 개를 읽어보자:


슬픔에 대하여

나태에 대하여

거짓말쟁이들에 대하여

비겁함의 처벌에 대하여

공포심에 대하여

학식이 있음을 자랑함에 대하여

우정에 대하여

절도(節度)에 대하여

식인종에 대하여

옷 입는 습관에 대하여

고독함에 대하여

우리들 사이에 있는 불평등에 대하여

사치 단속법에 대하여

잠에 대하여

이름에 대하여

판단력의 불확실성에 대하여

군마에 대하여

옛 관습에 대하여

언어의 허영 됨에 대하여

옛사람들의 인색에 대하여

헛된 묘기에 대하여

냄새에 대하여

기도에 대하여

나이에 대하여

우리 행동의 줏대 없음에 대하여

술주정에 대하여

케아 섬의 풍습에 대하여

사무는 내일로

양심에 대하여

실천에 대하여

명예의 포상에 대하여

아이들에 대한 아버지의 애정에 대하여

서적에 대하여

잔인성에 대하여


에세이에는 제약이 없다. 개인적이다. 에세이의 목적은 당신의 경험과 생각에서 비롯된 어떤 것에 대한 당신의 이해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누구도 당신에게 왜 당신은 그런 결론을 내렸느냐고 따질 수 없다. 당신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만 설명만 해준다면 말이다. 에세이를 쓰는 데 필요한 자격 같은 건 없다. 만약 당신의 경험이 "사람은 믿으면 안 된다"는 교훈을 주었다면 그것은 타당(valid)하고, 만약 "사람은 믿을만하다"라는 교훈을 주었다면 그것 또한 타당하다. 그리고 오늘 "사람은 믿으면 안 된다"라는 에세이를 썼다가, 내년에는 "사람은 믿을만하다"라는 에세이를 쓴데도 그것 또한 괜찮다. 당신은 생각할 자유가 있고, 당신의 생각을 바꿀 자유도 있다. 존재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고 말해야 한다. 다른 이가 동의하지 않아도 괜찮다.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이미 다른 사람이 말했을 수도 있다. 당신이 쓰려는 에세이를 누군가 이미 더 잘 써놨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은 내용이라도 당신이 에세이를 써냈다는 것은, 당신의 생각을 세상에 내놨다는 것에는 의미가 있다. 같은 말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서 느낌과 의미가 달라진다. 언제 하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몽테뉴가 500년 전 썼던 것과 비슷한 것을 당신이 느끼고 당신의 에세이를 써냈다면 그것에는 몽테뉴의 에세이와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종교적이거나 철학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당신의 존재는 이 세상에 의미가 있고 당신이 지금 어떤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이 세상에 중요하다.




그럼 에세이를 어디에 써야 할까? 만약 브런치의 작가로 선정됐다면 브런치에 쓰는 것도 괜찮다. 브런치 작가가 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발행"이라는 기능이 있어서 세상에 내 에세이를 내어놓는다는 의미를 줄 수 있다. 아직 브런치 작가가 아니라면 그것도 괜찮다. 무료 블로그를 만들어서 나의 글을 "발행"해보자 (참고: 구글 블로거(Blogger)로 내 웹사이트를 만들어보자). 아무도 읽지 않더라도 내 에세이를 세상에 내보내는 것에는 의미가 있다.


처음에는 글을 쓰는 것이 어색할 것이다. 아마 꽤 오랫동안 어색할 수도 있다. 나도 아직 그렇다. 누구나 흥이 있고 신이 날 수는 있어도 모두가 그걸 멋지게 춤으로 표현해낼 수 있는 건 아닌 것처럼, 에세이 쓰기도 연습이 필요하다. 내 생각을 내 안의 느낌 그대로 표현하려면 쓰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리고 쓰다 보면 써진다. 그러려면 글쓰기를 실행해야 한다. 실제로 써야 한다. 생각만 하면 안 된다. 당신은 지금까지 이미 너무 많은 생각을 해왔다.


나도 생각만 많았다. 생각을 정리하고 꾸준히 글 쓰는 훈련이 되지 않아 발작적으로 글을 써왔다. 하지만 글쓰기를 훈련해보기로 했고, 그래서 나는 오늘로 4일째 매일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 나는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인데도 글 쓰는 게 쉽지 않다. 하나의 글을 발행하는데 평균 4시간 정도가 걸린다. 힘들다. 그런데 조금씩 수월해진다. 글을 쓰는 뇌가 활성화된 건지 갑자기 글 소재가 떠오르기도 한다. 당신도 한 번 시도해보길 바란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면 위에 나열됐던 몽테뉴의 아이디어를 빌려보자. 그리고 기억하자. 에세이는 내 경험과 생각을 통해 어떤 것을 정의하거나 그것에 대한 나의 이해를 말하는 것이다. 몽테뉴는 "고독함에 대하여"라는 에세이를 남겼다. 당신도 당신이 생각하는 고독함에 대해 쓸 수 있다. 길게 쓰지 않아도 된다. 처음에는 단 두 문장이어도 된다. 고독함에 대한 당신의 경험 한 문장, 그리고 그 경험에서 얻은 고독함에 대한 교훈이나 생각을 쓰면 된다. 예를 들어 이런 거다:


제목: "고독함에 대하여"

에세이: 나는 10년 전 사업이 망해서 모두가 내 곁을 떠났을 때 지독하게 고독했고, 그때 나의 삶을 돌아보고 내 실패 원인을 찾을 수 있게 됐다. 사람에게는 고독이 찾아올 때가 있고, 그것은 때로 유익하다.


이렇게 두 문장이면 된다. 두 문장을 쓰는 동안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면 덧붙이면 된다. 5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생각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고, 그래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생각은 많은데 생각이 느려서 글을 씁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