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7장 25-36절
2025년 1월 25일 토요일
바로 그때 몇몇 예루살렘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그들이 죽이려는 사람이 아닌가? 보시오. 그가 여기서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는데도 저들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것을 보니, 관리들도 정말 이 사람을 그리스도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오실 때에는 어디에서 오시는지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성전에서 가르치시다가 큰 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안다. 그러나 나는 이곳에 내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시다.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은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이 말에 그들은 예수를 붙잡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그분에게 손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무리 가운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시더라도 이분보다 더 많은 표적들을 행하시겠는가?”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께 대해 이렇게 수군거리는 것을 바리새파 사람들이 들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를 잡으려고 성전 경비병들을 보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잠시 동안 너희와 함께 있다가 나를 보내신 분께로 갈 것이다.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또 내가 있는 곳에 너희가 올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자 유대 사람들이 서로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자기를 찾지 못할 것이라고 하는가? 그리스 사람들 가운데 흩어져 사는 유대 사람들에게 가서 그리스 사람들을 가르치겠다는 것인가? 또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또 내가 있는 곳에 너희가 올 수도 없을 것이다’라고 한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인가?”
[요한복음 7장 25-36절, 우리말성경]
"바로 그때"는 예수님이 초막절의 중간에 성전에서 가르치시던 때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하자 너희 모두가 놀랐다.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법을 주었기 때문에 너희는 안식일에 할례를 베풀고 있다. (사실 할례는 모세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그 전 조상들에게서 온 것이다.) 그래서 너희는 안식일에도 사람들에게 할례를 베푸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모세의 율법을 어기지 않으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데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온몸을 성하게 해 주었다고 해서 너희가 어찌 내게 화를 내느냐? 겉모양으로만 판단하지 말고 공정하게 판단하라.”
[요한복음 7장 21-24절]
예수님이 율법의 본질은 모른 채 율법을 우상화시킨 유대인들의 잘못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을 지적하는 예수님이 어찌나 당당했던지, 예루살렘 사람들은 관리들이 예수님을 체포하지 못하는 이유가 그들도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기서 관리들이 예수님을 체포하지 않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는 '예루살렘 사람들'이라는 표현은 오늘 25절과 마가복음 1장 5절, 신약성경 단 2곳에서만 나타납니다. 어떤 학자들은 아마도 이들은 예루살렘 거주민들을 가리키는 것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관리들이 예수님을 체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은 이유는 지난 유월절에 있었던 예수님의 성전 정화 사건으로 인해 손해를 본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체포되지 않는 것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오실 때에는 어디에서 오시는지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오류가 있습니다. 성경을 몰라서 생기는 오류입니다.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을 때 헤롯은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을 불러서 그리스도가 어디에서 태어날 것인지 물었고, 학자들은 미가서 5장 2절을 인용해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그리스도가 태어날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헤롯은 백성의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을 모두 불러 그리스도가 어디에서 태어날 것인지 캐물었습니다.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유대의 베들레헴입니다. 예언자가 성경에 이렇게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너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통치자들 가운데 가장 작지 않구나. 네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될 것이다.’”
[마태복음 2장 4-6절]
오늘 본문 전에는 "가르치시던" 예수님이 갑자기 "큰 소리로 말씀"(cried out)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안다. 그러나 나는 이곳에 내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시다.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은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참되신 분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셨다고 말합니다. 또 예수님은 나는 그분을 "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그냥 아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계를 뜻합니다.
하나님을 깊이 아는 예수님은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의 의도와 자신의 신적 기원(Godly origin)을 선포하시기 위해 큰 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말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붙잡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께 손조차 댈 수 없었습니다.
때가 되지 않아서 예수님께 손댈 수 없었다는 것은 십자가 사건을 주관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어쩔 수 없이 속수무책으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것이 아닙니다.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았고, 정하신 때에 계획하신 대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께로 갈 것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의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신성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 말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신들이 가진 모든 이해력을 사용해 한다는 말이 혹시 예수님이 그리스인들 가운데 흩어져 사는 유대인 디아스포라에게 가버려서 더 이상 만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인가라는 완전히 빗나간 추측입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처럼 예수님에 대해 완전히 오해하지 않으려면, 궤변을 늘어놓지 않으려면 성경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구약성경이 어떻게 오실 예수님에 대해 예언했는지,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어떻게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셨는지, 신약성경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주되심을 제대로 알고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선동당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성경을 제대로 알고 믿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합니다.
요한복음 매거진은 두란노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QT교재 <생명의 삶> 2025년 1-3월 본문을 따라 매일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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