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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Apr 24. 2023

언제 또 다시 마주할지 모르지만

오페라하우스와 허버브릿지를 가장 잘 찍는 방법은 써큘러키역 플랫폼에서 바라볼 때다. Paul 제공

방금 전까지 오페라하우스를 보며 한적하게 커피를 마셨는데 웬걸 소나기가 오는 게 아닌가. 여유를 부릴 만큼 부렸다 생각해 다시 부지런히 걸어 시티로 돌아왔다. 아침부터 걸었던 탓에 쉼이 필요했는데 때마침 애플이 눈에 보여 들어와 앉았다. 굳이 장소를 남기는 건 현장성을 강조하고 싶은 직업병 정도로 해두면 좋지 않을까 싶다. 이 말을 뱉으니 출근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자각해 기분이 우울해진다.


3번째 시드니는 익숙함과 새로움이 공존했다. 공항에서 트레인을 타고 서울역쯤 되는 센트럴역에 도착하니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돼 있었다. 라테는 계단으로 무거운 짐을 끙끙거리며 들고 갔는데. 변하지 않을 것만 같던 이 역 조차 이렇게 발전한 걸 보니 영원한 건 없다는 말이 실감났다. 새로움이 정착되는 동안 나는 얼마나 발전했나 순간 성찰을 하기도 했다.

분주한 시드니 삶을 느끼고 싶다면 출퇴근 시간대 센트럴역 방문을 권해본다. Paul 제공

이런 생각을 할 틈을 주지 않았던 건 물가다. 분명 적지 않은 돈을 가지고 왔는데 내가 생각 없이 소비를 하고 있나 싶을 만큼 물가는 높아졌다. 교통비에만 80불 가까이 썼으니 말을 다 한거지. 즐겨먹던 메뉴들 가격 역시 대부분 앞자리가 바뀌어있었다. 난 이내 계산을 포기하고 휴대전화에 등록한 애플페이로 편함을 추구하기에 이르렀다. 시드니를 통해 당분간 사직서 제출은 힘들게 됐다.


시드니에 왔다는 소식을 전하자 곧바로 약속을 잡아준 고마운 지인들이 있었다. 3년 만에 한 연락임에도 마치 어제까지 연락했던 것처럼 반겨줬다. 밥이나 음료 또한 기꺼이 지불해줬는데 이는 자신들의 마음이라고 표현해줬다. 우리 모두 직장인인데 밥값을 누가 지불하든 어떠한가. 자신에게 연락줘 고맙다는 말을 연신하는 그들과 나눴던 이야기들은 추억을 곱씹는 데 충분했다. 한정된 시간이 야속하기도 했고.


특히 내 꿈을 열렬히 응원해줬던 이들을 만날 땐 감사함이 더 컸다. 약 7년 전 꿈을 찾아보겠다며 아무것도 모르고 이곳에 왔었는데 이젠 원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톺아보는 순간은 감개가 무량했다. 이들은 내 이야기를 들은 뒤 “고생했다”며 엄지를 들어올려줬다. 그리고 헤어질 때 “다시 꼭 와”란 말도 잊지 않고 덧붙여줬다. 시드니는 겨울이 시작되는 참이었는데 두터운 외투가 딱히 필요하지 않은 듯 했다.

바쁘게 가던 길을 멈추면 시티 곳곳에 숨겨진 여유 섞인 아름다움이 포착되기도 한다. Paul 제공

이같은 만남을 뒤로한 나는 남는 시간 동안 발길이 닿는대로 걸었다. 익숙한 거리가 나오면 안도하며 걸었고 기억이 나지 않는 건물이 나오면 구글맵을 켜 분주히 정보들을 습득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기억들에 반가워하며 무릎을 탁 치는 일도 잇따라 있었다. 이렇게 걷고 걸으니 한국에서 가져온 슬리퍼는 필요하지 않았다. 여행가면 운동화를 꼭 신어야한다는 부모님 말을 잘 듣지 않았었는데 이제 나도 그래야 하는 나이가 온 건가.


이번 방문 다음 언제 또 이곳으로 돌아올지 모르겠다. 예상과는 다르게 빠를 수도 있고 3년 보다 늦을 수도 있다. 종잡을 수 없으니 일단 카메라 셔터를 닥치는 대로 누르긴 했다. 하염없는 그리움을 어느정도 달래볼 심산으로 말이다. 아무렴 어떠한가. 한국과 정반대로 동떨어진, 언제라도 돌아오면 나를 반겨줄 이들이 가득한 곳이 있다는 자체가 큰 감사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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