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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Apr 08. 2023

저 멀리 있는 곳을 다시 향하여

오페하라우스 맞은편 공원은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다. 잘 알려진 곳이 아니기 때문인데 그래서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Paul 제공

딱 3년 하고도 석달이 지난 시점에 방문할 계획을 짜게 됐다. 코로나19가 전세계적으로 확산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나라가 바로 이곳이었다. 당시 여행을 계획할 무렵은 2019년 가을이었는데 중국에서 원인 모를 호흡기 질환이 시작됐다는 뉴스가 오르내릴 때였다. 단순한 풍토병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2020년 초 확산세가 심상치 않았었다. 방문을 포기할까 고민을 엄청 했었는데 이번이 아니면 당분간 기회는 없을 것 같아 계획을 그대로 강행한 바 있다.


이 시기는 참 많은 고민이 있었던 때다. 졸업 1년을 앞두고 진로가 구체적으로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방구석에서 고민만 하면 뭐하나 싶었고 내게 편안함을 줄 수 있는 공간에서 쉼을 얻고픈 마음이 컸었다. 또 일단 가면 무언가라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죽어도 안 가겠다던 어학연수를 부모님이 끝끝내 이곳으로 보내주신 덕분에 인생의 변환점을 맞을 수 있었다.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고 하면 어학연수라고 말하니까.


실제로 2020년 방문했던 시기에 또 다른 변환점을 맞이할 만한 결심을 얻은 바 있다. 머물고 있던 에어비앤비 숙소 거실에서 따스한 햇빛이 들어오는 어느 오후쯤이었을 것이다. 이 결심을 바탕으로 한국에 돌아온 뒤 몇개월이 흘러 입직에 성공했으니까. 대단한 결심이라고 여겨질 건 아니었지만 향후 인생을 살면서 내게 중요한 밑거름으로 작용될 그런 것이었다. 이 사례 역시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기회가 있을 때 중요하게 언급하는 자산이 됐다.


최근 코로나19 확산세가 줄면서 해외로 나갈 수 있게 됐고 타이밍을 노리고 있었다. 줄어든 항공편 탓에 가격이 고공행진을 했었는데 합리적인 수준을 회복하면 곧장 결제를 할 셈이었다. 이런 날 목격한 어머니는 "다른 나라를 좀 가라"고 말씀하셨다. 가면 맨날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커피 들고 앉아 있을 거면서 지겹지도 않냐고 덧붙이시며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사람들 인적이 없는 카페를 찾아 들어간 뒤 신선처럼 시간을 죽이고 있을 게 뻔했다.


사실 비행기 결제 화면을 띄우고 얼마간 고민을 하긴 했다. 새로운 경험을 위해 정말 다른 나라를 가야할지 고민했기 때문이다. 돈과 시간 등 기회비용을 따진다면 앞서 말한 방안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큰 끌림은 없었다. 어쩌면 세번째 결심 혹은 그 엇비슷한 무언가를 다시 얻게 될 거란 막연한 기대를 현실화하고 싶은 의지가 반영됐을지도.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은 모두 이곳에서 시작됐으니 그렇다. 절대적인 건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하나쯤 있는 골방 같은 곳이란 설명을 얹는다.


7년 전 처음 이곳을 갔을 때 관계를 맺은 친구들은 한참 지난 세월로 각자 저마다의 삶을 살고 있는 듯 했다. 당연히 많은 게 변했고 갖가지 이유로 내가 가 있는 기간 동안 만날 수 없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다시 돌아오는 건 너무나 환영한다는 연락을 잇따라 주는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없는 시간을 쪼개어 약속을 잡아준 친구들은 두 말할 필요가 없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어떤 회고를 하게될지 나도 모른다. 예상과는 다르게 별 소득 없이 '역시 판도라 반지는 가서 사야 한다'는 농담만 늘어놓을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던 시기를 함께 살아간 이들과 다시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큰 감격 아니겠는가. 여러 생각을 안고 발걸음을 했던 장소들을 찾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주어진 시간을 즐기며 잘 선용했다 스스로를 토닥이는 여정이 되길 바라마지 않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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