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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챙 Jul 20. 2022

어차피 읽을 사람만 읽을 테니 하고픈 말을 쓰면 됩니다



ROTC 생도일 때, 학군단장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


I can fix your ignorance. But I can't help your stupidity.

나는 너희의 무지는 고쳐줄 수 있지만 어리석음은 어떻게 도와줄 수가 없다.


아는 게 없어서 생긴 무지는 가르쳐서 고쳐줄 수 있지만, 배우기 싫어하는 어리석음과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어리석음은 본인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이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건 어렵지만 겸손히 배우려는 자세만 있다면 세상 사람들은 대개 너그럽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배우고 싶다는 뜻을 내비치는 사람을 거절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눈치 없이 그 사람이 바쁠 때 물어본 경우를 빼고는)


하지만 때로 내가 뭔가 안다는 생각이나 이건 나도 좀 아는 건데 라는 생각이 들면 가르쳐 주는 사람이 바로 눈치를 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알려주던 것을 대충 마무리 짓고 떠나버린다. 그렇게 되면 다시 그 사람에게 배우는 건 정말 어려워진다.


태도 때문에 내 앞의 배움을 놓치는 건 에세이를 읽을 때도 같다.






에세이를 쓰는 사람은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배울 점이 있듯 모든 에세이에는 배울 점이 있다. 하지만 배울 점을 배우는 것은 에세이를 읽는 사람의 몫이다.


에세이를 읽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도 에세이를 읽는 사람의 몫이다. 그러니 에세이를 쓰는 사람은 그저 쓰면 된다. 어차피 읽을 사람만 읽을 테니, 눈치 보지 말고 진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쓰면 된다.


내 에세이는 언젠가 반드시 내 에세이가 필요한 사람에게 가 닿을 테니 말이다.


그 유명한 예수님도 좋은 말씀을 한참 하신 후에 이렇게 덧붙이셨잖은가?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어라






나의 에세이가 예수님의 말씀처럼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지혜를 담고 있지 않을 수 있지만, 그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는 내용이 반드시 담겨 있다. 그게 단 한 사람일지라도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자신의 그 한 독자를 위해 열심히, 더 잘 이해되게, 우리의 이야기를 쓰고 다듬으면 된다.


그리고 혹시 내 에세이에서 필요한 것을 발견하지 못한 독자께는 정중히 말씀드리면 된다.


죄송하지만 여기서는 저의 이야기 밖에는 들으실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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