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중한 감정 이야기 - 9
나는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찐다.
어릴 때는 너무 말랐었다. 그래서 살이 찌고 싶었다. 체격이 큰 친구들이 부러웠다. 살이 안 찌는 이유는 밥을 많이 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금만 먹으면 배가 불렀다. 그리고 숟가락을 놓는다. 배가 부른데도 더 먹으면 기분이 나빴다. 배도 아팠다. 설사는 내 친한 친구가 되었다.
조금 많이 먹으면 배가 나오면서 몸이 자체 정화 시스템을 가동한다. 그러면 배탈이 나고 설사를 한다. 하루 정도 제대로 못 먹으면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간다. 나는 그렇게 음식에 대해 한 번도 절제와 통제를 한 적이 없었다. 음식을 먹지 못하는 고통을 몰랐다. 단지 음식을 더 많이 먹지 못한 것이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이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어른이 되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가 혼이 많이 났다.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살이 안 찌는 것이 너무 슬펐다. 나는 나의 슬픔이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혼란스러웠다. 살이 찌는 것이 문제라면 살이 안 찌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해 주지 않았다. 언젠가 나의 멘토와 이 고민을 나누었다.
"그냥 나 혼자만 끙끙거려야겠어요"
"사람들은 자기가 공감하는 문제만 들어주지"
"그래서 소외되는 사람도 있을 거 같아요"
나의 고민은 누구에게 말하지 못한 채 계속되었다.
TV에서 한 방송인이 살이 찌는 방법을 소개했다. 귀가 번쩍했다. 밤늦게 야식을 먹고 바로 잠을 자라. 그리고 아침 일찍 또 먹어라. 그래서 그렇게 했다. 배탈만 났다. 살이 안 찐다. 슬프다. 결혼하면 살이 찐다고 했다. 나잇살... 그래도 결혼하고 10kg가 쪘다. 내 인생 몸무게를 찍고 있다. 69kg. 단 한 번도 70kg를 넘어 본 적이 없다. 나의 한계가 여기까지다.
나는 아내를 존경한다.
아내는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 나는 물만 먹어도 살이 찌는 사람들을 존경했다. 부러웠다. 숨만 쉬어도 살이 찌는 사람은 존경을 넘어 신기했고 경이로웠다. 그래서 아내에게 존경스럽다고 말했다가 혼났다.
"어떻게 물만 먹어도 살이 찌지? 존경스러워"
"헐"
"종족이 다른가 봐. 나 같은 종족은 안 쪄서 문제인데"
"헐"
아내의 눈빛은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
아내가 다이어트를 한다. 그래서 조언을 했다.
"내가 숟가락 놓을 때 같이 놓으면 돼. 그럼 살이 빠질 거야"
"그건 안돼. 난 배가 불러도 밥이 들어가"
"그래서 살이 안 빠지는 거야"
"미워"
아내의 눈빛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아내의 다이어트가 내게는 외계의 신비한 일로 느껴졌다.
적어도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이 말을 해 주기 전까지는 말이다.
"여기서 더 살이 찌면 안 됩니다. 배가 나오면 큰 일어납니다"
남보다 살도 안 찌고 적게 먹는 나에게도 이런 한계가 주어졌다.
살이 더 쪄도 안되고, 배가 더 나와도 안된다. 큰 일 난단다.
이게 무슨 일인가...
아내가 복수를 시작했다.
"야식 먹고 싶어"
"배 나오면 안 된다고 하잖아. 먹지 마"
"먹고 또 빼면 되지"
"배탈 나고 설사하는 게 좋은 게 아냐. 먹지 마"
"그래도..."
"먹지 마"
아내의 눈빛은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동안 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나 보다.
그런데 아내를 통해 조금씩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가 살찌는 것이 문제인 사람들을 공감해 준 적은 없구나"
"나를 공감해 주지 않는다고 실망했는데 나도 공감해 준 적은 없구나"
그때부터 갑자기 음식에 집착을 하기 시작했다. 살이 찌고 싶을 때는 몰랐는데 살이 찌면 안 되는 상황이 되니 알게 되었다. 음식을 마음껏 먹지 못하는 것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일이구나. 생전 처음 경험하는 고통이었다. 그리고 우울한 마음이 찾아왔다. 내가 많이 먹을 수 없다니...
갑자기 음식에 집착하게 되고 우울하니 이상했다.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을 읽었다.
1) 인간은 음식을 먹으며 행복을 느낀다
2) 사람이 맛있는 것을 먹을 때 뇌의 움직임이랑,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를 할 때 뇌의 움직임이 똑같다.
3) 애정 결핍이 있는 사람이 음식에 집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4) 물론 그렇다고 음식에 집착하는 모든 사람이 다 애정 결핍인 것은 아니다.
책을 읽으며 설득이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밥을 먹으면 더 행복하다. 그래서 우울과 불안이 넘치는 이 시대에 음식에 대한 갈망이 큰 것 것이다. 어쩌면 음식은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 없는 현대 사회에 놀라운 회복제가 되어 주는 것 같다. 음식이 감정과 이렇게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았다.
이제는 음식을 먹고 싶은 대로 먹지 못하는 것에 대한 슬픔을 알아가고 있다.
그동안 아내를 놀리듯 말한 것들이 미안했다. 너무 미안했다.
사람은 자신의 문제에 공감해 주기를 원한다.
그러나 자신이 먼저 공감해 줄 때 공감을 받을 수 있다.
공감, 서로 노력해야 할 감정을 위로하는 약!
"나의 일상은 기쁨 하나에 슬픔 하나 넣은 커피 한잔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