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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May 11. 2023

일했는데 한산함이 가득있던 날

더운 여름을 그렇게 반기지 않지만 무언가 색이 선명해지는 주변 모습들을 보는 게 좋긴 하다. Paul 제공

오늘 아침 9시쯤 운동을 하기 위해 아파트 피트니스센터로 향했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지하주차장까지 간 다음 출구로 나왔는데 하늘이 너무 화창해 보였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휴대전화를 열고 사진을 찍었다. 과거엔 그러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 부쩍 끝을 모르게 높은 하늘을 마주하면 걸음을 멈추곤 한다. 오늘은 천천히 공기 냄새를 맡아보기도 했다. 늘 그랬나 싶었을 정도로 상쾌했다.


운동을 마치고 여유롭게 점심을 먹고 커피나 한 잔 하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현장을 가게 되며 계획은 무산이 됐다. 오늘은 아무런 외출이 없음을 다짐하며 새벽에 출근하는 아버지를 따라나서 좋은 지하주차장 자리에 차를 옮겨두기까지 했는데.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게 인생이란 오래된 말이 새삼 와닿았다. 이런 고민을 느긋하게 마무리 할 순 없었고 재빨리 준비를 마치고 현장으로 향했다.


출근 시간이 막 지났을 무렵이라 도로는 꽤 한산했다. 시내도로를 탔었기에 빨간 신호등으로 자주 정차를 해야 했다. 평소 같았으면 왜 이렇게 신호가 많냐며 투덜거렸을 텐데 오늘은 이상하게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봤자 도심인데 뭐 대단한 풍경이 펼쳐지겠나. 여름이 성큼 다가온 만큼 쨍한 하늘 아래 선명하게 존재를 자랑하고 있는 나무 따위가 전부였다. 잠자코 이 장면들을 보는데 또 휴대전화를 꺼냈다. 오래도록 눈에 담아두고 싶어서였다.


취재를 간 현장에서도 이 감성적인 마음은 계속 됐다. 인터뷰를 어떻게 딸 것이며 기사 야마는 무엇으로 잡아야 하는지 등 걱정은 이어졌지만 말이다. 걱정한다고 고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니 마감할 때 고생하기로 결론을 내린 뒤 현장 주변을 계속 맴돌았다. 이때가 오전 11시 30분쯤이었는데 인적이 드물어 평화로움을 전해줬다. 일을 가장한 나들이가 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쉴 새 없이 요란하게 울리는 휴대전화 메시지 알람이 현실을 잊지 않게 독려를 아끼지 않아 주기도 했다.


이후 기사 마감을 하니 오후 1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제서야 점심을 아직 먹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근처에서 먹을 수도 있었지만 왠지 외식을 하기 싫었다. 별다른 결심이 선 건 아니었고 꼭 시간 맞춰 밥을 먹어야 할까란 철학적 의문이 들었다랄까. 강박스럽게 이른바 'To do list'를 처리하지 않고 바쁘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내뱉을 수 있는 용기를 실천하고 싶었다. 그래서 데스킹이 되는 동안 집으로 돌아왔고 밥솥에 남아있던 밥과 냉장고의 반찬들을 꺼내 간단히 점심을 챙겼다.


하루를 돌아보니 참 별 일이 없었다. 그런데 너무나 감사하게 잘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같은 당연하면서도 평범한 하루를 보내지 못하는 많은 이가 있지 않은가. 더욱이 지겹더라도 원하고 하고 싶은 일을 어제에 이어 오늘도 했으니 그저 그런 감사로는 형용할 수 없다 감히 말해본다. 받은 복을 헤아리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점을 오늘 또 깨닫는다. 이런 감사와 깨달음이 오래도록 이어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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